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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한국어 ㅣ 오늘의 젊은 작가 30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0년 11월
평점 :
소설을 좋아하지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도, 읽은 후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도 잘 모르지만 일단 기록을 남겨본다.
소설 속 문지혁은 미국에서 석사를 마친 후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가 된다. 한국어를 처음 배운 외국인 학생들의 한국어는 너무도 서툴어 웃음이 터져나온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이긴 하지만 어디 붙은지도 모를 나라에서 온 문지혁의 외국인 노동자 신분과 “끔찍한 실수 투성이”인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시민권자인 학생들, 먼저 어학연수를 떠나 문지혁의 질투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지혁이 강사를 한다는 말에 어색해진 친구 W, 군대에선 반말했던 2살 위 형에게 사회에서는 존대하는 관계 등,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지 엎치락 뒷치락하는 관계 속에서 겉으론 “선비”같지만 속으론 치열하게 제 갈길을 찾아가고 있다.
소설이란 무얼까, 또 왜 쓰는 것일까.
제임스 설터의 말처럼 ‘남들에게 존경받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칭찬받기 위해, 널리 알려지기 위해 101p. -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소설을 쓴다는 건 일종의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버튼을 누르는 행위이며 그 순간주터 우리의 삶과 소설은 둘로 갈라져 다른 이름으로 저장된다. 184.- 고 말한다.
소설을 쓰는 상상을 해봤다. 다 읽은 책을 어떻게 덮었고, 어디에 두었으며 어떻게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를 먹으러 부엌으로 향했는지 알알이 머릿속으로 더듬었다. 그리고 하나하나를 살피게 되었다. 일어나는 동작, 머리속으로 떠오르는 생각들, 그릇을 챙기는 행위 따위가 모두 의미를 갖게 되는 것 같다. 그 전까진 별 생각없이 수동적이고 무관심하고 무의미한 시간- 크로노스 127p. 이 지나갔다면,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카이로스-질적이고 특별한 시간, 구별되고 이질적이며 의미를 지닌 시간 이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