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를 낳지 않겠다는 결정은 이기적이라기보다 이타적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겪는 어려움을 자식 세대는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앞선 세대들이 가난과 실패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것은 내 자식과 그 친구들이 함께 살아갈 공간을 황폐화하면서 내 자식만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누 방법이었음을 우리는 보았다. -33쪽
애를 낳지 않겠다는 결정은 이기적이라기보다 이타적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겪는 어려움을 자식 세대는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앞선 세대들이 가난과 실패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것은 내 자식과 그 친구들이 함께 살아갈 공간을 황폐화하면서 내 자식만 온실 속에 가둬 화초처럼 키우는 방법이었음을 우리는 보았다. - 33쪽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소리와 말과 시선들을 그냥 흘려버리며 살았을까? 내가 무심코 흘려버린 타인의 울음소리와 신음 소리는 없었을까? - 248쪽
유려한 문장으로 감동을 주는 문학 작품이라기보다는 현실을 그대로 조목조목 드러낸 문장들이 공감을 이끌어내는 르포와 같은 느낌. 인간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갈등과 고뇌를 판사 자신의 입으로 들려주는 것만 같았다. 내 말이 맞다고 우기기보다는 ‘이런 입장도, 저런 입장도 있어.‘와 같이 화두를 던져주는 것 같았다. 이 소설 속 44부 판사들처럼 치열하게 고민하고 다투는 판사들이 많이 있다면 사법계의 미래는 그리 어둡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가져보며...
P.130인생의 가장 높은 산과 가장 깊은 골에 켜켜이 쌓인 그 활자들은 나를 때로 살게 하기도 했고 살고 싶게 하기도 했다.
P.164나의 방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작은 책장을 바라볼 때, 수천 년 전의 인간이 남긴 말부터 지금의 인간이 그 말을 해석한 책까지 있는 광경을 바라볼 때, 나는 인간이란 죽으며 한낱 활자만을 남길 수 있는 존재임을, 동시에 그 활자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임을 상기한다.
P.170책장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은 그 사람의 관심 분야가 책장에 반영된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머릿속이 책장에 꽂힌 책과 점점 닮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책을 소유한다는 것은 언제든 책에게 정신을 침범당해도 좋다는 인정이다. 책장을 들여다볼수록, 또 책장의 책을 들여다볼수록, 그 사람의 세계는 가지고 있는 책의 관심사와 비슷해진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 책에 대한 소유욕은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우아한 소유욕이다.
P.193책을 많이 읽는 게 훌륭한 삶의 표본도 아닌데 잠시 좀 쉬면 어떤가. 죽어서 위인전 목록에 들어갈 것도 아닌데. 그렇게 책을 놓고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다시 책을 집어 드는 때가 오는데, 다른 유희 활동이 다 재미없어졌다는 신호다.
P.274우리는 왜 끊임없이 진실을 요구하면서 책을 읽는가. 그것은 삶의 진실이 때로 가상에, 거짓에, 행간에 있기 때문이다. 가상은 책 너머 현실에 유출되어 현실의 일부분을 이룬다. 우주를 이 잡듯이 뒤져보면 정말로 책에 나온 세계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존재론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책이 들려주는 가상으로부터 우리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그로부터 변화한 태도와 행동이 세계에 영향을 준다는 실천적인 차원에서도 그렇다. 이 발견된 책이 세상에 존재하게 됨으로써 내가 쓰고 있는 이 책이 세상에 탄생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