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사랑한 베르사유 - 역사의 숨결, 예술이 스민 베르사유 문화 산책
강문정 지음 / 샘터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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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 우리세대에게 베르사유에 대한 이미지를 묻는다면, 장미가 만발한 화려한 성이라는 대답이 많이 나올 것이다. ‘바람 한 점 없어도 아름다운 꽃, 가시 돋쳐 피어나도 아름다운 꽃을 받쳐주는 배경으로나 기억되는 베르사유 성. 그래서 표제가 지칭하는 가 장미로 태어났다는 오스칼을 말하는 걸까라고 웃음 짓고 싶은, 엉뚱한 발상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베르사유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만나고자 하는 진중한 자세에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었다.
 
저자는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고 파리 제7대학을 거쳐 소르본 누벨 제3대학에서 라신을 전공했다. 2002년 동서문학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첫 시집으로 <양철가슴>를 출간했다. 현재 파리에서 지내며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베르사유성의 역사를 다루기 위해 먼저 프랑스왕조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나열한다. 성의 탄생은 루이13세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기 위한 휴식처로 베르사유 숲에 작은 성을 지은 것으로 시작된다. 그야말로 작은 성이었기에 그리 소중히 돌보지 않다가 왕권강화의 목적을 위해 베르사유 숲을 이용한다.
 
저자는 베르사유 성을 사랑한 가 루이 14세라고 말한다. 사실 베르사유 성은 프랑스의 성이라기보다 태양왕의 성이라고 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릴 정도로, 루이 14세는 베르사유를 사랑했다. 루이 14세 또한 자신의 아버지인 루이 13세를 기억하는 차원에서 베르사유에 대한 인식을 달리했다. 루이 14세는 베르사유를 탈바꿈시키는데 열정적이었고 이후에 이곳에서 궁중향연을 많이 가졌으며 신분상 이례적으로 공연에 참여하기도 했다. 왕에 대한 경외심과 그에 따른 궁중예절이 철저하게 지켜져야 하는 엄숙한 공간으로서 실로 그 위엄이 대단했다.
 
루이 15세는 여색에 취해 일평생을 보냈다. 그래서 하찮은 여인들을 궁에 들여 복잡하게 놀아났고, 난잡하고 더러운 생활을 위해 베르사유의 그늘을 벗어나기 일쑤였다. 그 때문에 왕비와 그 자녀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는 베르사유 성을 좋아하지 않았고, 베르사유 성이 가진 모든 권위는 한순간에 추락했다. 루이 14세의 후광을 입고 오직 쾌락만을 좇으며 문란하게 산 그의 왕정은 곧 그 아들뿐만 아니라 프랑스왕조의 명예를 더럽히는 치욕의 씨앗을 안긴다.
 
저자는 루이 16세의 시대를 3부에 걸쳐서 소개하고 있다. 그만큼 베르사유 성의 종말을 깊이 있게 다룸으로써 독자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들어내고 있다. 루이 16세는 전대와 같이 문란하지 않았고, ()적문제로 인해 부부관계가 소홀했고, 예술이나 여색과 같은 선왕들의 행색을 좇지 않고, 공구로 가구나 만들고 독서에 심취했던 왕. 그는 왕가의 목숨이 위협받는 시민폭동의 상황에서도 심각한 우유부단함을 고수하며 왕으로서의 자질부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왕비는 세자비 때부터 7년간 밤마다 궁을 떠나 천민들과 도박을 일삼으며 나다니고 옷과 장신구 등의 사치로 물정모르고 국고를 탕진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놀아났는지 이미 귀족들과 시민들 사이에서는 늘 가십의 대상이 되어있었다. 백성들의 삶을 돌보지 않고 호화스러운 삶을 누린 대가가 너무 처참했고, 둘 내외는 모두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찬란했던 베르사유 성의 역사도 그와 함께 잠긴다. 현재는 베르사유 박물관으로서 매년 700만 이상의 관광객을 맞이하는 명소로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화려하고 말 많았던 왕들의 시대를 만났다. 보다 쉽고 재미있게 풀어준 덕에 별 어려움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저자는 역사적 상황을 설명하면서, 인물에게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대화체를 쓰고, 실질적인 감정을 디테일하게 적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 고증이 안 되어있는 지극히 사사로운 감정까지 저자가 쉽게 다뤄버리는 것 같아서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았다.
 
특히 기존 관념에 반하는 사실을 진실이라고 역설할 때에는 명확한 증거제시가 일반적인데, 저자는 그런 점에서 마지막장에 나열된 참고문헌들 이외에는 정확한 각주가 첨부된 설명이 없다는 점에서 조금 의외였다. 많은 역사를 다루고 그것에 대한 반증을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선악을 뚜렷하게 구분하면서 왕실에 대한 관용적 입장이 두드러진다. 여러모로 저자가 쓴 역사라는 면이 좀 진하게 배어져 나온다.
 
가지고 있을 때 지킬 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사람이 여유 있을 때 긴장하는 게 참 힘든 것이다. 몇 만의 시민들이 루이 16세에게 빵을 달라고 베르사유로 몰려올 때, 여왕은 책상에서 턱을 괴고 있다가 소식을 들었고, 왕은 사냥을 가 있었다. 몇 시간 후에 절대군주의 체제 아래서 편안하게 먹고 자는 그들에게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이 전개된다. 그러면 역사를 구경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때 이랬어야 했다고, 그때라도 어떻게 했다면 그렇게는 안됐을 거라고부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것이 그들의 -그 시절 왕과 왕비가 겪었어야 할- 운명이었다고 말하는 저자. 역사는 다 그렇게 실어가는 운명들의 집합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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