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1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클래식 27
조르주 상드 지음, 이재희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사람과 편지를 계속적으로 주고받는 것은 많은 배움도 성장도 있게 하지만, 또한 자신의 은밀한 내면을 되돌아보게 함으로써 많은 감정의 기복을 낳기도 한다. 글로 맺는 관계는 대면하는 것보다 더 긴밀한 무엇인가를 요하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관계가 낳는 것과 유사한 갈등을 겪게 될 때도. 그 관계는 결코 타인의 조언 같은 것으로 성숙해질 수 없다. 더구나 마음 속 깊은 언어를 주고받는 사이라 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그녀처럼 사람에게 열정적이었고, 그것을 글로 낱낱이 표현해 낼 줄 아는 여인이 과연 그 시대에 얼마나 있었겠는가. 그녀의 섬세하고도 매혹적인 필력이 많은 이들로 하여금 그녀 곁을 계속 맴돌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든 것은 배우고자 함이었을까, 느끼고자 함이었을까. 확실한 것은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많은 기대를 주었다는 점이다.

조르주 상드. ‘쇼팽의 어미’같은 여인으로만 잘 알고 있다. 편지글에서는 ‘오로르 뒤팽’인 그녀의 본명을 사용하고 있다. 원래는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여성 작가로 유명하다. 시골마을 노앙에서 고독한 소녀 시절을 보낸다. 여기에서 맛 본 고독과 할머니를 보살피면서 드는 감정은 수도원 친구인 잔, 에밀리, 셰리에게 쓴 앞부분의 편지들에서 잘 드러나 있다. 그 중에서 잔과의 우정이 가장 각별하다고 보이는 것은 잔과 가장 많은 편지를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18세때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으나 끝내 이혼한다. 이혼이 있기 전 그녀는 내통 관계를 지녔고, 그것이 남편과의 큰 마찰이 되었다. 편지 중반부에는 남편과의 사이가 무마되는 듯 보였으나 그것도 교양과 명예를 따지고, 사람들 시선이 중요했던 시절이었으니 조르주가 참았지, 지금 같았으면 애 버리고 나갈 여자였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까닭은, 그녀의 내통남과의 편지에서 엄청난 로맨스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 오렐리앙[내통자], 내 사랑, 당신을 영원히 잃을지도 모르는 지금 그 말을 다시 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했던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어요. 그 다른 사람은 이제 내겐 중요치 않아요. 난 그 사람을 잊었어요. 한 번도 본 적도 사랑한 적도 없어요. 오직 당신만을 사랑했어요. 이 세상에 오직 하나 당신만을. 당신만이 그럴 자격이 있어요. (p. 166)

진실한 사랑을 하는 여자가, 자기의 사랑이 아니라고 해서,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에게 그것도 그의 남편에게 이토록 유린과 기만을 떨 수 있었을까. 그러고도 이 여자의 불륜은 정신적 쾌락의 불붙는 야욕이었다고 비하시킬 수는 없는 것일까. 더군다나 이런 문투의 연속으로 그녀의 심정을 얘기하니, 내막을 알고 읽는 이에게는 그녀의 언어마저 더욱 역겹게 다가온다.

그래요, 카지미르[남편], 날 믿으세요. 난 남을 속일 줄을 몰라요. 정말 그래요. (…) 내가 당신을 속이고 속마음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그런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고 참을 수가 없어요. (p. 187)

수도원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편지, 혼인 관계를 기만한 연인과의 편지, 결혼 후 만난 친구들과의 편지로 구분할 수 있다. 총 72통의 편지를 다루고 있고, 1818년부터 1830년까지의 그녀의 편지를 순차적으로 실었다. 시간 흐름에 따라 여인의 인생 여정을, 삶의 변화에 따른 감성의 흐름과 성격적 결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또한 처녀 때와 아이를 낳은 여인일 때의 필치가 새삼 다르게 느껴짐으로써 여인의 성숙을 느끼기도 한다.

도덕적인 잣대를 들고 야멸찬 시선으로 이 책을 봐야 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실망하는 구석이 있다. 그것은 ‘문학’으로서의 실망이라기보다는 여자로서 가지는 그녀에 대한 실망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상당히 피폐한 여성이었는데, 골골하는 쇼팽을 어찌 거두었는지 신통하다. 문체가 읽어 나갈수록 지루하기는 하지만, 그 나름의 가치와 의미가 듬뿍 담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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