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 다른 생각, 그러나 다투어야 할 생각
이일훈 지음 / 사문난적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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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와 수단이 극대화 되어있는 사회이다. 너도 나도 자신을 PR하고 나름의 생각을 피력하고자 온라인 공간을 이용하고 있다. 댓글이라는 도구 또한 특정 주제에 대한 ‘다른 생각’들의 집합소이다. 하나의 생각이 그저 일인의 의견 표출로서 존재할 때와 저서로 출간될 때는 그 의미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에게 저서가 그 값어치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으려면 철저한 검열의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다른 생각에 대한 존중’을 화두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필자는 ‘얼마나 존중받을만한 생각으로써의 가치를 지닌 책인지’에 집중해서 읽었다.



저자는 이일훈. 한양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했고 실무를 익히던 초창기엔 건축평론을 병행했다. 서울시 건축상, 크리악어워드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고, <가가불이><모형 속을 걷다><불편을 위하여> 외 공동 저술이 있다.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대우교수와 문화관광부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른 ‘개념’과 ‘생각’이 필요한 강연에 자주 초청되며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책은 총 3장으로 나뉜다. 숲의 둘레, 풍경의 둘레, 건축의 둘레. 저자는 환경보존주의자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1, 2장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고, 자신의 전공인 건축관련 이야기보다는 환경에 관한 생각을 더 나누려고 한다. 1장은 숲을 잃어버린 도시의 답답함과 숲의 성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도시인들의 아둔함을 말한다. 일례로 새에 대한 이해없이 새들을 괴롭히기나 하는 ‘새집 달아주기’ 운동을 비웃는다. 궁극적으로는 숲의 지혜를 배워가야 하고, 숲을 사랑하고 지켜내는 ‘숲퍼’가 되자고 주창한다.



숲 속에서 인간이 편하면 숲의 생리가 불편하다. 자, 그럼 숲의 기운이 살아있는 불편한 숲을 만들고 다시 그 숲으로 가자. 불편함이 숲을 구원하리니. (p.62)



2장에서는 지금껏 개발론자들에 의해서 실행된 정책들이 얼마나 위험하게 발전되고 있는지를 논하고 그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놀랐던 것은 공원조성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한결같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는 것. 그는 숲을 중심으로 한 도시를 원하기에 인공적인 잔디밭의 확산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 장은 숲이 가지고 있는 에두름과 비정형적 속성을 모토로 한다. 빨리빨리 해치워버리려고만 하는 도시인들의 해결방식에 반기를 들며 서두르지 말고 생각 좀 하자 한다.



모든 일들을 제발 천천히 하자. 느리게, 그것도 아주 느~리게! 그 속에 세상 꽃일게 하자. (p.231)



저자의 전공을 살린 3장은 건축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이야기들도 포함되어있다. 전통적인 건축양식에 대한 예찬과 동시에 현대 건축물의 용도별 비판도 들어있어 흥미롭다. 저자가 말하는 ‘좋은 집’을 위한 조건 3가지 - 쾌적한, 솔직한, 생각이 깃든 -와 생태 건축에 대한 조언들은 필자가 가진 ‘집’이라는 개념을 되돌아보게 한다. 특별히 좋았던 부분이라면, ‘공간에도 어두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지 못한 조언이었다. 조도와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전등을 켜는 버릇, 에너지를 고려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일상을 꼬집으며 공간을 조금 어둡게 사용하라는 그의 말이 새삼 신선했다.



석유를 아끼기 전에 근본적으로 우리가 조금 어두운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는 인식을 높이는 것이다. (p.280)



문체가 아주 시원시원하다. 욕만 없지 거칠 것 없이 풀어놓고 있어 같은 생각을 품은 사람이라면 웃어가며 개운하게 읽을 수 있지 싶다. 저자의 말처럼 건축은 인간의 삶을 아우르는 분야이기에 환경과 건축을 다루었음에도 일반인에게 친숙한 소재들로 이어지고 있어 전문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저자가 의견을 내는 방식에 있어 양복입고 객관적으로 토론을 하자는 ‘게시’의 격이라기보다는 판잣집에 앉아 막걸리 한 사발 마시면서 주저리 늘어놓는 모양이 떠오른다. 주제 하나 잡아서 이건 이렇고 저렇다고 하는 말발 좋은 이의 연설을 연상케 한다. 그것이 이 서적이 지닌 또 하나의 개성이 아닐까.



독자가 들려주고 싶은 자신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길 때엔 소설가가 겪는 산고의 고통은 아닐지라도 나름의 자기 검열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간혹 그런 점에서 아쉬운 부분들이 발견된다. 예를 들면, 간판을 거꾸로 단 영업집은 들어가기도 싫고, 왠지 손님의 뒤통수를 칠 것 같은 기운이 느껴져 즐겁지 않다고 말하는 부분(p.295), 야간 조명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자는 밤새 밝혀진 인공조명이 싫다고 하는 부분(p.154), 패럴림픽을 올림픽보다 먼저 시작한다면 장애우를 대하는 우리의 인식도 달라질 것이라고 하는 부분(p.236) 등이다.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독자에게는 하등 도움이 안 될뿐더러 저자의 수준을 낮추는 발언이지는 않는가. 일례로 어느 국민도 패럴림픽을 먼저 한다는 이유로 장애우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올림픽보다 먼저 한다는 것이 존중받을 수 있는 이유에 기여한다는 말인가.



다른 발상이 주는 즐거움이 크다. 그것을 배려하면서 읽을 수 있다면 좋은 양분을 많이 취할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좋은 집은 생각하게 하는 집이라고 했다. 이 책은 독자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저자가 통찰하는 이 시대상을 읽어보는 것도 젊은이라면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정치하는 이들, 정치를 꿈꾸는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이야기들이 떼를 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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