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처음 가는 마음 ㅣ 창비청소년시선 36
이병일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8월
평점 :
평범하다. 일상이 녹아있다.
그래서 더 좋다.
짝사랑
속마음 털어놓지 말라고
혼자 끙끙 앓는 불씨가 된 밤
이 불씨는 번지지 않는다
책과 필통을태우지 않는다
더운 숨만 훅훅 끼치게 한다
심장이 콩알만 한 나는
그 애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꼬리가 무거워진다
그 애 이름만 써도
아 몰라,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멋 부리고 싶어졌다
아빠 사랑합니다
거머리 소년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빠가 일하는 곳에 들렀다
-----
그런데 오만 원권 한 장만 뺀다는 것이
두 장이 딸려 왔다
아빠, 사랑합니다!
내 입이 어느 쪽에 있는지 모르지만
오늘도 아빠의 피를 잘 빨아먹었다
수염이 새까맣게 자라고 있었다.
엄마
뒤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
유행 지난 내 옷을 입고 자는 사람
내 농구화를 신고
병원으로 출근하는 사람
나만 모르게 조용히 어깨를 수술한 사람
매일 속아 주면서 나를 대접해 주는 사람
-------
어쩜 이렇게 십대의 감성을 잘 살려 놓았는가. 내가 십대는 삼십 년에 지났음에도 이 시집에서 느껴지는 감성이 가슴깊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난 아직 늙지 않았나 보다. 일상적이다. 평범하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너무 특별하지도 않고, 너무 이상적이지도 않기에 더욱 가까이 느껴진다.
이 시인은 살아 있는 시를 쓰는 분이구나. 우리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너도 이렇냐? 나도 이랬다.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