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Cats - 고양이에게 by Snowcat
스노우캣 글.그림 / 모요사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집에서 상전 대접을 받는 고양이건

길에서 쓰레기 봉투를 뒤지는 고양이건

그들이 자신의 위엄을 버리는 일 따윈 없다.

p140

 

고양이한테 우린 배워야 한다.

고양이 만큼 고고한 품격을 가진 이가 있을까.

위엄이 곧 자존심은 아니다.

멋진 아우라를 품은 뚝심일까.

 

 

"You will always be lucky if you know how to make friends with strange cats"

p143

 

가끔 길고양이가 무참히 학대당한 걸 보면, 너무 슬퍼진다.

고고한 고양이와 친해진다는 건,

그만큼 당신도 고고하단 것 아닐까.

길고양이도, 생명체다.

좀 아껴줬으면 좋겠다.

 

 

"비참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두가지는

고양이와 음악이죠"

p174

 

슈바이처 박사가 한 말이란다.

고양이와 음악

고양이.

그 고양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니가 뭔데 나의 비참함을 씻겨주는 거니.

그저, 가만히, 위로하는, 눈빛, 행동

그래 그거면 충분하지.

 

 

 

  전체적으론, 고양이 화보집이다. 지은이의 동거 고양이 아메리칸 숏 헤어, 나옹이. 그 녀석의 사진이 한 가득 실려있다. 그리고 스노우캣의 일러스트들도 한가득 실려있고, 고양이에 대한 그녀의 생각들이 실려있다. 종종 고양이 발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그렇게 귀엽단다. 나도 아니란 말은 못하겠다. 방방 뛰어다니는 강아지들보다, 좀 더 고고한 고양이가 더 끌린다. 절대 사람을 자신보다 높게 보지 않는, 자기가 가장 높은 자리에 존재한 다 믿는 고양이. 귀여운 것 모습 속엔 위엄 돋는 실체가 들어있다. 살갑진 않지만, 종종 다가와 슬쩍 스치고 지나간다. 그거면 온 피로가 녹는다.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더 위로가 된다. 그래서 고양이에 빠져드는 가 보다. 귀찮게 하지 않지만, 내가 필요할 땐 언제든 찾아와준다. 고양이. 하... 키우고 싶다......ㅠ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만 한 가지는 약속한다.

 

 

이건희 부자의 지극히 사적인 욕심 때문에 우리의 국가 시스템이 그렇게 돈에 철저히 망가졌다고.

p150

 

자본주의란 말도. 돈 있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얘기지.

돈으로, 정치하는.

돈으로, 결국 망하는.

 

 

 

 

"보통 사람은 자기보다 열 배 부자에 대해서는 욕을 하고,

백배가 되면 무서워하고,

천배가 되면 그 사람 일을 해주고,

만 배가 되면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

p163

 

이건희의 노예가 될 필요없다.

이건희는 삼성이 아니다.

삼성의 좋은 제품들에 노예가 되는 건 당연한 거다.

다만, 이건희는 삼성이 아니란 것, 그것만 알면된다.

이건희가 사라진다고 삼성이 사라지진 않는다.

 

 

 

 

어떤 사회든 소수자가 단독으로 행동하면 바로 죽는 거니까.

p181

 

소수자가 정해지는 건, 왜 돈과 권력 따위일까.

소수+소수+소수=다수

소수자들의 행동들이 모여야 한다.

 

 

 

 

원래 보수란 이런 거거든.

전통, 원칙, 자유에 목숨까지 거는 기개,

거기에 어긋나면 왕과도 한판뜨는 곤조.

p234

 

지금, 우리나라에서 소위 '보수'라고 불리는 사람들,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은

뭐지? 보수인 척, 되도 않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자기 돈, 자기 지위 지키려는 보수

'욕망이 이념 행세하며 보신이 신념 구실하고 반북이 마치 철학이라도 되는 줄 아는 자들이

스스로를 보수라 자처해온 게 우리네 형편이야.

보수라서 문제가 아리나 보수 아닌자들이 보수 노릇 해온 게 문제였다고.'

 

 

 

 

 

투표는 내 스트레스의 근원을 줄이려는 노력이야.

그게 줄어야 내가 행복해지니까.

내 행복과 정치의 연결 고리를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이명박이 얼마나 고마워.

p259

 

투표안한사람들이 꼭, 나라가 어쩌구, 민주주의가 어쩌구, 정치가 어쩌구.

변화는 우리가 이끌어 내는 거다.

그냥 고고한척 가만히 있는다고 누가 밥 갖다주지 않는다.

많이 알고, 누리고 싶다면, 투표하자.

옳은 것에.

 

 

 

 

 

나더러 우파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좌파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난 사실 언젠가부터 그런 거 전혀 관심 없어.

거창하게 제3의 길을 선언하는 건아냐.

인간의 복합성을 그렇게 구분하는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야.

난 그냥 본능주의자.

p307

 

우파고 좌파고 결국은 다 먹고살려고 하는 거 아닌가?

안 힘들게, 좀 편하게 살게해달라고, 정치하라는 거 아냐?

뭘 그렇게 나눠.

그렇게 흑 백 아니잖아.

머리 싸매고 어떻게 하면 배고프지않을까 생각해줘야하는거 아니야?

이념이 무슨 소용이야.

지금당장 배고픈데.

 

 

 

 

이념이 사람을 구하리라.

아니다.

이익이 나라를 구하리니.

아니다.

인간이 모두를 구해야 하는 시대다.

이념과 명분과 논리와 이익과 작전과 조직으로 무장한 정치인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보편 준칙을, 담담하게, 자기 없이, 평생 지켜온 사람이 필요하다.

시대정신의 육화가 필요하다.

p327

 

 

 

시험기간에 책을 읽다, 포기했다.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았다. 내가 정치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라, 읽는 내내 불편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고 다시 책을 잡았다. 그리고 한 숨 한번 안쉬고 읽어내려갔다. 아는 만큼 보인다. 내가 이렇게나 모르고 있었구나 싶었다. '추정'되는 것들을 보며 턱이 빠질뻔도 했다.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근데 곧 수긍이 됬다. 그러고도 남지. 그리고 불만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우린 왜 이런가. 왜 이래야만 하는가. 뭐가 달라서. 뭐가 부족해서. 그런 생각으로 끝까지 읽었다. 사실 정치에 대해 이래저래 할만큼 똑똑하지 못하다. 진보의 말들은 어렵다. 보수는 그 자체로 싫다. 근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내 언어로 되어있다. 읽을 수 있으니, 이해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을 것 같다. 배울 것 많은, 아직까진 소시민인 나는 '투표'가 내 힘의 전부다. 그러나 이건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래, 불만은 내 한표로 바꿔보자. 희망으로. 아직, 많이 공부해야겠다. 이 책의 마지막 장 "가능,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기본적인 연애 소설을 쓰고자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 그 사람을 느낀다는 것.
인간은 누구나 천애 고독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작가의 말

 

 

 

 

정신과 의사 따위, 어차피 그런 거다.

그 의사가 나쁜 게 아니다.

아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p85

 

나도 볼수없는 나의 정신. 그게 아무리 뇌랑 연관되었다해도,

정신이란 보이지 않는 거다.

왜 못고치냐고 탓하지않는다.

나에게조차 보이지 않는 나의 정신은 병을 얻었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보이지 않으니까.

그녀에게 정신과의사는 그저 시덥잖은 말밖에 할 수 없는 그런 존재다.

 

 

 

 

"무츠키들 은사자 같다고,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p126

 

은사자.

은빛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 결국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소수.

초식성 사자.

그러나 은사자들은 무리를 떠나 어디선가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고 있다.

쇼코는 무츠키'들'이라고 부르며, 동성애자들에게 이런 은사자같다고 한다.

그들은 초식성이다.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그저 은빛의 색을 가지고있을뿐. 색만 다를뿐, 모습은 똑같다.

그러나, 은빛이란 이유만으로 같은 종족에게 버림받고 어디선가 자신들의 공동체를 만든다.

그러나 그 공동체는 보이지 않는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게 깊게 깊게 숨어버린다.

무츠키들 뿐 아니라, 무츠키의 아버지가 말했듯이 쇼코도 은사자같다.

알콜홀릭을 앓고 있는 그녀도, 다수의 사자는 아니다.

그저, 남들관 다르니까.

평범, 보통, 지극히 상대적인 그 말에서 아주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온갖 질타를 짊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에쿠니 가오리. 드디어 첫번째 책을 읽었다. <반짝반짝 빛나는>역시, 한때 책보다 TV를 가까이했던 나는 김현주와 이유리가 나오는 드라마부터 떠올렸다. 뒤바뀐 딸,그 여자들의 이야기. 그러나, 이 책은 앞서 작가가 아주 기본적인 연애소설을 쓰고자 한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연애의 기본. 그것은 무엇일까.

  정신에 약간 문제가 있는 쇼코, 그런 그녀의 남편이자 동성애자 무츠키, 그리고 그런 무츠키의 남자친구 곤. 책은 이 세 인물에 대하여 풀어낸다. 기본적인. 연애소설. 쇼코는 무츠키를 사랑하고, 무츠키는 쇼코도 곤도 사랑한다. 곤은 무츠키를 사랑하면서 또 쇼코를 좋아한다. 연애의 기본은 뭘까. 평범을 넘어선 이 사람들에게서 작가는 어떤 기본을 찾고자했을까.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연애의 기본은 관심과 사랑이다. 정신병자라고, 동성애자라고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가 익숙치 않으니까, 따돌려버리는 것뿐. 재고 따지고 밀고 당기고를 떠나, 진심으로 연애의 기본을 수행할 수 있는, 순수한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이 셋이 아닐까. '사랑'. 그 존재만으로도 그들은 만족한다.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그래야만 한다. 이상한건 그들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다. 정작 사랑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들.

  형식으로 보자면, 쇼코의 입장에서 한챕터, 무츠키의 입장에서 한챕터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하듯, 서로 이해하듯 쇼코에서 무츠키로, 무츠키에서 쇼코에게로 시선은 옮겨진다. 그녀와 그. 또 그와 곤. 멀리서 사랑을 찾는 우리는 어리석다. 이 책에서, 세상에서 아마 가장 사랑을 잘 실천하는 사람이 쇼코가 아닐까. 사랑을 핑계로 상대에게 뭔갈 바란다는 건, 더렵혀진 사랑이다. 사랑보단 욕망이 앞선 것이다. 은사자처럼 하얀 마음을 가진 이 사람들은 참 깨끗하다고 느껴진다.

  이러한 사람들이 현실에도 존재할까. 다름이 틀림이 아니란걸,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고 안아주는 사람들. 대가성을 바라지 않는 그런 순수한 사랑. 내가 너무 기대를 하고 읽었을까. 조금은 부족한것 같았지만 이렇게 다시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글을 읽을 만한 재미가 있는 소설인 듯 싶다. 다음은 호텔선인장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하기 때문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현실의 부당함을, 현실이 인간의 갈망·욕구·꿈을
충분히 만족시켜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는데 소설만한 것은 없다.
-마리오 바르가스 료사-

 

 

그러고 보면 진실의 힘은 참으로 귀하고 소중했다.

그가 내미는 100달러짜리 지폐들도 진실의 대가로 주어지는 게 아니겠는가.

p47

 

진실이 귀해졌다.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까닭일까.

결국 에비가 그렇게 된것은 사람의 거짓말로 인했으니까.

진실앞에서 강자의 거짓은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단 한마다의 진실.

 

 

 

 

 

지금처럼 커뮤니케이션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도 없었지만

또 지금처럼 서로의 말을 깊이 경청하지 않는 시대도 없었다.

p152-153

 

상대의 눈을 바라보고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딱딱하고 네모난 화면을 보고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소통

너와 나의 소통이 아닌, 어쩌면 나혼자만의 소통이다.

친구를 앞에두고도 서로 자기 폰을 바라보며 sns를 한다.

우리는 듣는 법, 경청하는 법을 잊어간다.

 

 

 

 

서로 사랑할 때는 결코 밤이 찾아오지 않는다.

p212

 

찾아올 필요가 없던 밤이란걸 말하는 걸까.

하나의 사랑을 위해, 위한다는 자신만의 생각으로

하나의 사랑을 놓아버렸다.

니콜과의 사랑은 라일라에 대한 사랑으로 옮겨갔고

그 잃음에 모든 사랑을 잊은 듯.

그건 밤이 아니었을까.

 

 

 

 

"때가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었어."

p289

 

꼬마아가씨가, 물론 최면속이었지만,

마치 운명론자인 듯 말한다.

난 그때 죽을 운명이었다고.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것이라고.

더이상 과거의 그 자리에 머물지 말라고.

자책하지 말라고.

라일라의 저 말은.

마크에게도 앨리슨에게도 자유를 쥐어주는 듯 하다.

 

 

 

 

때로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대단치 않은 변화에 의해 좌우된다.

한번의 만남, 한 번의 결정, 한 번의 기회, 한가닥의 가느다란 선......

p315

 

그 '한 번'을 잡느냐 못잡느냐의 차이

 

 

고등학교때, 학교 도서정리를 하면서 기욤 뮈소의 <구해줘>란 책을 봤다. 읽진 않았다. 공부핑계였다. 어쨋든, 이제야 처음으로 기욤 뮈소의 책을 읽게되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내가 참 책을 안읽긴 했구나 싶다. 남들 다 읽어본 책을 이제야 읽다니. 전공 시험이 끝나자마자 책을 읽기시작했다. 간결한 문장들이 마치 영화를 보고있다는 상상을 하게만들었다. 장소와 시간을 적어논 것은 마치 하나의 씬(Scene)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리고 마크와 니콜의 첫 만남 장면에서는 극의 대본처럼 써놓아, 진짜 이게 책인지 영화인지 헷갈리게 하기도 했다.

솔직히, 결말이 반전이라고는 하지만, 내겐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다. 뭔가 예상을 하고있었다. 내 삶은 너의 삶과 너의 삶의 그(그녀)의 삶과 그다지 떨어져있지 않다. 나의 이것은 너의 그것으로 인해 발생되었고, 아니 변화되었고, 너의 그것은 그의 그것으로 바뀐것이다. 그렇게 마크, 에비, 앨리슨의 삶은 작게든 크게든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다. 앨리슨의 사고는 마크에게 절망을, 앨리슨이 남긴 책은 에비에게 희망을, 그 책은 마크의 친구 커너가 쓴 책이고 그 친구 둘은 에비와 비슷한 과거를 보냈다. 얽히고 얽혀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내가 포스팅 제목에 쓴 "미래는 과거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는 옮긴이의 말에 있는 내용이다. 인물들은 모두 과거의 어떤 것에 붙잡혀있다. '어떤 것'이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그들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다. 근데 그 과거란 것이 이미 지나간 것을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에 그들은 그다지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확실하다.(앨리슨의 경우는 조금 예외일까?....) 그러나 그들은 자책하고, 그 과거의 어떤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을 학대한다. 미래는 과거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 그 과거는 더 멋진 미래를 위한 준비단계였을까?

최면치료 속의 상황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일까. 라일라는 단지 최면치료의 힘으로 나타났을까, 아님 그녀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둘러싸고 안타까운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아버지와 앨리슨, 그리고 에비까지 그 슬픔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나타났을까. 최면은 단지 최면이었을가. 라일라가 가리킨 저 위쪽의 순간은 아니었을까. 우리의 삶은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아.... 이래서 기욤 뮈소 기욤 뮈소 하는 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의 조각들 - 타블로 소설집
타블로 지음 / 달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름다웠던 만큼 슬펐던, 슬픈 게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던 날들.
그때와 많이도 멀어진 지금,
어떻게 보면 나는 여전히 제자리다.
intro 타블로

 

나는 침실에 틈이 있는지 항상 확인하곤 한다.

p11

 

사람이 잠을 자다 죽으면 영혼이 빠져나갈 곳을 찾는데,

출구가 없으면 영원히 방 안에 갇혀버리게 된다는 말을 들은 첫번째 단편 소설의 주인공이 말한다.

첫문장을 읽고, 뭔가 아련함을 느꼈다.

죽음을 염두해둔 청년의 습관.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갇혀버리게 된다는 것이 두려워보이는 그.

갇혀있기를 싫어하지만, 정작 떠나지도 못하는.

아무도 붙잡는 사람은 없다.

그 스스로가,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로부터, 이 집으로 부터, 자기 자신으로 부터 붙잡고 있다.

아버지처럼 되기 싫다는,

혹은 너무나도 아버지처럼, 한때 아버지가 가진 그 눈빛을 닮고 싶다는,

모든 생각들을 다 움켜지고 정리하지 못하는 청년의 이야기가 소설집 처음을 연다.

 

 

 

 

 

 

 

"니가 말했지?

내가 너의 경제력이나 심지어 너의 그 빌어먹을 사생활조차 신뢰할 수 없다고 해도,

너의 가능성만큼은 믿어달라고.

근데 뭐야? 도대체 무슨 가능성?

마크. 미안하지만, 이건 진짜 너가 아니야."

p140-141

 

불행히도 마크는 자신이 저 말을 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어쩌면 내가 지금의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외치고싶은 말이다.

이건 진짜 니가 아니야.

아니, 나 자신에게 외치고 싶은 말일 수도 있겠다.

'가능성'을 믿어달라고 말하고, 그 믿음만을 믿고 행동으로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으면,

그 믿음에 신뢰를 얹을 수 잇을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넌 몰라

라고 말할 수도있겠지.

그렇지만,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초점을 잃은 모습 뿐이다.

'가능성'을 믿어달란 건, 용기없는 자의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 나 스스로도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말 할 수밖에 없다.

나 아니면 누가 말해 줄 수 있나? 너에게. 나에게.

 

 

 

 

 

 

"내겐 항상 비가 와요.

하늘이 부서지고 유리 조각들이 쏟아져요."

p194

 

당신의 조각들은 나에게 유리 조각처럼 쏟아져내려요.

아름다움이 슬픔이고, 슬픔이 아름다움이라 생각했던 그 시절.

정신과 상담을 받는 그녀는 우리눈엔 안쓰러워보이지만, 누구보다 아름답다.

그녀를 치료하던 의사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구해줘"라 말한다.

그러나 그녀와 그는 커다란 벽으로 단절되있다.

이미 그가 그녀를 구해주기도, 그녀가 그를 구해주기도 틀렸다.

우리는 스스로 내 주위에 벽을 쌓고, 넘지 못한다.

벽을 부수는 것도 나의 몫인데, 그저 동경만 할뿐.

 

 

 

 

  참을 수 없었다. 시험기간이고 뭐고, 사실 <닥치고 정치>를 읽고 있었지만, 뭔가 또 하나의 시험 공부를 하는 듯한 불편함에 바로 타블로의 소설집을 꺼내들었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때, 아니 그 이전 20살의 타블로의 모습을 떠올리며 읽으려고 애썼다. 그에게 일어난, 일어나고 있는 안타까운 마녀사냥은 이 이후의 일이니, 되도록이면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밤마다 고요히 그의 음악을 들었던 교복을 입던 나를 떠올리며, 그렇게 가만히 책을 읽어내려갔다.

  <당신의 조각들>. 우리들의 조각들이기 이전에, 타블로 그의 조각들이었다. 그의 노래가사 속에 나오는 블루노트의 선선함, 날카로움, 아픔 모든 것이 그 곳에 있었다. 길고 짧은 10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있었다. 각각 다른 제목을 가진, 다른 시간에 쓰여진 소설이었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듯 했다. 모두 다 픽션이라고 했지만, 타블로의 모습을 씻어내기엔 내가 아직 내공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아주 단편적인 이야기는 아주 긴 여운을 남긴다. 그저 지나가는 습작일지라도, 순간 스쳐간 그의 감성,감정들은 그 곳에 오롯이 있었다. 스스로 이제 막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어설프게나마 가지게 되었던 그 때의 자신의 글을 번역한다는 것. 영어에서 한글로 옮겨 쓰는 그의 행위는 10대와 20대의 그 사이에 어설프게 존재하던 자신을 20대를 다 지나보내며 조금 더 성숙하게 다듬는,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때의 나에게 위로를 건네며, 어루만져주고, 안아주고 싶었다던 그의 인트로가 너무나 마음에 와닿았다. 그리고, 그 당시의 어설프고, 혼란스러웠던 그의 모습들이 완성되지 못한, '간발의 차'로 완성을 미루고 있는, 그 소설속의 주인공들에게 투영되어있다.

  욕심이겠지. 내 조각들도 언젠가 누군가들에게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

 완전치 못한 사람들이다. 그의 소설에 결코 행복한 사람은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완전하단 것은 뭘까. 스스로를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까. 어디 한군데씩 고장난 우리들의 조각들. 그 조각들을 맞추면 어쩌면 완전해질 수 있지도 않을까. 왜 난 조각났을까. 그것이 내 조각이긴 할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지만, 답은 없다. 내 스스로가 찾아야 할 답은, 아직 내게 나타나기 싫은 가 보다.

  그러나, 이 책. 호불호가 갈릴 듯 싶다. 어디선가 이게 싸이월드 다이어리와 다른점이 무엇이냐는 글을 봤다. 내 다이어리가 이런 글들로 가득하다면, 난 행복할 것 같은데. 어쩌면 허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면 나의 조각들인 이야기들은 여전히 내게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엔딩이 없기 때문일까. 애초에 그런 엔딩이 존재하긴 할까. 해피엔딩을 믿지 않는 내게, 참 깊이 생각하며 읽을 만 한 책이었다. 그러나, 허전함이 남는 건, 왜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