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현실의 부당함을, 현실이 인간의 갈망·욕구·꿈을
충분히 만족시켜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는데 소설만한 것은 없다.
-마리오 바르가스 료사-

 

 

그러고 보면 진실의 힘은 참으로 귀하고 소중했다.

그가 내미는 100달러짜리 지폐들도 진실의 대가로 주어지는 게 아니겠는가.

p47

 

진실이 귀해졌다.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까닭일까.

결국 에비가 그렇게 된것은 사람의 거짓말로 인했으니까.

진실앞에서 강자의 거짓은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단 한마다의 진실.

 

 

 

 

 

지금처럼 커뮤니케이션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도 없었지만

또 지금처럼 서로의 말을 깊이 경청하지 않는 시대도 없었다.

p152-153

 

상대의 눈을 바라보고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딱딱하고 네모난 화면을 보고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소통

너와 나의 소통이 아닌, 어쩌면 나혼자만의 소통이다.

친구를 앞에두고도 서로 자기 폰을 바라보며 sns를 한다.

우리는 듣는 법, 경청하는 법을 잊어간다.

 

 

 

 

서로 사랑할 때는 결코 밤이 찾아오지 않는다.

p212

 

찾아올 필요가 없던 밤이란걸 말하는 걸까.

하나의 사랑을 위해, 위한다는 자신만의 생각으로

하나의 사랑을 놓아버렸다.

니콜과의 사랑은 라일라에 대한 사랑으로 옮겨갔고

그 잃음에 모든 사랑을 잊은 듯.

그건 밤이 아니었을까.

 

 

 

 

"때가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었어."

p289

 

꼬마아가씨가, 물론 최면속이었지만,

마치 운명론자인 듯 말한다.

난 그때 죽을 운명이었다고.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것이라고.

더이상 과거의 그 자리에 머물지 말라고.

자책하지 말라고.

라일라의 저 말은.

마크에게도 앨리슨에게도 자유를 쥐어주는 듯 하다.

 

 

 

 

때로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대단치 않은 변화에 의해 좌우된다.

한번의 만남, 한 번의 결정, 한 번의 기회, 한가닥의 가느다란 선......

p315

 

그 '한 번'을 잡느냐 못잡느냐의 차이

 

 

고등학교때, 학교 도서정리를 하면서 기욤 뮈소의 <구해줘>란 책을 봤다. 읽진 않았다. 공부핑계였다. 어쨋든, 이제야 처음으로 기욤 뮈소의 책을 읽게되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내가 참 책을 안읽긴 했구나 싶다. 남들 다 읽어본 책을 이제야 읽다니. 전공 시험이 끝나자마자 책을 읽기시작했다. 간결한 문장들이 마치 영화를 보고있다는 상상을 하게만들었다. 장소와 시간을 적어논 것은 마치 하나의 씬(Scene)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리고 마크와 니콜의 첫 만남 장면에서는 극의 대본처럼 써놓아, 진짜 이게 책인지 영화인지 헷갈리게 하기도 했다.

솔직히, 결말이 반전이라고는 하지만, 내겐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다. 뭔가 예상을 하고있었다. 내 삶은 너의 삶과 너의 삶의 그(그녀)의 삶과 그다지 떨어져있지 않다. 나의 이것은 너의 그것으로 인해 발생되었고, 아니 변화되었고, 너의 그것은 그의 그것으로 바뀐것이다. 그렇게 마크, 에비, 앨리슨의 삶은 작게든 크게든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다. 앨리슨의 사고는 마크에게 절망을, 앨리슨이 남긴 책은 에비에게 희망을, 그 책은 마크의 친구 커너가 쓴 책이고 그 친구 둘은 에비와 비슷한 과거를 보냈다. 얽히고 얽혀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내가 포스팅 제목에 쓴 "미래는 과거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는 옮긴이의 말에 있는 내용이다. 인물들은 모두 과거의 어떤 것에 붙잡혀있다. '어떤 것'이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그들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다. 근데 그 과거란 것이 이미 지나간 것을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에 그들은 그다지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확실하다.(앨리슨의 경우는 조금 예외일까?....) 그러나 그들은 자책하고, 그 과거의 어떤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을 학대한다. 미래는 과거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 그 과거는 더 멋진 미래를 위한 준비단계였을까?

최면치료 속의 상황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일까. 라일라는 단지 최면치료의 힘으로 나타났을까, 아님 그녀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둘러싸고 안타까운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아버지와 앨리슨, 그리고 에비까지 그 슬픔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나타났을까. 최면은 단지 최면이었을가. 라일라가 가리킨 저 위쪽의 순간은 아니었을까. 우리의 삶은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아.... 이래서 기욤 뮈소 기욤 뮈소 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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