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2시 쯤 도서관으로 오는 차 안에서 본 하늘은 정말 멋있었다. 운전하는 중이 아니라면 사진을 찍어두고 싶은 하늘이었다. 글이나 말로 본 그대로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참 슬펐다. 사진을 찍지 못해서 아쉽다는 생각을 했지만 곰곰히 생각하니 어차피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운전하면서 보는 풍경은 걸으면서 또는 다른 차를 타고 가면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들었던 거다.
커다란 하얀 뭉게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는데 참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퇴근할 때 본 하늘도 아침 못지 않게 멋있었다. 조금 있으면 보름달이 될 달이 동쪽 하늘에 하얗게 떠 있었다. 물론 아침에 본 것 같은 뭉게구름이 옆에 있었다. 동쪽 끝에 보이는 커다란 구름이 내 머리 위에는 왜 없을까 하며 운전 하는 도중에 머리 위를 쳐다보고 싶었다.
집에 가서는 내내 테드를 보았다. 19분 안에 어쩌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담을 수 있었지하는 감탄과 함께 열심히 보았다. 이자벨 아옌데, 댄 애리얼리, 리처드 도킨스 등 그동안 책으로만 알고 있던 저자를 보니 참 좋았다.
아침에는 막 화가 났다. 집이 어질러져 있는 것도 화가 났고, 아이를 깨우는데 신경질을 내는 것도 화가 났다. 출근하면서 생각해 보니 토요일, 일요일에 자원봉사 학생들을 만나러 도서관에 와야 했던 상황에 화가 많이 났던 모양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 아이들을 맡게 되는 상황을 만든 사람들한테 화가 났다. 직접적으로는 에이팀장이 나한테 먼저 상의한 것, 그리고 비팀장도 내가 맡겠다고 했을 때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그러려니 한 것이 속상했다. 왜 나한테 책임을 돌리는 거지. 그리고 왜 나는 그 책임을 떠 맡은 거지? 물론 내가 여기 장이면서 우리 규정상 안됩니다.라고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음으로는 부탁하는 사람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 일이 얼마나 받는 쪽에서는 부담이 되는지에 무감각한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아이들 부모에게도 화가 났다. 자원봉사를 하러 왔으면 시간을 기관에 맞추어야 하는데 자기들 일정에 우리가 맞추어 주어야 하는건가? 어찌 되었든 중학생쯤 되었으면 자원봉사는 부모가 알아서 만들어줄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들한테 은연 중에 어떻게 사는지를 알려주는 일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상급기관 또는 어찌 되었든 거절하면 같이 일하기가 신경 쓰이는 쪽에게 부탁을 하면 안된다. 불의가 달리 생기는 것이 아니다. 아주 사소하면서도 별 것 아닌 일에서부터 시작하더라. 어제 본 테드에서 댄 애리얼리가 한 내용이다. 지금 검색해 보니 그 강연 내용이 최근에 나온 책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에 나올 것 같다.
사실 내가 그 아이들더러 우리 도서관 자원봉사 프로그램은 이러이러하니 너희들이 선택해야겠구나라고 말을 하지 못해서 더 화가 난다. 원칙도 있어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대안으로 만들어두어야겠다. 그리고 내가 왜 직원들이 업무가 과중할까봐 전전긍긍하는 거지?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될 일까지 대신 해서 결정하는 나쁜 버릇을 어이 하나?
어찌 되었든 결국 전체 상황을 깔끔하게 통제하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을 못했다는 점에서 나 스스로한테 화가 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