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에 들어오며 로버트는 오늘도 밝은 얼굴로 인사했었다.
쨍한 자줏빛 스웨터에 잿빛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자신에게잘 어울리는 게 뭔지 아는 남자의 옷차림이었다. 나는 로버트가평소 옷을 잘 갖춰 입는 게 좋았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노동 앞에서 어떤 격식과 약속을 지키는 것 같아서였다. 그건 본인뿐 아니라 상대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몇 년간 그런 존중에 좀 목말라 있었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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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뭐라 더 말을 못하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마나한 말‘을 최대한 진심어리게 하는 것도 어른의 화법일 텐데, 누군가의 부고와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가 가진 표현의 한계와 상투성에 어쩔 줄 몰라했다. 상투성이 뭐 어때서. 세상에 삶만큼 죽음만큼 상투적인 게 또 어디 있다고.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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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에 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흘 내 빈소를 지키다 병원에 상복을 반납하며 서글픔과 후련함을 함께 느꼈다. 하지만 그런 스스로가 부끄럽지는 않았다. 나는 할 만큼 했다는 마음, 세상 누구도 내게 손가락질할 자격이 없다는 반발심이 들었다. 동시에 누군가 내 손을 잡고 무언가 의미 있고 따뜻한 말을 해주길
바랐다.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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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은 무표정한 알굴로 맛을 음미하며 지금 이순간 홀로 집에 가고 있을 엄마를 떠올렸다. 나의 오늘과 당신의 오늘이 다르다는 자명함이, 엄마의 하루와 자신의 하루의 속도와 우선순위, 색감과 기대가 늘 달랐다는 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게 문득 뼈아프게 다가왔다. 아무리 최선을다한들 자신은 이 감정을 평생 느낄 거라는 점도 ‘나만 겪는 일은 아닐 텐데. 누군가는 진작 감내해온 일일 텐데.‘ 다들 대체 이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어쩌면 다들 날마다 아무 내색 않고 일터에 나와 있는 걸까?‘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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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부고 앞에서 손익을 따지는 스스로가 싫었지만깊은 실망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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