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먼 놈의 남자가 형광등 한나도 못 갈아 낀대? 윤재는 그 옛날에도 혼차서 뚝딱 해치우등만. 멋 하나 윤재보담 낫응 것이 읎당게. 인물이 낫기를 해, 다정하기를 해. 아이, 니가 전등 쪼까 비춰봐라."
"윤재가 누군데?"
그때까지 나는 어머니가 재혼했다는 걸 알지 못했다. 형광등을 갈아 끼우려 의자에 올라간 어머니가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버지가 어머니 대신 넙죽 말을 받았다.
"누구긴 누구겄냐! 늬 어매 첫서방이제. 서방 앞에서 첫서방 야그를 저래 당당허니 꺼내는 사램은 대한민국에 늬 어매 하나배끼 읎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아리는?"
"일등!"
"아들보담 낫구만."
아버지가 소리 내어 웃으며 마당을 빙 둘러 내달렸다. 새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뭐가 그리 좋았는지 나는 아버지의 목 위에서 등허리가 흠뻑 젖도록 웃어젖혔다. 우물가에 핀 달큰한 치자꽃 향기에 숨이 막혔다.
아무 걱정 없이 행복했던 그런 날도 있었다. 이듬해 아버지는 감옥에 끌려갔고, 나는 아버지를 잃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불행했다. 광주교도소에 있다는 걸 알았지만 만날 수 없는 아버지는 없는 것과 같았다. 몸 약한 어머니를 대신해 온몸으로 놀아주던 아버지를 잃고 나는 세상 전부를 잃은 느낌이었다. 그때 잃은 아버지를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도 되찾지 못한 게 아닐까? 아버지를 영원히 잃은 지금, 어쩐지 뭔가가 억울하기도 한 것 같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란 머리만 보고 노는 아이라 함부로 판단한 게 미안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쌍욕을 내뱉은 아이가 제풀에 놀라 제 입을 틀어막았다. 샛노랗게 머리를 염색했어도 아이는 아이였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아이가 제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며 쏘아붙였다.
"담에는 핑크로 염색할 건디요!"
날 선 시선만 받으며 살아온 모양이었다. 그런 시선에 지지 않으려는 아이의 기세가 아버지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핑크가 더 어울리겠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