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안보이는 엄마와의 산책
"엄마와 그렇게 꼭 달라붙은 채 매일같이 시간을 보낼수 있던 건 다른 사람들은 누리지 못할 축복이었어." 그리고언니는 또 이렇게도 말했다. 걸으면서 언니는 큰이모를 위해 보이는 풍경을 묘사해주곤 했다고. "엄마와 여길 같이 걸었다면, 나는 이 아름다움을 묘사하기 위해 애를 썼겠지. 사방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환하고, 온통 부드러운 흰빛이라고.눈 위로 떨어져 내리는 햇살은 아주 연한 노란색이라고 그렇게 묘사를 하고 나면 큰이모는 "이젠 내 차례야" 하고 말하곤 했다고 했다. 그리고 큰이모는 시각을 잃은 후 얻게 된예민한 다른 감각들을 활용해 큰이모가 느끼는 풍경을 언니에게 묘사해주었다. 바람이 어제보다 부드럽고 가볍구나.눈 때문인지 사방에서 지난여름 우리가 쪼개 먹었던 수박향이 나는구나. 까치 소리가 평소보다 가깝게 들리는구나."엄마가 묘사해주던 그 세계 역시 정말로 아름다웠어." - P69
뉴욕에 눈이 몹시 많이 오고 난 이후의 어느 날이었고, 우리는 눈 덮인 센트럴파크를 걸어보기 위해 만났다. 진흙투성이의 잔디밭엔 흰빛이 가득했고, 눈이 쌓인 채 넓게 얼어붙은 빙판은 겨울 햇살에 황금색으로 빛났다. 5번가의 높다란빌딩들에 둘러싸인 아이스링크에는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청록색 침엽수들이 울타리를 이루는 눈길위엔 커다란 눈사람이 서 있었다. 언니가 그 말을 한 건우리가 쉽 미도우를 지나 베데스다분수 즈음 이르렀을 때였다. - P68
그녀의 이목구비나 실루엣, 목소리의 높낮이와 이름 같은건 세월 속에 지워졌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얼굴에 일렁이던 특별한 빛에 대해서는 기억하고 있는데, 그건 사랑에 빠진 사람의 얼굴에서만 볼 수 있는 빛이었다. 사랑에 빠진 상대가 당신을 황홀한 듯 바라볼 때 당신의 눈동자에 비치는그 빛, 터무니없는 열망과 불안, 기대가 뒤섞인. 지금까지 내가 그걸 기억하고 있는 건, 그녀 옆에서 개리를 바라보던 언니의 얼굴에서도 그 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 P65
우리는 사진을 찍었고, 해변을 조금 거닐었다. 나는 조금감상적인 마음이 되었는데, 더 이상 낮이 아니지만 아직 밤도 아닌 미확정의 시간대가 육지와 바다의 경계선을 그었다 지우는 파도의 철썩이는 소리가 그렇게 만든 것이 틀림없었다. 머지않아 어둠이 몰려오면 보랏빛이 되었다가 검게물들 테지만, 아직은 사방이 핑크빛으로 가득했고 그 사이사이 부드러운 오렌지빛이 깃들어 있었다. 그 놀라운 장관,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놓는 시간과 시간의 경계를 언니와개리의 친구 그리고 나는 모래밭 위에 앉아 넋을 놓은 채바라보았고, 개리는 밀려오는 파도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 P64
나는 가보지 못한 곳이라 2차원의 그림을 그리며읽지만 뉴욕을 가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금방 떠올리고 그곳의 냄새등이 기억날 것 같다.
언니와 단둘이 베이글이나 도넛을 사서 유니언스퀘어 근처 공원에 앉아 있거나, 브루클린브리지 밑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을 구경하러 가는 날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도로에 줄지어 있는 옐로캡이나 건물 앞에 펄럭이는 성조기, 타임스퀘어 전광판 따위를 보거나.. - P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