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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신분석, 신화는 없다
신용구 지음 / 뜨인돌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1. 들어가며
박정희? 나라를 살린 위인이냐, 나라를 말아먹은 천인이냐? 박정희에 대한 글들은 무수히 많다. 조갑제씨와 같은 글들 - 그래서 박정희를 극도로 추켜세워 위인으로 만드는, 반면에 최상천씨와 같은 글들 - 그래서 박정희를 극도로 깎아 내리고 도저히 한국인이라 보기 힘들다는. 이렇게 아웅다웅 깎고 올리고 다시 세우고 하는 과정 속에는 좌파냐, 우파냐라는 정치적 색깔. 다시말해 이념적인 공격적, 방어적 색채가 강하게 묻어 나온다.
그리고 이런 두 갈래의 치열한 다툼이 이제껏 우리가 가장 흔히 접하는 책들이였기도 하다.
이런 극과 극의 책을 접하는 독자들은 자신의 이념적 색깔에 맞는 책에는 점수를 주고 그렇지 않은 책은 내팽겨쳐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피곤하다. 옥신각신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문체로 - 그 진위의 여부를 완전 떠나서 말이다. - 진행되는 글들을 읽고 있으면 독자는 자연스레 흥분하게 되고 머리는 피곤하게 된다. 이념적 색깔이 묻어나오지 않는 뭔가 편안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그런 박정희에 대한 책은 없을까라는 피곤함의 한탄, 슬며시 묻어 나올법도 하다.
2. 그래서
이 책이 그 피곤한 한탄에 대한 해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우파, 좌파란 이념적 색채에서 벗어난 정신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정신과 전문의로서의 위치로 박정희를 보려고 한다. 재밌지 않을까? 박정희란 한 개인을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따른 분석이 아닌 철저히 개인심리를 바탕으로 분석을 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끌리게 된 것이고 이제껏 사실 위주, 또는 작위적 해석위주의 책이 아닌 개인을 분해하는 흥미로운 서술에 끌리게 된 것이다.
3. 그리고
저자는 단순한 정신분석학자,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다. 물론 직업적으로는 정신과 전문의라고는 하지만, 저자는 그런 직업과는 별개로 항상 역사란 분야에 관심을 두며, 그리고 연구에도 몰두해온 인물이다. 즉, 이 책은 절대 가볍지 않은, 개인의 단순한 흥밋거리는 아니란 소리겠다. 두서없이 한 개인을 이리 뜯고 저리 뜯은 것이 아닌,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해 놓았다는 말인 게다.
4. 하지만
정신, 심리학에 보통의 사람들은 거의 문외한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이 책은 구강기 욕구, 오이디푸스적 거세불안 등등 어디선가 들어 대충은 알만한 -물론 뜻은 모르고 듣기만 해 본것도 있겠지만 - 용어가 나와 어렵지 않다는 장점이 있긴하다. 하지만 어떤 인간의 행위, 사소한 행위조차도 '이 행위는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해 볼 때 구강기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불안한 심리상태가 무의식적으로 축적되어....' 등등 따위로 분석을 풀어놓으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지나쳐 보이고 괜히 짜증이 날 법도 하다. 무슨 행위든지 심리학에서 무조건 해석 가능하고 또 그것이 맞다는 것처럼 보이는 태도는 심리학에 문외한인 사람들의 동의를 과연 100%로 얻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란 말이겠다. - 이 책 역시 박정희의 사소한 문제까지도 정신분석을 행하기 때문에 가끔 나의 짜증을 돋게 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참신했다. 박정희의 어린시절에서부터 성장기, 쿠데타, 10·26까지 모든 부분들을 정치적, 사회적 색채를 일체 배제하고 오로지 심리학으로만 분석했다는 것은 읽는 이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비록 가끔은 짜증이 날지라도- 주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정치적, 사회적 색채가 묻어나는 공격적인 문체의 박정희 글보다는 가끔, 어떻게 보면 부드럽기까지한, 그러면서도 결코 객관이라는 길을 벗어나지 않는 책이 그리워지지 않을까?
6. 덧붙여
정신분석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박정희의 정신을 심리학으로 풀어놓은 것이지만, 결코 어렵지는 않다. 가끔 다소 생소한 용어가 나오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쓰임은 쉽게, 쉽게 되어 있어 누구나 읽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