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에디터스 컬렉션 10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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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사르트르.

실존주의 철학자,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계약 결혼. 이게 내가 아는 전부다.

이마저도 어느 TV 방송인지 어느 팟캐스트인지 에서 스치듯이 들은 정보이다. 책으로 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하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나 보다. 사실 저 위의 세 가지 정보도 아는 척하며 말했을 뿐 이해하고 있지는 않다.


실존주의.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실존주의란 과연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한참 돌아다녔지만 모르겠다.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나에게 현대 프랑스의 이미지는 예술과 낭만 도시 파리와 에펠탑 그리고 명품이다. 코코 샤넬의 나라와 실존주의 철학자의 나라라니 도무지 연결이 안 된다. 문학과 철학은 영국이나 독일 아니었나. 아 맞다. 알베르 까뮈.

시몬 드 보부아르. 유명한 페미니스트인 보부아르. 사르트르에 대해 모르는 것만큼이나 보부아르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막연히 '아 유명한 철학자구나', '엄청 똑똑한 사람이구나' 정도로 기억해놓았기 때문에 그의 책을 읽을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1905년에 출생한 철학자이자 작가의 책을 읽기 위해서는 그의 사상에 매료되거나 너도나도 그 책을 읽었다 하여 나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그 책을 찾아 읽어야 하는 경우이다.


장 폴 사르트르를 문학계에 알린 책 [구토]. 1938년에 출판된 이 책을 2021년에 읽게 되다니.

내가 이 책을 찾은 것이 아니다. 이 책이 나에게 손을 먼저 내민 것이다.




일반적인 소설책보다 살짝 작은데 위아래로 길쭉한 책이다. 나의 촬영 실력 때문에 사진 속 책이 너무 길쭉하게 나오긴 했는데 저 정도는 아니다... 책은 크지 않은 대신 두께가 꽤 된다.


표지에는 원제인 [LA NAUSÉE]와 작가 SARTRE의 활자가 멋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책을 읽고 나면 멋진 표지 디자인이 책의 내용과 아주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책을 펴자마자 작가의 소개가 나온다.

사르트르의 글을 처음 읽는 사람이라면 간략하게라도 그의 생애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 좋았다. 비록 짧은 소개이지만 그에게 흥미를 갖게 될 만한 부분이 많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그의 연보나 작품 해설 속의 이야기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한두 장을 넘기면 그의 연인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글이 적힌 페이지가 나온다. 휑하게 '비버에게 바침' 이라고 되어 있다.

장 폴 사르트르를 검색해보니 그의 이야기할 때 시몬 드 보부아르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보부아르도 유명한데다 둘의 행보가 가십거리로 삼기 딱 좋아서 그에 초점이 맞춰지기 십상이겠지만 그만큼 둘만의 특별한 관계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2년마다 결혼 계약을 갱신하며 50년이 넘도록 계약 결혼 관계(이자 오픈 메리지)로 지냈다는 두 사람. 부부라는 단어보다는 지적·정신적 동반자가 더 어울린다. 아마 [구토]를 집필하고도 보부아르에게 가장 처음으로 읽기를 권했을 테지....?





책의 차례를 보고는 조금 놀랐다.

차례라고 할 것이 없을 정도로 간단하다. 즉 이 책의 내용은 '앙투안 로캉탱'의 일기가 발행된 것으로 시작된다.

하여 별생각 없이 첫 페이지인 '편집자의 일러두기'를 읽었을 때는 '어...? 편집자 일동..?? 이 책이 시작되었나?' 했었다. 책 속의 책이다.



일기는 '날짜를 적지 않은 페이지' 부터 시작된다. 별 내용이 없어서 이 페이지는 왜 필요하지..? 라고 생각해 보니 아마도 첫 문장 때문인 것 같다. 그저 1인칭 시점으로 얘기했어도 될 텐데 왜 일기 형식을 썼지..? 하는 것에도 대답이 될 것 같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날그날 일어난 일들을 써놓는 것이다. 실상을 명확히 보기 위해서다. 뉘앙스와 작은 사실들을,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놓치지 말 것. 무엇보다도 그것들을 분류할 것.

>>> page 13 '날짜를 적지 않은 페이지' 중에서


[구토]의 주인공은 앙투안 로캉탱이다. 그가 부빌에서 적은 일기의 내용들이다.

그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다 롤르봉 후작에 대한 연구를 위해 부빌에 정착했다.

그러나 끝내 롤르봉 후작에 대한 책을 쓰지 못하고 부빌을 떠난다. 일기의 끝은 그가 부빌을 떠나는 것이다.


그의 일기에 쓴 대로 1932년 1월 25일 월요일에 그에게 무언가 일어났다. 그는 그것을 '구토'라고 명명했다.

그동안 그가 보았던 것, 만났던 사람들, 해왔던 일들.. 모든 것들에서 구토를 느꼈다. 자기 자신에게까지 말이다.

아마도 그것은 무언가를 깨달으며 오는 낯섦일까, 아니면 이제까지 의식하지 못한 것들을 갑자기 의식하게 되면서 알게 되는 변화에 대한 공포 같은 걸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쪼개서 본다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현재인가 미래인가 하는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분명 멀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들이 구토를 느끼게 하는 것일까?


그의 파란색 면 셔츠는 초콜릿색 벽을 배경으로 유쾌하게 부각된다. 그것 역시 구토를 느끼게 한다. 아니, 바로 그것이 구토다. 구토는 내 안에 있지 않다. 나는 그것을 저기에서, 벽에서, 멜빵에서, 내 주위의 도처에서 느낌다. 그것은 카페와 하나를 이루고, 나는 그 안에 있다.

>>> page 55 일기 중에서


앙투안 로캉탱의 일기일 뿐이고 어려운 말은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문장도 없다. 한데 어렵다.




일기라서 대화보다는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세세하게 적은 부분이 더 많다.

어느 일요일의 풍경, 부빌 미술관의 방문, 카페 랑데부 데 슈미노와 카페 여사장, 그가 롤르봉 후작에 대한 작업을 하는 도서관, 그 도서관에서 만난 독학자, 헤어진 연인 안니. 그에게 너무 익숙하고 낯선 모든 것. 잠깐 지나쳐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허투루 적는 법이 없다. 그는 철저하게 혼자였고 고독했지만 그가 원한 것이었고 오히려 주변 인물들보다도 과거 역사 속의 롤르봉 후작과 더 가깝다고 하겠다.


이상한 것은, 분명 어려운 책인데 재미있다. 아니 흥미롭다고 해야 하나. 존재. 그에 대한 고찰, 고뇌에 대해서 말하는 철학 소설인데 말이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부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이해 못 할 부분도 없다.

내가 비록 앙투안 로캉탱이 아닌 책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독학자에 가까운 하찮은 인물일지라도 말이다. 아, 물론 나는 독학자를 경멸하고 있다.


책의 뒤표지 글귀처럼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사상이 [구토]로부터 시작되었다면, 그가 이 철학 소설을 쓰면서 자신의 사상을 다듬었다면, 앙투안 로캉탱이 어느 날 돌멩이의 존재로부터 구토를 느끼게 되고 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결국은 사르트르 자신의 이야기라면 사르트르는 무엇으로부터 구토를 느끼게 된 것일까. 궁금해진다.




[구토]는 여러 번 읽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소설이 가지는 흡입력도 좋지만 문장도 매끄럽다.

괜히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 아니구나.


외국 소설, 철학 소설, 1930년대 소설임에도 문장이 매끄럽다고 느낀 건 번역도 잘 되어 있어서 그런 듯하다.

외국 소설을 이해하는 데 있어 번역이 아주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누가 나에게 이 책의 내용을 설명 해달라면 지금은 할 자신이 없다. 어쩌면 여러 번 읽고 난 뒤에는 가능하려나.

대신 흥미롭고 지루하지 않으니 읽어보라고 추천해 주겠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다가 나를 욕할 수도 있겠지만. 난 진심으로 추천했으니까 뭐.



** 보부아르가 [구토]를 읽고는 어떤 말을 처음 했을지 궁금하다.


** 앙투안 로캉탱에게 존재감이 없는 사람들은 눈을 반쯤 감고 있는 것으로 자주 묘사되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나도 흐리멍덩하게 반쯤 감은 눈을 하고 있었다. 아.. 나란 사람은...





※위의 글은 도서리뷰단에 선정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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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 뿌쉬낀의 서재 2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조혜경 옮김 / 뿌쉬낀하우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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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옙스끼의 중단편집!

벼르고 벼르던 [죄와 벌]을 읽은 지 얼마 안 되는 책린이∗∗인 나는 작년 말에 읽었던 그 책이 마음에 들어서 도스토옙스키의 다른 책들과 [죄와 벌] 완역본을 올해 읽어야지 했는데 때마침 그의 중단편집이 나오다니 이것은 운명. 게다가 내가 가진 [죄와 벌] 책을 펴낸 뿌쉬낀하우스의 책이니 절대로 놓칠 수가 없었다.



 

[죄와 벌]도 그랬지만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도 표지가 예뻐서 마음에 든다. 앞뒷면 모두 깔끔하면서도 보기 좋다.

뒤표지에 '대문호 도스또옙스끼의 장편 소설의 세계를 맛보기 위해 준비된 '전채' 요리' 라고 쓰여 있고 딱 맞는 표현이다.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들을 읽기 전에 읽어봐야 할 책이다. 긴 장편 소설을 읽기 위한 준비운동.

도스토옙스키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죄와 벌], [악령], [까르마조프의 형제들] 등을 알고 있을 것이고 그 대표작들은 꽤 긴 장편 소설들이다.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독서광이 아니라면 그의 단편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작가 위주가 아니라 유명한 작품 위주로 책을 선택한다면 그의 중단편은 평생 읽지 못하고 지나쳐버릴 수도 있다. 나 또한 그의 대표작들은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초기 작품이나 중단편 소설에 대해서는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2021년 행운 중 하나다.

운 좋게 이 책을 읽어보니 긴 장편 소설보다 쉽게 책을 펼칠 수 있고 희극적인 내용이 재미있다. 작은 반전들이 있어 지루할 틈이 없으며 심리 묘사나 상황 묘사가 장편 못지않게 촘촘하다. 작가의 초기 작품이기도 해서 '아.. 이런 글을 쓰다가 [죄와 벌]을 쓰게 됐구나..' 하고 느끼는 재미도 있었다. 주목받지 못했을 뿐이지 도스토옙스키가 쓴 것임에는 틀림없다.

책은 작고 얇은 편이다.

출퇴근 시 지옥철 안에서라도 들고 읽을 수 있는 무게고 요즘은 코로나 시국이라 힘들지만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읽으면 금세 읽어낼 분량이다. 가벼운 분량은 단편 소설의 매력이기도 한데 이 책도 그 매력을 뽐내기 위해 총 4편으로만 가볍게 구성했다.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

제목을 보자.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 아니었다고 해도 이 책을 읽고 싶어질 것이다.

제목을 읽자마자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이 생각나면서 뭔가 자극적이고 막장 드라마와 같은 매력이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은 불행한 한 남자에게 일어난 우연들이 한 편의 시트콤처럼 펼쳐지며 색다른 긴장감을 유발하고 있다. 여러 이유로 '남의 아내'가 등장하고 여러 우연으로 '침대 밑 남편'이 등장한다. 그래서 소설을 읽고 나서야 왜 제목을 그렇게 붙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용에 아주 잘 맞는 제목이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1,2로 구성되어 이 책의 거의 반 정도 분량을 차지할 정도로 꽤 길다. 이어지는 내용이지만 1이 '남의 아내', 2가 '침대 밑 남편'에 대한 이야기.

"아니, 전 결혼하지 않았어요 ······. 그런데 저 같으면 불행한 상황에 놓인 존경할 만한 사람에게, 최소한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매번 '젠장'이란 말은 하지 않을 거요. 그런데 당신은 언제나 '젠장, 젠장!' 하고 있네요."

>>> page 26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 중에서

작품 해설에 따르면 작가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늘 의심해 침대 밑을 조사하며 어머니를 괴롭혔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녹아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네 번째 단편을 제외하고는 세 편의 소설 모두 아내들의 불륜 관계가 나온다.


page 212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 작품 해설 중에서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

제목 그대로 이 소설은 9통의 편지로만 이루어졌다.

편지로만 이루어진 소설이라면 연인 관계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 소설에서는 두 명의 남자가 주고받은 편지이다. 첫 편지를 읽을 때만 해도 별다른 사건이 발생할 것 같지 않았는데 편지가 쌓일수록 긴장감도 고조되고 소소한 반전도 있다. 아무래도 편지라는 독특한 형식의 단편이라 읽다 보면 궁금한 내용들이 많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드러난 내용 외의 부분은 내가 상상할 수 있어 그 점이 재미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편지로 인해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할 것을 예고하는 열린 결말이라고 생각된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page 214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 작품 해설 중에서



[꼬마 영웅]

이 소설은 묘사가 뛰어나다. '내가 열한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로 시작되는 문장에서 화자의 과거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싶었는데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스크바 근교의 대저택과 그 주변 풍경에 대한 묘사, 그 대저택에 모인 사람들에 대한 묘사, 사건의 중심인물들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자세하다. 특히 화자인 꼬마 자신에 대한 감정 묘사가 섬세하다. 사람들 사이의 직접적인 대화도 적고 사건 그 자체로만 보면 단순하고 밋밋할 수 있는데 묘사 부분으로 내용을 꽉꽉 채운다. 길지 않은 내용이니 한 번에 쭉 읽어가겠지만 혹시라도 읽다가 책을 덮어야 할 상황이 온다면 흐름이 끊길 수도 있다. 꼭 이 소설은 쭈욱 읽어내려가야 함.

그녀의 얼굴에는 번개처럼 반짝이는 뭔가가 있었고, 불꽃처럼 생기가 있으며 민첩하고 가벼웠다. 눈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였고, 커다란 눈에는 마치 불꽃이 이는 듯했다. 난 그녀의 반짝이는 파란 눈을 그 어떤 검은 눈동자와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 검은 눈동자가 홍주석보다 더 검더라도 말이다.

>>>page 127 꼬마 영웅 중에서



page 215 [꼬마 영웅] 작품 해설 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와 결혼식]

책에 실린 소설 중 가장 짧다. 하지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내용은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의 탐욕이나 현실 비판은 책을 덮고 난 후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사건의 시작부터 결말까지 완벽하게 '탐욕스럽고 비열한' 인간에 대해서 화가 나지만 상황만 조금 다를 뿐 그런 일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심지어 미래에도 일어날 일이라는 생각에 무력감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면 심각한 내용인 것 같지만 이 소설을 읽을 때는 화자가 제3자의 입장에서 보게 된 것을 이야기하고 있어 단순하고 가볍다. 나도 화자의 눈으로 함께 보다 보면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절로 웃음이 나기도 한다.

마음에 쏙 드는 단편 소설이다.


page 217 [크리스마스 파티와 결혼식] 작품 해설 중에서


네 편의 소설이 끝이 났다.

책을 나무늘보처럼 느리게 읽는 나도 금세 읽었다. 읽는 내내 즐거웠고 네 편 모두 각기 다른 이유로 마음에 들었다.

역시 대문호의 작품은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버릴 것이 하나도 없네.

러시아 문화 교육 센터인 뿌쉬낀하우스 도서에서 발간된 책이라 번역이 매끄럽고 각주도 적절하게 달려있다. 러시아 문학에 관심이 많다면 뿌쉬낀하우스 도서에서 발간된 책으로 읽으면 좋겠다. 나 또한 뿌쉬낀하우스에서 발간되는 책들을 유심히 살펴볼 생각이다.

아, [죄와 벌] 완역본부터 어서 읽어야겠구나.

** 책린이 : 요즘,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하거나 그 일에 아직 미숙한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로 '책을 읽다 + 어린이'의 의미. 신조어를 과감하게 써봄

** 도스토옙스키에 대해 검색하다가 '나무위키' 를 보고 알게 된 사실. 한데 소설이라는 것이 늘인다고 늘일 수 있는 것이었나!! 늘이고 급하게 써도 대문호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아니, 대문호라서 가능한 일이었나!

도스토옙스키는 원고료로 겨우 먹고살았으며, 이 때문에 그의 후기 소설들은 굉장히 길다. 왜냐하면 그 시절 러시아에서는 글자 수대로 원고료를 책정했고, 따라서 소설의 길이가 늘어나면 원고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 그나마 돈이 조금 남으면 도박장에서 날리고 빚만 더 벌어왔다. 이렇게 돈에 쪼들리다 보니 쓰고 있던 <죄와 벌>을 급하게 완성했으며 <노름꾼>은 26일 만에, 그것도 <죄와 벌>을 쓰는 중에 구두로 완성했다.

>>> 출처 : 나무위키

** 도스토예프스키, 도스또옙스끼, 도스토옙스키 .. 책마다 다른데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무엇이 맞는 거지...?

※ 위의 글은 도서리뷰단에 선정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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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때 : 니체와 고흐 - 전통과 도덕적 가치를 허문 망치 든 철학자의 말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공공인문학포럼 엮음,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스타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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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2020년부터 2021년 지금까지 정말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나 보다.

빈센트 반 고흐, 프리드리히 니체, 헤르만 헤세, 윤동주, 고전, 심리학, 인문학, 철학, 시, 마음, 위로, 괜찮아 등의 제목이 붙여진 책들을 작년부터 부쩍 많이 보게 되는 것 같다. 코로나 블루에 재택근무, 사회적 거리 두기로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지고 책 읽을 여유와 더불어 안타깝게도 마음은 팍팍해진 사람들을 위한 책들이 나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나 또한 작년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이다. 나 또한 어려운 책보다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책을 찾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나에게 있어서 위로를 말할 때 생각나는 것은 시나 심리학 또는 자기계발서와 같은 종류였는데 의외로 그림과 철학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와서 의아했었다. 요즘 미술과 관련된 몇 권의 책을 읽기 전까지 그림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고 철학은 너무 고차원적인 이야기여서 삶과 동떨어져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거기에서 위로를 받는다니. 충분히 이해해야만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했었다.


니체와 고흐. 왜 프리드리히 니체이고 왜 빈센트 반 고흐일까. 그들이 과연 어떤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일까.

질문으로 독서가 시작되었다.

몸도 마음도 춥고 쓸쓸한 겨울의 끝자락에서. 조금이라도 힘을 내보기 위해.




책 표지에 쓰인 '누구나 한 번쯤 니체처럼 생각하고 고흐처럼 꿈꾼다' 라는 말은 멋있지만 어떤 의미인지 바로 알아차리기에는 어려웠는데 책을 읽고 나니 알게 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 , 나 또한 살면서 한 번쯤 니체처럼 생각하고 고흐처럼 꿈꾸겠지. 나에게는 어쩌면 지금이 그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펴고 머리말을 살폈다. 나의 질문의 답은 바로 여기 있을 터였다.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은, 현재의 질서에 순응하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갈 것과 그 어떤 고통 속에서도 열정을 잊지 말라. 라고 말하려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기존의 가치를 부수는 철학자 니체와 자신의 귀를 자를 수밖에 없던 고통 속에서도 명작들을 남긴 반 고흐를 함께 담은 책에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때' 라고 썼을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니체의 글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고 반 고흐의 140점이 넘는 그림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니체가 유명하기는 해도 우리나라에서 그의 글을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니체의 여러 책에서 발췌되어 이 책에 실린 짤막한 글들을 읽다 보면 때로는 너무 어려워서 해당 책을 다 읽으며 이해해 보고 싶기도 하고 때로는 좋은 구절을 발견하게 되어 그 나머지 글도 읽고 싶어진다. 결국 책을 덮고 나서는 니체의 책을 한 권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니체의 글은 생소할 수 있어도 반 고흐의 그림은 '화병의 해바라기',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빈센트 침실' 등 대표적 작품들이 너무 유명해서 어느 카페에 걸려진 모조 그림이나 엽서 또는 반 고흐의 굿즈 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반 고흐의 작품을 어떤 방식으로든 한 번은 봤을 것이다. 하지만 '에턴의 길', '담배를 피우는 해골', '말 석고상' 과 같은 그림들은 생소하다. 제목도 생소하고 책에 실린 삽화로 보아도 반 고흐의 그림인가 싶다. 나처럼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딘가에서 실제로 그 그림들을 봤어도 반 고흐의 작품인지는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 반 고흐의 많은 작품들은 책으로나마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것은 행운이다.




이 책은 니체의 잠언들을 삶, 아름다움, 지혜, 인간, 존재, 세상, 사색, 신앙, 예술가 등 10개의 주제로 나누어 읽기 쉽게 정리하여 고흐의 그림과 함께 보기 좋게 배치했다.

>>> 머리말 중에서


정말 보기 좋게 배치되어 있는 게, 내용은 대부분은 니체의 글이 실리고 그 옆으로 고흐의 그림이 있다. 고흐의 그림이 니체의 글과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신경 써서 글에 맞춰 그림을 배치한 것이 느껴진다.


그림에 누군가의 설명이 붙지 않고 간략한 설명만이 쓰인 것도 좋다. 보기에도 간결하고 좀 더 그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짧은 글이고 책에 들어있는 그림이라 책장이 슥슥 넘어갈 것 같지만 니체의 글도 반 고흐의 그림도 종종 여러 번 읽게 되고 오래도록 보게 된다. 어려운 내용은 두 번, 세 번 읽었다. 오래도록 그림을 보았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내 식으로 이해한 뒤에 책장을 넘겼다. 그렇게 니체의 글에서 많은 생각을 했고 반 고흐의 그림에서 많은 이야기를 찾았다.


우리의 이성이 멈춰 버리면 우리들은 서로에게 관대해질 것이다. 상대방에게 아무 말이나 해도 상관없고, 상대방이 아무 말이나 해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 _____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page 26 이성이 없다면 서로에게 관대할 것이다 1. 아름다움에 대하여 중에서


인간에게 용기는 가장 훌륭한 살인자다. ... 왜냐하면 용기는 "그게 삶이던가, 그럼 좋다. 다시 한 번!" 이라고 외치기 때문이다. _____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page 42 용기는 죽음까지도 살해한다 2. 삶에 대하여 중에서


...신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깊은 속내와 바탕을, 은폐된 치욕과 추함을 남김없이 보고 말았으니. 호기심 낳고 주제넘은 자, 동정하는 마음이 너무 깊었던 자는 죽어 마땅했다. _____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page 80 웃다가 죽은 낡은 신들 3. 신은 죽었다 중에서


도덕적 인간은 물질적 인간보다 더욱 위험하다. 왜냐하면 물질은 도덕을 잠재울 수 없으나, 도덕은 물질의 가치를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_____이 사람을 보라

>>> page 118 물질적 인간보다 도덕적 인간이 더 위험하다 4. 지혜에 대하여 중에서


이상을 좇는 인간은 구제할 방법이 없다. 그는 천국에서 추방당하면 지옥에서 새로운 이상을 찾아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_____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page 150 이상에만 매몰된 사람은 파멸할 수밖에 없다 5. 인간에 대하여 중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결코 고통을 아픔이라 부르지 않는다. _____즐거운 학문

>>> page 172 살아남은 자들은 고통을 아픔이라 부르지 않는다 6. 존재에 대하여 중에서


... 이와 반대로 한 국가가 소멸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영양 섭취, 과잉보호, 이기적인 개인주의, 외래문화에 대한 무분별한 열광이 진행되어야 한다. _____선악의 저편

>>> page 192 국가의 발전과 소멸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7. 세상에 대하여 중에서


나의 경우 독서란 잠시 숨을 고르는 것과 같다. _____이 사람을 보라

>>> page 234 자신을 빨아들이는 행위야말로 진정한 독서이다 8. 사색에 대하여 중에서


돌이켜 생각해 봐도 나는 바그너의 음악 없이는 내 청년 시절을 견디어 내지 못했을 것 같다.

>>> page 282 바그너의 혁명 9. 예술가에 대하여 중에서


...그렇다면 철학자는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그는 자신이 시대를 극복한 '초월자'로 남기를 바란다. _____바그너의 경우

>>> page 298 철학자는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10. 니체를 만난다 중에서




예술과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예술과 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가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니체의 글을 맛보기로 읽어보고 싶은 사람이나 고흐의 다양한 작품이 궁금한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따뜻한 위로.

늘 그렇듯이 택배가 도착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고

그 택배가 기다리던 '니체와 고흐'에 관한 책이라면 책을 펴기도 전에 이미 위로받을 준비가 된다.

읽고 싶었던 책을 기다리고 택배 도착에 맞춰 포장을 뜯는 것. 시간을 내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그 책을 읽는 것. 어려운 내용이라도 많은 생각을 하며 소화하여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것. 그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 이런 시간들이 쌓여가는 것.

그것이 이 책 '니체와 고흐'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


'누구나 한 번쯤 니체처럼 생각하고 고흐처럼 꿈꾼다'



** 어느 팟캐스트에서 주워들은 지식으로는, 빈센트 반 고흐님은 이름이 빈센트, 성이 반 고흐라서 우리가 흔히 고흐라고 부르지만 '반 고흐'로 부르는 것이 맞는다고 한다. 띠용.


** 니체는 자신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자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라 말했고 출판 후 반응은 '한마디도 이해 못 하겠다'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띠용.





※ 위의 글은 도서리뷰단에 선정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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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지 3 - 풀어쓰는 중국 역사이야기
박세호 지음, 이수웅 감수 / 작가와비평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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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그 세 번째 이야기이자 마지막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는 춘추전국시대의 시작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춘추시대의 강자들을 소개했고

두 번째 이야기는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세 번째 이야기는 전국시대의 시작부터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전국시대란, 네이버 지식백과에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기원전 403년~221년 사이의 시기. 기원전 403년 진(晋)의 대부 조(赵)ㆍ위(魏)ㆍ한(韩) 3가문이 주(周) 왕실로부터 정식 제후로 공인받으면서 시작되었으며, 이 시기에는 제후들이 주(周)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지향해 제각기 왕을 칭하였으며, 진(秦)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일곱 국가인 진(秦)ㆍ조(赵)ㆍ위(魏)ㆍ한(韩)ㆍ제(齐)ㆍ연(燕)ㆍ초(楚)를 전국칠웅(战国七雄)이라 칭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전국시대 [战国时代, Warring States Period, Zhànguó Shídài] (중국시사문화사전, 2008. 2. 20., 이현국)

 

대혼란의 춘추전국시대가 점차 막을 내리며 천하통일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지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혼란 속에서 살아간다.

아직은 춘추전국시대다. 

 

 

참고) 전국시대 지도 보기 - 출처 : 나무위키

https://namu.wiki/jump/Z0SmP2STwYx6WxPstjD7EXuk1SsjZd33GX437B5oyqOE7lvQmWYAUpy7FusNeOoOstfYzPwucsz2Zj8OefFydg%3D%3D

 


이 책은 춘추전국시대 550년을 담은 총 3권 중 마지막 권이다. 

 

전국시대도 점차 정리되어 가며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하는 과정을 설명해서인지 1,2권 보다 나라 간의 전쟁이 덜 복잡하다. 게다가 이미 1,2권을 읽은 사람이면 어느 정도 각 나라의 상황 설명이 이해가 빨라지기 때문에 더욱 읽기 좋다.

 

춘추전국시대는 각 나라와 그에 속한 영웅들이 힘겨루기를 하며 천하통일이라는 큰 흐름을 향해 달려가는 시대였다.

한 나라가 강해지면 그 옆 나라가 약해지고 왕이나 공손이 다른 나라로 망명을 하기도 하고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는 큰 공을 세운 신하라 하여도 갑자기 다른 나라로 도망치기도 한다. 각국의 인재들이 강대국으로 몰려들기도 하고 영웅의 손자가 또 다른 영웅이 되거나 현인의 제자가 큰 무대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여러 나라로 나뉘어 그 이름만 다를 뿐이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결국 춘추전국시대의 모든 사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강대국이 되거나 역사 속으로 사라지거나 영웅이 되거나 간신이 되어 죽이느냐 죽임을 당하느냐, 탐욕을 부리다 죽거나 신념을 지키다 죽거나 하는 일들의 연속이라 1,2,3권을 한 권의 책이라 여기며 연달아 읽는 것을 추천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겠지만 춘추전국시대를 한눈에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도 한참 시간이 지난 어느 날에는 시간을 내서 1권부터 3권까지 쭉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그때는 현인들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춘추시대에는 약소국들도 부용국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전국시대로 넘어오면서는 대국으로 편입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리게 된다. 살아남은 나라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서 관료의 시대가 탄생하고 그 배후에는 '제자백가'의 사상이 존재한다. 

 

그러나 새로운 중앙집권적인 국가의 탄생은 역사적인 변혁의 과정에 있어서 새로운 출발점이지 그때까지 더듬어 온 과정의 종점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독립국들은 그러한 프로 관료 외에 새로운 시대를 개척할 포부를 갖은 현인, 인재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이 소위 제자백가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 page 9 제43장 분기충천(憤氣沖天) 중에서

 

 

자, 우리 모두가 알듯이 진시황이 진나라를 이끌고 천하 통일을 이루게 되기 전의 몇몇 이야기들을 살펴보자.

 

'개명군주(開明君主) 위문후' 와 '이리', '서문표', '오기'

 

- 위문후는 예현하사(현인에게 예를 다하고 선비에게 겸손을 표한다) 라는 좌우명을 내걸고 그 본보기로 위나라 수도 안읍에 살고 있던 현인 '단간목'의 집 앞을 지나갈 때에는 반드시 수레 위에서 경례를 했다고 한다. 고대나 현대나 정치는 내면의 사상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SHOW' 가 동반되어야 하는가 보다. 위문후의 경례가 소문이 나서 당대의 일류 인물들이 안읍으로 몰려들었다고 하니 말이다.

 

성문법전을 정한 시조로 이름을 남긴 '이리' : 『법령』을 공포하여 법치주의에 기초한 부국강병책을 실행하여 위나라를 순식간에 강대국으로 키웠다는데 그에 관한 기록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저자는 유가의 덕치에 대립되는 법치였기 때문에 은폐된 것이 아닌가 한다. 나 또한 동의한다.

 

실무 관료로 역사상 가장 우수한 태수(지방장관)으로서 말대까지 후세에 전해진 '서문표' : 분노가 폭발하면 오른쪽 허리에 단 가죽끈을 꼬고 마음이 약해지면 왼쪽 허리에 단 청동 철사를 꽉 쥐면서 부임지 '업(鄴)'을 다스린 태수. 그는 매년 강에 바쳐지는 '하백의 신부' 풍습을 없앤 인물이다. '하백의 신부' 는 예전에 드라마 제목으로 보고는 어느 역사 속의 이야기겠거니 추측은 했었지만 춘추전국시대의 이야기인지는 몰랐었다. 어찌나 업을 잘 다스렸던지 업의 사람들이 감사와 존경과 숭배를 담아 그를 '서문군(西門君)이라 불렀다고 한다.

 

현재 서울시 시장 선거를 앞두고 있어 그런지 '서문표' 이야기야말로 마치 동화 속 인물 같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인물이 바로 '서문표'이다. 너무 늦기 전에 어서 빨리 우리 앞에 나타나주었으면 한다.

 

『오자병법』 의 병법가 '오기' : 나라를 위해서 아내를 죽였다는 모략선전을 등에 업고도 위문후에게 발탁되어 서하의 태수로 시작하여 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주며 위나라를 키웠다. 그러나 위문후의 죽음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며 서하 땅을 떠나 초나라로 망명하여 6년 동안 초나라를 키워갔으나 그를 지지해 주던 초도왕이 사망하며 결국 그도 죽음을 맞이했다. 뛰어난 병법가로 이름을 떨쳤지만 정치판에서 살아남는 것은 다른 문제인가 보다. 대신 마지막까지 그 자신의 병법을 발휘하여 죽음으로 대숙청을 하였으나 과연 대단한 병법가다.

 

'직하의 학사'를 모은 제위왕과 '맹자'

 

- 제위왕은 위문후의 방식을 답습하여 직하에 뛰어난 인재들을 모았다. 손자병법의 손자의 자손인 '손빈', 맹자라 부리는 '맹가', 정치사상가 '신도' 등 묵자의 제자들, 노자의 사상을 받드는 사상가들, 유가의 제자들이 모두 모였다. 제위왕은 직하에 뛰어난 사상가들을 모음으로써 제자백가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서로의 평판을 높이며 제위왕에게도 제자백가에게도 서로 윈윈하는 전략이 들어맞았다.

 

그중 우리에게도 아주 큰 영향을 끼친 '맹자'. 맹모삼천지교로 유명한 맹자이지만 실제 책을 읽어본 적은 없다.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 다였다가 2권에서 공자의 취직 운동을 읽고 좀 놀랐었는데 3권에서 마주한 토론광 '맹자'의 일화에도 놀랐다. 말꼬리를 잡는 듯한 화법이나 공격적인 유세에 비해 그 당시 현실과 맞지 않는 정치사상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든지 하는 것들이 역시나 낯설게 느껴진다. 조선왕조 500년 내내 깊게 뿌리를 내려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의 기본 사상이 되는 유가의 가르침이 기대보다는 별 볼일이 없어 보이는 까닭이다. 내가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겠지만 옛것을 따르자며 미래 지향과 가장 동떨어진 것만 같은데 오히려 공자, 맹자의 춘추전국시대가 지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토록 실생활에 침투하다니 놀라운 사상이긴 하다.

  

 


 

진나라의 '상앙'

- 위나라 공실의 혈통을 이어받은 서공자. 공손 앙. 21세의 나이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진효공과 상앙은 법에 의해 나라를 다스렸다. 상앙이 만든 '변법의 령'인 20개 조항의 '간초령'을 발포했고 법을 어긴 자는 왕이나 태자라고 하여도 예외를 두지 않는 엄한 집행으로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키워냈다.

 

...그래서 태자 사(駟)가 천도에 반대하여 동궁을 함양으로 옮기는 것을 거부했다. 즉 태자 사는 천도령에 위반한 것이었다.

법을 어긴 태자 사는 '근신 10일간'의 벌을 받았다. 연좌법에 의해 태자의 보좌관인 공자 건(虔)은 보좌를 잘 하지 못한 죄를 물어 '좌로(坐窂) 10일간'에 처해졌다. 스승인 공손 가는 교육의 죄를 물어 경형 (이마에 먹물로 뜸을 뜨는 형)에 처해졌다.

>>> page 83 제47장 설상가상(雪上加霜) 중에서

 

그러나 진효공이 45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새 군주와 신하들이 그에게 모반이라는 누명을 씌워 조정에 고소했다. 상앙은 빠르게 진나라를 떠났지만 결국 그가 가진 신념에 따라 진나라로 돌아와 차열형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차열형이란 수레에 사지를 묶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내달려 사지를 찢는 형벌이라고 한다. 끔찍하기가 이를 데 없다.

게다가 연좌법(連坐法)과 일수일경(一首一頃)을 시행하였다고 아직까지 악당으로 지탄을 받아왔다니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 책을 보면 상앙의 법치로 인해 결국은 진나라가 진시황을 앞세워 천하통일을 이루게 된 것인데도 말이다.

 

저자는 상앙을 "그 시대가 원하던 초대형급 지략계로를 갖춘 인물, 역사상 그리 많지 않은 영걸(英傑)" 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상앙은 천하통일을 꿈꾸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만든 엄격한 법령으로 인해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춘추전국시대 인물들의 위대함과 그 시대의 비정함이 바로 이것이다.  

 

 

 

조나라의 '조괄'


- 조나라의 천재적인 병법가이다. 그러나 선친 조사와 함께 지도를 펴놓고 그 위에서 경합을 벌여 백전백승의 기록을 남겼을 뿐 실제 진나라와의 전쟁에서 45만 대군의 대장으로 임명받아 참패했다. 싱겁게 끝나버린 승부의 결말 처참했다. 진나라 병법에 당한 조괄은 아무 활약도 없이 어이없게 전사했고 조나라 병사 45만이 장평에서 갱살(구덩이에 파묻어 죽이는 것)을 당했다고 한다.

 

분명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하는 데 있어서는 조괄은 천재적인 병법가였다.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함' 이란 말은 나중에 생긴 말인데 흔히 말하는 '탁상공론'이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 page 245 제57장 교주고슬(膠柱鼓瑟) 중에서

 

천하통일. '여불위'와 '진시황제'


- 엄청난 부를 가진 대부호 '여불위' 가 진나라 왕실의 왕위 계승에 개입하여 '진왕 정' 을 탄생시켰다. 진나라 소양왕의 차남인 안국군의 스무 명이 넘는 자녀 중 한 명인 자초. 그의 아들 '정(政)' 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진시황제이다. 진시황제는 중국 최초의 중앙집권적 통일국가를 이루었고 만리장성을 쌓았으며 불로장생을 꿈꾸며 진시황릉과 병마용을 제작했다. 분명 대단한 왕이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니 그가 이룬 업적보다도 그가 왕위에 오르게 된 과정, 그의 출생의 비밀에 더욱 눈길이 간다. 춘추전국시대는 왕이라 하여도 어느 때고 죽임 당했다. 아니 권력 투쟁 속에서는 지금 왕이라고 하여도 그 권력을 굳건히 지키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다. 하물며 '여불위'라는 위험 요소를 품고도 13세에 왕위에 올라 결국은 천하통일을 이루었다. 물론 진나라를 강하게 키운 수많은 영웅들이 뒷받침 한 결과이며 '진왕 정'이 아니었어도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이루었을 가능성은 크다. 하지만 역사에는 'if' 라는 것은 없으니.

 

"터무니없는 비어란 무어인고?"

진왕 정은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물었다.

"전하의 출생에 관한 일입니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노라."

>>> page 304 제61장 자가당착(自家撞着) 중에서

 

...촉나라로 쫓겨난 여불위는 아무래도 추격을 피할 수가 없을 거라고 체념한 끝에 촉나라 땅에서 짐주(짐새의 털을 넣은 독주)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짐주가 담긴 잔을 들고 여불위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 말은 거짓말이다'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 page 311 제61장 자가당착(自家撞着) 중에서

 

"꼭 천하는 통일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소망이 아니라 현실적인 요구입니다. 첫째, 사람들은 5백년을 이어온 전란에 못 견뎌 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귀추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춘추의 제후들은 정치 장난을 즐겼으며 요즈음 왕들은 전쟁놀이에 여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

>>> page 321 제62장 수유만금불능요일수(雖有萬金不能用一銖) 중에서

 

'진시황제'와 '한비자'


- 무엇이든 뚫는 창과 무엇이든 막는 방패의 싸움. 모순(矛盾)이다. 위료의 추천으로 한비자의 존재를 알게 된 진시황제를 그를 얻기 위해 한나라로 출병한다. 진시황제 13년에 한나라의 강화 사절로 나타나 진시황제의 스승이 된 한비자. 그러나 진시황제는 가르침을 다 받은 후 그를 신하로서 부리고자 하였으나 한비자는 거절하여 죽임을 당한다. 한비자뿐만 아니라 그간 대다수의 영웅들이, 위대한 사상가들이 허무한 죽임을 당하곤 했지만 출병을 해서까지 자신을 스승으로 모신 진시황제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을 때 왜 도망치지도 숨지도 않았던 것일까. 죽음을 받아들이면서까지 그가 이루고자 했던 세상이 과연 진시황제에 의한 천하 통일로 이뤄졌을까 궁금해진다.

 

 

 

분명히 시황제는 역사적인 위업을 달성했으나, 그 위업은 그의 천재적인 능력으로 성취되었던 것은 아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 위업은 그가 춘추전국의 풍성한 결실을 추수함으로써 이룩되었던 것이다.

한비자의 학문적인 성취 또한 춘추전국시대에 다투어 나타났던 제자백가 사상과 학설이 바탕을 이루었던 것이다.

>>> page 368 제65장 천하통일(天下統一) 중에서

 

춘추전국시대가 끝났다. 천하통일은 이루어졌다.

기나긴 혼란의 시대이자 정치·사상이 꽃피운 시대였다. 수많은 전쟁으로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죽어나가고 권력 투쟁으로 왕이 아사했던 시대. 영웅호걸들이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고 제자백가가 정치판에서 논쟁을 일삼던 시대. 여러모로 화려한 시대였다.

 

오늘날의 중국은 특히나 코로나로 인해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배척당하기도 하지만 춘추전국시대를 보면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과연 땅이 넓고 사람이 많으니 인재도 많은 것인가 싶고 기원전에 그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때의 대단한 중국은 어딜 가고 넓은 땅덩이의 초라한 중국이 남았을까. 그때 그 제자백가의 치열한 논쟁은 어디로 가고 조선왕조 500년이 유교에 메여 미래로 나아가질 못했을까. 역사를 통해 배운 것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춘추전국지 시리즈 1권을 읽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정나라니 송나라니 문공이니 환공이니 복잡하고 어렵다 생각했었는데 막상 3권에 이르러 천하통일까지 보고 나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치열한 현대도 춘추전국시대와 다를 바가 없다. 이 나라 저 나라를 자유로이 오가며 나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유세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용은 쉽지 않고 등용되었다 한들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전 세계에서 자잘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인맥이 여전히 등용의 창구가 된다. 강대국의 폭군의 등장은 현대도 있다. 요즘은 코로나까지 겹쳐 더더욱 혼란의 시대이다.

 

춘추전국시대를 보면 대혼란의 시대에도 불현듯 강대국이 되기도 하고 강대국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해서 오래오래 살아남기도 한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기회를 엿보며 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뛰어난 인재들이 언제고 그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일개 농민으로 나라 창고를 열심히 채우며 열심히 투표를 할 테니 말이다.

 

어느 시대나 국민들은 피 흘리며 이루는 천하통일이 아닌 태평성대를 바라고 있는데 정치를 위한 정치 말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시대는 언제나 오려나. 전 세계적으로 보면 언제나 춘추전국시대인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마지막 3권에서는 부록으로 고사성어가 수록되어 있다.

꽤 많은 양이 수록되어 있어 생소한 고사성어를 많이 알게 되었다. 잘 외워두면 아주 유용할 것 같다.

 

   

** 지도 첨부가 있으면 좋겠다. ​

** 1,2권에 비해서 오탈자가 많이 줄었다. 다행이다.

** 한자를 잘 아는 상태로 읽었다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말이다. 한자 까막눈이라 안타까울 따름이고 문득 한자검정능력시험을 공부해 볼까 하는 무리한 생각을 했었다. 아무렴 무리지.

 

 

 


 

※ 위의 글은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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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술관에 간다 - 전문가의 맞춤 해설로 내 방에서 즐기는 세계 10대 미술관
김영애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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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여행사를 다니던 아는 동생의 추천으로 스페인 단체 관광을 갔었다. 단체 관광도 처음이었고 유럽 여행도 처음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출발 일자가 너무 촉박해서 어디를 가는 것인지도 잘 모른 채 급하게 짐을 꾸려서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떠났던 여행 중 2017년 2월 7일.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갔던 날이다. 그날의 사진을 찾아보니 날씨가 아주 좋다. 파란 하늘에 그림 같은 하얀 구름이 떠 있었고 바람은 쌀쌀했지만 햇빛은 좋았다. 미술관 입구에는 고야의 동상도 있었다. 그 동상 앞에서 찍은 셀카를 보니 그때의 설렘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런데 정작 그림들이 생각나질 않는다.

미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지만 단 한 점이라도 "우와.."라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보았을 텐데 말이다. 나는 그렇게 메마른 사람이 아니고 언제나 예술을 사랑하고 있다. 그러니 아마도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너무나도 벅찬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의심할 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어느 작가의 어느 그림이 어떻게 걸려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빠른 걸음으로 그림들을 지나쳐갔던 기억과 북적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여서 이어폰으로 가이드분의 설명이 흘러나왔던 기억.

우리의 관광버스가 스페인에 도착한 후 만났던 가이드분은 [프라도 미술관]을 수도 없이 다녔다고 하셨다. 미술 전공은 아니지만 가이드의 사명감을 가지고 이곳의 주요 미술품을 공부하였고 촉박한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꼭 봐야 할 미술품만을 몇 가지 설명하겠노라. 그렇게 우리의 안타까운 "프라도 미술관 돌파"가 시작됐다. 그 유명하다는 그림 앞으로 비집고 들어가야 해서 뛰듯이 걸어가는 동안 수많은 작품들을 지나쳤다. 우리 관광버스 팀 중 일부는 '다리만 아픈 의미 없는 구경'이라고 혹평했었다. 세계 3대 미술관이라는 설명도 들었겠지만 그 누구도 '미술관 관람'을 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처음 겪어보는 단체 관광의 빡빡한 일정, 생전 처음 가보는 거대한 미술관의 분위기,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 배경지식 없이 보는 웅장한 그림들을 빠르게 지나쳐 가야 하는 단체 관광의 시간적 압박 등에 혼이 쏙 빠졌었나 보다.

무려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라는 그곳을 갔었는데. 언젠가 꼭 다시 오겠다는 다짐만이 남게 되었다.

 

그때 이 책이 있었더라면. 그때 이 책을 읽고 갈 수 있었더라면.

이 책에서 보았던 그림을 직접 미술관에서 보았더라면 그 감동이 어땠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프라도 미술관]을 다녀온 사실이 너무나도 뿌듯하지 않았을까.

 

누군가 이 책에 나온 10대 미술관에 간다면 이 책을 꼭 읽고 갔으면 좋겠다.

아니 이 책을 읽은 후 그 미술관들을 꼭 가보아야 한다.

아니 아니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연스레 그곳에 가보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니 우선 [나는 미술관에 간다]를 펴고 세계 10대 미술관이 어떠한 곳인지 함께 가보자.

 


 

 

미술에 관한 책답게 책 표지 앞뒷면과 책등의 디자인이 각기 다르고 감각적이다.

내 방에서 즐기는 미술관이니 삽화가 많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책장 옆면이 빼곡하게 알록달록한 것을 보니 이 책 한가득 들어 있을 예술품 삽화에 들뜨게 된다. 그 삽화들은 사진관에서 뽑아 준 유광 인화지 같은 종이 재질에 담겨 묵직한 책으로 탄생했다.

 

 

지은이의 말을 읽어 보면 이 책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지 알 수 있다.

'세계의 중요한 미술관 10곳의 주요 컬렉션'을 '미술관에 데리고 가는 아이들에게 설명하듯이 쉽고 친절하게' 썼으니 '미술관 여행을 떠날 때마다 이 책도 함께' 했으면 한다.라는 것이 지은이의 바람으로 알차게 채워진 책이다.

 

세계 10대 미술관 이란..?

'세계의 몇 대 무엇'들이 다 그러하듯이 지은이가 임의로 뽑은 유명 미술관 10곳이다.

프랑스 2곳, 영국, 미국 2곳,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2곳, 러시아인데 인터넷상에는 주로 세계 3대 미술관이라고 하여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 러시아의 에르미타슈 미술관이 나온다. 이 조차 러시아 대신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넣기도 하는 모양이라 의미는 없지만 말이다.

 

결국은 유명 미술관이란, 미술은 고등학교까지의 수업이 전부인 나라도 알 정도의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있는 곳이다.

루브르의 모나리자, 뉴욕의 아비뇽의 여인들, 내셔널 갤러리의 해바라기 처럼 말이다.

그러니 유명 작가의 작품을 서로 보유하기 위해 피 터지는 경쟁 - 주로 돈으로 해결-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겠지.

 

10곳의 유명 미술관의 관광 안내서답게 각 장의 시작은 해당 미술관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된다.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세워졌는지, 그 미술관만의 건축학적·미술학적· 역사적 특징이나 홈페이지 관리 상황, 이용 시 꿀팁 등 간략하지만 쏠쏠한 정보가 쓰여 있다. 해당 미술관을 방문하기 전에 이 책을 읽어봐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미술관 소개 글을 읽고 내용을 보면 미술관별로 6~10점가량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지은이가 직접 가보기도 했지만 홈페이지를 수없이 드나들며 고르고 고른 작품들이라고 하니 그 미술관의 대표작이라기보다는 지은이가 읽는 이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작품 정도로 생각하면 보면 좋을 것 같다.

"아니, 이 미술관에서 그 작품을 안 본다고? 그 대신 이걸 본다고?" 라는 생각은 금물.

 

각 작품은 정말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다.

한 페이지 또는 두 페이지를 꽉 채우는 잘 인쇄된 그림과 함께.

작가의 삶과 죽음, 성격과 경력, 그 당시 작가에 대한 평판 이야기가 나오고 작품 속의 신화와 상징을 설명해 주며 작품이 탄생한 배경, 그 작품과 유사한 작품들, 함께 보면 좋을 작품들이 나온다. 우리가 좀 더 자세히 보아야 할 부분은 따로 떼어 삽화로 볼 수도 있다. 고흐가 모작한 일본 그림이 나오기도 하고 작품의 모델에 대한 뒷이야기나 현대에서 중요시하는 얼마짜리 작품인가! 하는 내용도 나온다. 파란색 물감이 왜 중요한지, 튤립 그림으로 보는 '튤립 버블' 과 같은 자투리 상식도 들어 있으니 지루할 틈이 없다.

 

미술 책이라 미술 용어나 미술 사조가 나오기도 하지만 어려운 단어가 난무하거나 미술사의 흐름을 짚어가며 시험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엄마와 딸이 함께 있는 아름다운 그림. 태교할 때 추천하는 그림이다.

... 아직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녀가 그려준 동네 사모님들의 초상화가 인기를 끌면서 그녀는 명성을 날리고 돈도 벌었다. 그러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까지 만나 전속 궁정화가가 된다.

>>> page 51 루브르 박물관 -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 - 딸 줄리와 함게 있는 자화상 Self-Portrait with Her Daughter, Julie 중에서

 

좀 예전 영화이긴 하지만 <물랭 루주>(2001)를 보면... 무용수와 시인의 사랑을 연결시키는 감초 같은 역할을 맡은 난쟁이 화가가 실은 툴루즈 로트레크를 모델로 만든 인물이다.

>>> page 183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 소파 The Sofa 중에서

 

몬드리안은 작품만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작업실조차도 직사각 책상에, 원색과 무채색만을 고집했다.

>>> page 224 뉴욕 현대미술관 - 피에트 몬드리안 -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Broadway Boogie Woogie 중에서

 

방울새는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먹고산다고 하는데, 훗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머리에 쓴 가시 면류관에 대한 상징이다. 러시아 에르미타슈 미술관에서 소개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돈나 리타>에서도 등장하는 이야기이니 이 작품과 연결해서 읽어보자.

>>> page 255 우피치 미술과 - 라파엘로 산치오 - 방울새가 있는 성모 Madonna of the Goldfinch 중에서

 

그렇게 살아남아 몰래 자란 아이가 바로 제우스다. 그는 훗날 아버지에게 구토하는 약을 먹여 배 속에 들어가 있던 형제들을 구출하고, 아버지를 제거한 후 올림푸스의 신 중의 신이 되었다. 작품 제목에 사투르누스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은 그리스의 신 크로노스를 로마식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 page 287 프라도 미술관 - 페테르 파울 루벤스, 프란시스코 고야 - 사투르누스 Saturn 중에서

 

성상 파괴를 '이코노클라즘(iconoclasm)'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하나 알아두고 넘어가자.

>>> page 355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 얀 아셀리진 - 성난 백조 The Threatened Swan 중에서

 

당시 브뤼셀에 살고 있던 부유한 화가였던 안나는 고흐가 동생 친구이고 게다가 어려운 형편에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정을 감안하여 그의 작품 <붉은 포도밭>을 500프랑에 (현 시세로 약 2천 달러, 250만 원 정도) 사 주었는데, ... 즉 무려 20배에 이르는 가격에 판매하게 된다.

>>> page 405 반 고흐 미술관 - 빈센트 반 고흐 - 아를의 침실 The Bedroom 중에서

 

이런 식의 추상을 뜨거운 추상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감정을 고양시키기 때문이다. 마치 바그너의 음악과도 같다. 반면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소개한 몬드리안의 기하학적인 그림은 '차가운 추상'이라고 한다. 감정을 끓어오르게 하기보다는 부드럽게 질서를 잡아 준다.

>>> page 469 에르미타슈 미술관 - 바실리 칸딘스키 - 콤포지션 VI Composition VI 중에서

 

미술관 10곳을 즐기는 중간중간 미술 감상할 때 도움이 되는 Q&A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을 좀 더 제대로 즐겼으면 하는 지은이의 마음이 담겨 있어 좋고 내가 딱 궁금해했던 것들이라 굉장히 유익하기도 하다.

 

Q1 미술 감상에도 레벨이라는 것이 있을까?

Q2 아이와 함께 미술관에 간다면

Q3 작품을 감상할 때 작가의 삶에 중점을 두어야 할까?

Q4 그림 감상, 어디에 초점을 두고 시작하면 좋을까?

Q5 그림을 즐기는 방법

 

 

나처럼 예술품에 관심은 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나처럼 어느 미술관을 가보긴 했지만 제대로 보지 못해서 다시 가고자 다짐한 사람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나처럼 유명 작품의 이름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눈으로 보지는 못한 사람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나처럼 작품의 유명세보다는 숨겨진 이야기들에 더욱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나처럼 코로나 핑계를 대며 집콕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비록 세계 10대 미술관의 일부지만 내 방에서 아주 편하게, 천천히 그리고 충분히 즐겼다. 좋은 시간이었다.

 

미술을 전혀 알지 못했을 때는 유럽 여행을 가서 미술관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허세 부린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왜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아가서 예술품을 바라보는지 이젠 알 것도 같다.

나도 이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 10곳을 알고 있죠. 여행을 떠난다면 그곳에 있는 미술관을 꼭 가볼 거예요.

 

특히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하기 위해서 스페인을 꼭 다시 가봐야겠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보면 이 책이 생각나 절로 미소가 지어지겠지.

 



** 프란스 할스의 <술잔을 든 민병대원 (일명, 즐거운 술꾼)> 그림이 참 마음에 든다.

 

** 유광지라서 지문이 잘 묻는다. 나는 조심조심 책장을 넘기며 읽었기 때문에 "한 번 봐도 돼?" 라고 묻는다면 장갑을 끼고 있을 때만 허락된다! 고 답할 것이다.

 

** 이 책을 실제 들고 여행을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무겁거든요. 열심히 읽어서 측두엽에 담아 가자.

 

 


※ 위의 글은 도서리뷰단에 선정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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