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에디터스 컬렉션 10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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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사르트르.

실존주의 철학자,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계약 결혼. 이게 내가 아는 전부다.

이마저도 어느 TV 방송인지 어느 팟캐스트인지 에서 스치듯이 들은 정보이다. 책으로 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하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나 보다. 사실 저 위의 세 가지 정보도 아는 척하며 말했을 뿐 이해하고 있지는 않다.


실존주의.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실존주의란 과연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한참 돌아다녔지만 모르겠다.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나에게 현대 프랑스의 이미지는 예술과 낭만 도시 파리와 에펠탑 그리고 명품이다. 코코 샤넬의 나라와 실존주의 철학자의 나라라니 도무지 연결이 안 된다. 문학과 철학은 영국이나 독일 아니었나. 아 맞다. 알베르 까뮈.

시몬 드 보부아르. 유명한 페미니스트인 보부아르. 사르트르에 대해 모르는 것만큼이나 보부아르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막연히 '아 유명한 철학자구나', '엄청 똑똑한 사람이구나' 정도로 기억해놓았기 때문에 그의 책을 읽을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1905년에 출생한 철학자이자 작가의 책을 읽기 위해서는 그의 사상에 매료되거나 너도나도 그 책을 읽었다 하여 나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그 책을 찾아 읽어야 하는 경우이다.


장 폴 사르트르를 문학계에 알린 책 [구토]. 1938년에 출판된 이 책을 2021년에 읽게 되다니.

내가 이 책을 찾은 것이 아니다. 이 책이 나에게 손을 먼저 내민 것이다.




일반적인 소설책보다 살짝 작은데 위아래로 길쭉한 책이다. 나의 촬영 실력 때문에 사진 속 책이 너무 길쭉하게 나오긴 했는데 저 정도는 아니다... 책은 크지 않은 대신 두께가 꽤 된다.


표지에는 원제인 [LA NAUSÉE]와 작가 SARTRE의 활자가 멋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책을 읽고 나면 멋진 표지 디자인이 책의 내용과 아주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책을 펴자마자 작가의 소개가 나온다.

사르트르의 글을 처음 읽는 사람이라면 간략하게라도 그의 생애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 좋았다. 비록 짧은 소개이지만 그에게 흥미를 갖게 될 만한 부분이 많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그의 연보나 작품 해설 속의 이야기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한두 장을 넘기면 그의 연인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글이 적힌 페이지가 나온다. 휑하게 '비버에게 바침' 이라고 되어 있다.

장 폴 사르트르를 검색해보니 그의 이야기할 때 시몬 드 보부아르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보부아르도 유명한데다 둘의 행보가 가십거리로 삼기 딱 좋아서 그에 초점이 맞춰지기 십상이겠지만 그만큼 둘만의 특별한 관계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2년마다 결혼 계약을 갱신하며 50년이 넘도록 계약 결혼 관계(이자 오픈 메리지)로 지냈다는 두 사람. 부부라는 단어보다는 지적·정신적 동반자가 더 어울린다. 아마 [구토]를 집필하고도 보부아르에게 가장 처음으로 읽기를 권했을 테지....?





책의 차례를 보고는 조금 놀랐다.

차례라고 할 것이 없을 정도로 간단하다. 즉 이 책의 내용은 '앙투안 로캉탱'의 일기가 발행된 것으로 시작된다.

하여 별생각 없이 첫 페이지인 '편집자의 일러두기'를 읽었을 때는 '어...? 편집자 일동..?? 이 책이 시작되었나?' 했었다. 책 속의 책이다.



일기는 '날짜를 적지 않은 페이지' 부터 시작된다. 별 내용이 없어서 이 페이지는 왜 필요하지..? 라고 생각해 보니 아마도 첫 문장 때문인 것 같다. 그저 1인칭 시점으로 얘기했어도 될 텐데 왜 일기 형식을 썼지..? 하는 것에도 대답이 될 것 같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날그날 일어난 일들을 써놓는 것이다. 실상을 명확히 보기 위해서다. 뉘앙스와 작은 사실들을,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놓치지 말 것. 무엇보다도 그것들을 분류할 것.

>>> page 13 '날짜를 적지 않은 페이지' 중에서


[구토]의 주인공은 앙투안 로캉탱이다. 그가 부빌에서 적은 일기의 내용들이다.

그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다 롤르봉 후작에 대한 연구를 위해 부빌에 정착했다.

그러나 끝내 롤르봉 후작에 대한 책을 쓰지 못하고 부빌을 떠난다. 일기의 끝은 그가 부빌을 떠나는 것이다.


그의 일기에 쓴 대로 1932년 1월 25일 월요일에 그에게 무언가 일어났다. 그는 그것을 '구토'라고 명명했다.

그동안 그가 보았던 것, 만났던 사람들, 해왔던 일들.. 모든 것들에서 구토를 느꼈다. 자기 자신에게까지 말이다.

아마도 그것은 무언가를 깨달으며 오는 낯섦일까, 아니면 이제까지 의식하지 못한 것들을 갑자기 의식하게 되면서 알게 되는 변화에 대한 공포 같은 걸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쪼개서 본다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현재인가 미래인가 하는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분명 멀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들이 구토를 느끼게 하는 것일까?


그의 파란색 면 셔츠는 초콜릿색 벽을 배경으로 유쾌하게 부각된다. 그것 역시 구토를 느끼게 한다. 아니, 바로 그것이 구토다. 구토는 내 안에 있지 않다. 나는 그것을 저기에서, 벽에서, 멜빵에서, 내 주위의 도처에서 느낌다. 그것은 카페와 하나를 이루고, 나는 그 안에 있다.

>>> page 55 일기 중에서


앙투안 로캉탱의 일기일 뿐이고 어려운 말은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문장도 없다. 한데 어렵다.




일기라서 대화보다는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세세하게 적은 부분이 더 많다.

어느 일요일의 풍경, 부빌 미술관의 방문, 카페 랑데부 데 슈미노와 카페 여사장, 그가 롤르봉 후작에 대한 작업을 하는 도서관, 그 도서관에서 만난 독학자, 헤어진 연인 안니. 그에게 너무 익숙하고 낯선 모든 것. 잠깐 지나쳐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허투루 적는 법이 없다. 그는 철저하게 혼자였고 고독했지만 그가 원한 것이었고 오히려 주변 인물들보다도 과거 역사 속의 롤르봉 후작과 더 가깝다고 하겠다.


이상한 것은, 분명 어려운 책인데 재미있다. 아니 흥미롭다고 해야 하나. 존재. 그에 대한 고찰, 고뇌에 대해서 말하는 철학 소설인데 말이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부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이해 못 할 부분도 없다.

내가 비록 앙투안 로캉탱이 아닌 책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독학자에 가까운 하찮은 인물일지라도 말이다. 아, 물론 나는 독학자를 경멸하고 있다.


책의 뒤표지 글귀처럼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사상이 [구토]로부터 시작되었다면, 그가 이 철학 소설을 쓰면서 자신의 사상을 다듬었다면, 앙투안 로캉탱이 어느 날 돌멩이의 존재로부터 구토를 느끼게 되고 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결국은 사르트르 자신의 이야기라면 사르트르는 무엇으로부터 구토를 느끼게 된 것일까. 궁금해진다.




[구토]는 여러 번 읽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소설이 가지는 흡입력도 좋지만 문장도 매끄럽다.

괜히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 아니구나.


외국 소설, 철학 소설, 1930년대 소설임에도 문장이 매끄럽다고 느낀 건 번역도 잘 되어 있어서 그런 듯하다.

외국 소설을 이해하는 데 있어 번역이 아주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누가 나에게 이 책의 내용을 설명 해달라면 지금은 할 자신이 없다. 어쩌면 여러 번 읽고 난 뒤에는 가능하려나.

대신 흥미롭고 지루하지 않으니 읽어보라고 추천해 주겠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다가 나를 욕할 수도 있겠지만. 난 진심으로 추천했으니까 뭐.



** 보부아르가 [구토]를 읽고는 어떤 말을 처음 했을지 궁금하다.


** 앙투안 로캉탱에게 존재감이 없는 사람들은 눈을 반쯤 감고 있는 것으로 자주 묘사되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나도 흐리멍덩하게 반쯤 감은 눈을 하고 있었다. 아.. 나란 사람은...





※위의 글은 도서리뷰단에 선정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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