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술관에 간다 - 전문가의 맞춤 해설로 내 방에서 즐기는 세계 10대 미술관
김영애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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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여행사를 다니던 아는 동생의 추천으로 스페인 단체 관광을 갔었다. 단체 관광도 처음이었고 유럽 여행도 처음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출발 일자가 너무 촉박해서 어디를 가는 것인지도 잘 모른 채 급하게 짐을 꾸려서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떠났던 여행 중 2017년 2월 7일.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갔던 날이다. 그날의 사진을 찾아보니 날씨가 아주 좋다. 파란 하늘에 그림 같은 하얀 구름이 떠 있었고 바람은 쌀쌀했지만 햇빛은 좋았다. 미술관 입구에는 고야의 동상도 있었다. 그 동상 앞에서 찍은 셀카를 보니 그때의 설렘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런데 정작 그림들이 생각나질 않는다.

미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지만 단 한 점이라도 "우와.."라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보았을 텐데 말이다. 나는 그렇게 메마른 사람이 아니고 언제나 예술을 사랑하고 있다. 그러니 아마도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너무나도 벅찬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의심할 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어느 작가의 어느 그림이 어떻게 걸려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빠른 걸음으로 그림들을 지나쳐갔던 기억과 북적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여서 이어폰으로 가이드분의 설명이 흘러나왔던 기억.

우리의 관광버스가 스페인에 도착한 후 만났던 가이드분은 [프라도 미술관]을 수도 없이 다녔다고 하셨다. 미술 전공은 아니지만 가이드의 사명감을 가지고 이곳의 주요 미술품을 공부하였고 촉박한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꼭 봐야 할 미술품만을 몇 가지 설명하겠노라. 그렇게 우리의 안타까운 "프라도 미술관 돌파"가 시작됐다. 그 유명하다는 그림 앞으로 비집고 들어가야 해서 뛰듯이 걸어가는 동안 수많은 작품들을 지나쳤다. 우리 관광버스 팀 중 일부는 '다리만 아픈 의미 없는 구경'이라고 혹평했었다. 세계 3대 미술관이라는 설명도 들었겠지만 그 누구도 '미술관 관람'을 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처음 겪어보는 단체 관광의 빡빡한 일정, 생전 처음 가보는 거대한 미술관의 분위기,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 배경지식 없이 보는 웅장한 그림들을 빠르게 지나쳐 가야 하는 단체 관광의 시간적 압박 등에 혼이 쏙 빠졌었나 보다.

무려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라는 그곳을 갔었는데. 언젠가 꼭 다시 오겠다는 다짐만이 남게 되었다.

 

그때 이 책이 있었더라면. 그때 이 책을 읽고 갈 수 있었더라면.

이 책에서 보았던 그림을 직접 미술관에서 보았더라면 그 감동이 어땠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프라도 미술관]을 다녀온 사실이 너무나도 뿌듯하지 않았을까.

 

누군가 이 책에 나온 10대 미술관에 간다면 이 책을 꼭 읽고 갔으면 좋겠다.

아니 이 책을 읽은 후 그 미술관들을 꼭 가보아야 한다.

아니 아니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연스레 그곳에 가보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니 우선 [나는 미술관에 간다]를 펴고 세계 10대 미술관이 어떠한 곳인지 함께 가보자.

 


 

 

미술에 관한 책답게 책 표지 앞뒷면과 책등의 디자인이 각기 다르고 감각적이다.

내 방에서 즐기는 미술관이니 삽화가 많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책장 옆면이 빼곡하게 알록달록한 것을 보니 이 책 한가득 들어 있을 예술품 삽화에 들뜨게 된다. 그 삽화들은 사진관에서 뽑아 준 유광 인화지 같은 종이 재질에 담겨 묵직한 책으로 탄생했다.

 

 

지은이의 말을 읽어 보면 이 책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지 알 수 있다.

'세계의 중요한 미술관 10곳의 주요 컬렉션'을 '미술관에 데리고 가는 아이들에게 설명하듯이 쉽고 친절하게' 썼으니 '미술관 여행을 떠날 때마다 이 책도 함께' 했으면 한다.라는 것이 지은이의 바람으로 알차게 채워진 책이다.

 

세계 10대 미술관 이란..?

'세계의 몇 대 무엇'들이 다 그러하듯이 지은이가 임의로 뽑은 유명 미술관 10곳이다.

프랑스 2곳, 영국, 미국 2곳,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2곳, 러시아인데 인터넷상에는 주로 세계 3대 미술관이라고 하여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 러시아의 에르미타슈 미술관이 나온다. 이 조차 러시아 대신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넣기도 하는 모양이라 의미는 없지만 말이다.

 

결국은 유명 미술관이란, 미술은 고등학교까지의 수업이 전부인 나라도 알 정도의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있는 곳이다.

루브르의 모나리자, 뉴욕의 아비뇽의 여인들, 내셔널 갤러리의 해바라기 처럼 말이다.

그러니 유명 작가의 작품을 서로 보유하기 위해 피 터지는 경쟁 - 주로 돈으로 해결-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겠지.

 

10곳의 유명 미술관의 관광 안내서답게 각 장의 시작은 해당 미술관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된다.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세워졌는지, 그 미술관만의 건축학적·미술학적· 역사적 특징이나 홈페이지 관리 상황, 이용 시 꿀팁 등 간략하지만 쏠쏠한 정보가 쓰여 있다. 해당 미술관을 방문하기 전에 이 책을 읽어봐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미술관 소개 글을 읽고 내용을 보면 미술관별로 6~10점가량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지은이가 직접 가보기도 했지만 홈페이지를 수없이 드나들며 고르고 고른 작품들이라고 하니 그 미술관의 대표작이라기보다는 지은이가 읽는 이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작품 정도로 생각하면 보면 좋을 것 같다.

"아니, 이 미술관에서 그 작품을 안 본다고? 그 대신 이걸 본다고?" 라는 생각은 금물.

 

각 작품은 정말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다.

한 페이지 또는 두 페이지를 꽉 채우는 잘 인쇄된 그림과 함께.

작가의 삶과 죽음, 성격과 경력, 그 당시 작가에 대한 평판 이야기가 나오고 작품 속의 신화와 상징을 설명해 주며 작품이 탄생한 배경, 그 작품과 유사한 작품들, 함께 보면 좋을 작품들이 나온다. 우리가 좀 더 자세히 보아야 할 부분은 따로 떼어 삽화로 볼 수도 있다. 고흐가 모작한 일본 그림이 나오기도 하고 작품의 모델에 대한 뒷이야기나 현대에서 중요시하는 얼마짜리 작품인가! 하는 내용도 나온다. 파란색 물감이 왜 중요한지, 튤립 그림으로 보는 '튤립 버블' 과 같은 자투리 상식도 들어 있으니 지루할 틈이 없다.

 

미술 책이라 미술 용어나 미술 사조가 나오기도 하지만 어려운 단어가 난무하거나 미술사의 흐름을 짚어가며 시험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엄마와 딸이 함께 있는 아름다운 그림. 태교할 때 추천하는 그림이다.

... 아직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녀가 그려준 동네 사모님들의 초상화가 인기를 끌면서 그녀는 명성을 날리고 돈도 벌었다. 그러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까지 만나 전속 궁정화가가 된다.

>>> page 51 루브르 박물관 -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 - 딸 줄리와 함게 있는 자화상 Self-Portrait with Her Daughter, Julie 중에서

 

좀 예전 영화이긴 하지만 <물랭 루주>(2001)를 보면... 무용수와 시인의 사랑을 연결시키는 감초 같은 역할을 맡은 난쟁이 화가가 실은 툴루즈 로트레크를 모델로 만든 인물이다.

>>> page 183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 소파 The Sofa 중에서

 

몬드리안은 작품만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작업실조차도 직사각 책상에, 원색과 무채색만을 고집했다.

>>> page 224 뉴욕 현대미술관 - 피에트 몬드리안 -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Broadway Boogie Woogie 중에서

 

방울새는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먹고산다고 하는데, 훗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머리에 쓴 가시 면류관에 대한 상징이다. 러시아 에르미타슈 미술관에서 소개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돈나 리타>에서도 등장하는 이야기이니 이 작품과 연결해서 읽어보자.

>>> page 255 우피치 미술과 - 라파엘로 산치오 - 방울새가 있는 성모 Madonna of the Goldfinch 중에서

 

그렇게 살아남아 몰래 자란 아이가 바로 제우스다. 그는 훗날 아버지에게 구토하는 약을 먹여 배 속에 들어가 있던 형제들을 구출하고, 아버지를 제거한 후 올림푸스의 신 중의 신이 되었다. 작품 제목에 사투르누스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은 그리스의 신 크로노스를 로마식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 page 287 프라도 미술관 - 페테르 파울 루벤스, 프란시스코 고야 - 사투르누스 Saturn 중에서

 

성상 파괴를 '이코노클라즘(iconoclasm)'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하나 알아두고 넘어가자.

>>> page 355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 얀 아셀리진 - 성난 백조 The Threatened Swan 중에서

 

당시 브뤼셀에 살고 있던 부유한 화가였던 안나는 고흐가 동생 친구이고 게다가 어려운 형편에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정을 감안하여 그의 작품 <붉은 포도밭>을 500프랑에 (현 시세로 약 2천 달러, 250만 원 정도) 사 주었는데, ... 즉 무려 20배에 이르는 가격에 판매하게 된다.

>>> page 405 반 고흐 미술관 - 빈센트 반 고흐 - 아를의 침실 The Bedroom 중에서

 

이런 식의 추상을 뜨거운 추상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감정을 고양시키기 때문이다. 마치 바그너의 음악과도 같다. 반면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소개한 몬드리안의 기하학적인 그림은 '차가운 추상'이라고 한다. 감정을 끓어오르게 하기보다는 부드럽게 질서를 잡아 준다.

>>> page 469 에르미타슈 미술관 - 바실리 칸딘스키 - 콤포지션 VI Composition VI 중에서

 

미술관 10곳을 즐기는 중간중간 미술 감상할 때 도움이 되는 Q&A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을 좀 더 제대로 즐겼으면 하는 지은이의 마음이 담겨 있어 좋고 내가 딱 궁금해했던 것들이라 굉장히 유익하기도 하다.

 

Q1 미술 감상에도 레벨이라는 것이 있을까?

Q2 아이와 함께 미술관에 간다면

Q3 작품을 감상할 때 작가의 삶에 중점을 두어야 할까?

Q4 그림 감상, 어디에 초점을 두고 시작하면 좋을까?

Q5 그림을 즐기는 방법

 

 

나처럼 예술품에 관심은 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나처럼 어느 미술관을 가보긴 했지만 제대로 보지 못해서 다시 가고자 다짐한 사람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나처럼 유명 작품의 이름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눈으로 보지는 못한 사람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나처럼 작품의 유명세보다는 숨겨진 이야기들에 더욱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나처럼 코로나 핑계를 대며 집콕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비록 세계 10대 미술관의 일부지만 내 방에서 아주 편하게, 천천히 그리고 충분히 즐겼다. 좋은 시간이었다.

 

미술을 전혀 알지 못했을 때는 유럽 여행을 가서 미술관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허세 부린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왜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아가서 예술품을 바라보는지 이젠 알 것도 같다.

나도 이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 10곳을 알고 있죠. 여행을 떠난다면 그곳에 있는 미술관을 꼭 가볼 거예요.

 

특히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하기 위해서 스페인을 꼭 다시 가봐야겠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보면 이 책이 생각나 절로 미소가 지어지겠지.

 



** 프란스 할스의 <술잔을 든 민병대원 (일명, 즐거운 술꾼)> 그림이 참 마음에 든다.

 

** 유광지라서 지문이 잘 묻는다. 나는 조심조심 책장을 넘기며 읽었기 때문에 "한 번 봐도 돼?" 라고 묻는다면 장갑을 끼고 있을 때만 허락된다! 고 답할 것이다.

 

** 이 책을 실제 들고 여행을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무겁거든요. 열심히 읽어서 측두엽에 담아 가자.

 

 


※ 위의 글은 도서리뷰단에 선정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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