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샤라 휠러와 키스했다
케이시 매퀴스턴 지음, 백지선 옮김 / 시공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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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본 표지 중에 가장 강렬하다.
표지만 봐도 미국 작가일 거란 느낌이 든다. 색감이나 디자인에서 미국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제목에 있는 이름을 본 후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눈길을 사로잡는 데는 성공.

이토록 강렬한 표지에는,
핑크 핑크 한 입술을 가진 금발 여성의 도발적인 눈빛과
얼굴을 반쯤 가린 선명한 분홍빛 카드에 눈빛보다 도발적인 문구가 적혀있다.

[I Kissed Shara 나는 샤라 휠러와 키스했다]

작가를 소개하는 글이 흥미롭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독특한' 로맨스 작가이자
성격이 나쁘고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자주 쓰며 해리포터 시리즈의 광팬.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ADHD가 있는 괴짜 작가라고 소개한다고 한다.
자신의 반려견 푸들 페퍼에게 이 책을 바치는 작가. 아니 연인의 이름도 페퍼일까. 아리송.

이 짧은 소개 글에서도 느껴지는 자유분방함과 솔직함 그리고 당돌함이 이 소설에도 담겼다. 반전의 반전 같은 꼬임은 없다. 복잡하고 어려운 인간의 심리묘사 같은 것도 없다.
그래서 줄거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표지의 주인공인 샤라 휠러가 졸업을 한 달 앞둔 졸업파티에서 사라진다. 샤라는 사라지기 전에 주인공에게 갑자기 키스를 했고 자신을 찾을 수 있는 단서를 남겼다.
키스의 이유를 묻기 위해 인공이 샤라를 나서며 만나는 사람과 그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황들, 단서를 풀어가며 샤라 찾기. 그게 이 소설의 내용이다.

다만, 고등학생, 졸업 무도회, 금발의 퀸카, 우등생, 쿼터백, 아웃사이더 그리고 키스. 키워드만 늘어놓아도 할리우드 영화의 한 편이 뚝딱 떠오르는데 그 안에 미스터리와 성소수자라는 키워드까지 녹여냈다. 고등학생들의 풋풋하고 서툰 사랑이라는 뻔한 이야기이긴 한데 주인공에게 엄마가 2명이 있다거나 주인공이 자신이 양성애자라고 말하거나 가까운 주변인들이 거의 성소수자라는 등의 생소한 상황들 말이다.
특히 유교의 나라인 대한민국에서는 좀처럼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더욱 생소하고 낯선 부분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누군가에겐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이야기들일 텐데도 굉장히 잘 읽힌다.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 같은 것 없이 가볍고 발랄하게 쓰인 소설이라 읽는 사람 또한 가볍게 접근할 수 있고 개인적인 잣대를 들이밀며 괜히 진지해질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시원시원하고 군더더기 없는 표현들로 인해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네!라며 유치하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결국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해.라는 미국 특유의 교훈(?)도 이제 막 성인이 되는 주인공을 빌어 이야기해서 그런가 그렇지.라고 맞장구치게 된다.

미드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국 고등학교의 분위기를 대략 알 수 있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영상을 글로 옮겨놓은 것처럼 모든 장면을 쉽게 상상해 볼 수 있으니까.

머릿속에 모든 장면이 그려지니 책을 읽기 시작한 뒤로 그 자리에서 금세 반 이상을 읽었다. 신세대 문학이고 가벼운 로맨스 소설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왜 베스트셀러가 됐는지 알 듯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한 부분이 없다. 필력이 상당하다.

재미있다.
오랜만에, 제목과 표지 그대로의 귀엽고도 발랄한 책을 만났다.


**아마 눈치 빠른 독자들이라면 알 수 있었을 텐데 ㅎㅎ 영화화가 결정이 되었다고 한다.

**[해리포터]를 닮은 미스터리 로맨스라는 책 소개는 옳지 않다! 이 이야기는 마법 세상이 아닌, 현실에서 누구에게나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고 미스터리..라고 까지는 조금..

아, [해리포터]를 닮긴 닮았는데. 똑똑하지만 무뚝뚝한 여학생과 교내에서 유명한 남학생 그리고 학업에 관심없는 말썽쟁이. 이 셋이 의외의 사건으로 뭉치는 거랄까..?! 그러네?!?!

** 권력자이자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부패하는 건 아닌데 교장의 부정부패가 왜 이리 자연스러운지 모르겠다. 따흑

** 번역 이상한 부분들이 있음!

- "...콩나물을 콕콕 찌르고 있는 또 한 번은... " -> 콤마를 찍어서 찌르고 "있는, 또 한 번은"으로 바꿔야 하고,

- "...클로이가 들고 있었다. 시집을 보더니, ..." -> 이어지는 문장이니 "클로이가 들고 있던 시집을 보더니" 가 맞을 듯 하다.

- "...샤라의 머릿속을 맴돈 샤라는..." -> "클로이" 인데 샤라로 오타난 듯


※ 위의 글은 컬처블룸 도서리뷰단에 선정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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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와 달빛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8
세르브 언털 지음, 김보국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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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주인공과 내가 어딘지 닮아 있는 느낌.

이제 막 책장을 폈고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몇 줄만 읽어 내려가도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단 한 번도, 어쩌면 영영 가보지 못할 헝가리에 사는 과거의 주인공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우리 둘의 삶에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그가 과거를 회상하며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낯설지가 않다.

그러니 그처럼 나도 "폐허 속의 들쥐" 같은 모습이라도 살아남겠노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닐까.


[여행자와 달빛]





직관적이지 않고 에세이에 어울릴 법한 제목을 보자마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는데 책을 읽고 나서는 제목은 전혀 상관하지 않게 되었다. 작가가 왜 제목을 '여행자와 달빛'으로 했는지는 책을 읽어봐야만 알 수 있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책에 딱 어울리는 제목이야.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더 나은 제목이 생각나지도 않는다.

신혼여행, 혼자만의 여행, 과거로의 여행 등 끊임없이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 여행자의 이야기는 맞다. 하기야 삶도 하나의 여행이라 할 수 있으니 우리 모두가 지구와 현재를 떠도는 여행자들이기도 하다.

한 여행자와 그가 만난 다른 여행자들의 이야기.


글쎄, '울피우시 터마시'나 '터마시' 로 제목을 지었다면 어땠을까를 잠시 생각하기는 했었다.

굳이 '터마시'라는 이름을 제목으로 상상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미하이' 다. 책 소개에 나오듯 헝가리인인 '미하이'는 '에르지'와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알콩달콩한 신혼여행의 분위기는 아니었고 어쩐지 둘의 관계가 위태로워 보이기는 했지만 '미하이'의 성격이 건조하고 냉소적인 듯 묘사돼서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었다. 한데 갑자기 '미하이'의 친구가 그들 앞에 등장하여 '미하이'를 비난하고 가버리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된다.

오래전 친구였던 '야노시'를 만난 '미하이' 가 이제 막 자신의 아내가 된 '에르지'에게 털어놓게 되는 이야기들은, 어느 독자들에게는 반항기 가득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로 끝일 수 있고 어느 독자들에게는 음울하고 죽음에 대해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정신병에게 기인하는 것이라고 단정 지어버릴 수도 있다. 그처럼 '미하이'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는 아주 유별나다.

그 중심에 '울피우시 터마시' 가 있다. 그의 여동생 '에버 터마시'과 함께.


서로 완벽하게 이해한다 믿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함께 할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 아무렇지 않게 그런 인연들이 사라져버린다고는 상상할 수 없다. 영화 [친구]의 포스터 문구처럼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라는 것은 요즘 말로 일진들이나 학폭의 주인공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청춘 한가운데서 맺은 정신적인 유대는 아주 오랫동안 영향을 끼친다.

'미하이'가 '터마시'를 '배신'했다고 말했던 일을 이해했기 때문에 '미하이'의 여행이 낯설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미하이'는 자신이 학창 시절의 기억에서 떠나기를 노력했지만 계속 그 자리를 맴돌고 있었고 신혼여행이 엉망으로 끝나고 나서야 길고 긴 자신만의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이제서야 오래전 기억을 가진 채로도 살아남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청춘 속에 갇혀있던 이들도 떠나고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삶의 여행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고 그런 그들은 우연치 않게 다시 마주하게 되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주인공은 현실로 돌아갔다. 그의 아내도 돌아갔다. 각자의 삶으로. 모든 여행이 그렇듯이. 그러고는 또 다른 여행을 계속하게 되겠지.


뒤표지에 쓰인 '김화진 소설가'의 말처럼



"떠난 자리로 돌아온 것 같지만 실은 아주 달라진 채로..."




나와 같이, 여전히 기나긴 방황을 하는 길 잃은 여행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 유럽의 생소한 지명들과 각 지역 특유의 분위기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부분이 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주인공이 묘사했던 헝가리나 이탈리아의 지역들을 방문해 봤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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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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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가 있다. 제목과 표지만 보고는 그저 지나쳐버렸는데 우연히 책 소개를 읽고는 '휴우 이 책을 그냥 지나치다니 큰일 날 뻔했네'라고 생각할 때 말이다.

그렇게 극적으로 만난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제목을 봤을 때는 영화 '신과 함께' 같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내용이거나 최근에 본 드라마 '미씽: 그들이 있었다'처럼 죽은 자들이 모여있는 어느 곳의 이야기가 아닐까 했었다.
표지의 세 여성의 눈빛이 묘하게 텅 비어있고 무서워서 틀림없이 죽은 자들의 이야기일 거라고 멋대로 추측했었다.

한데 책 소개를 보고는 내 예상이 완전히 어긋났음을 깨닫는 순간 벌써 이 책의 흥미진진함이 시작된다.
추리 소설이라면 반전의 반전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이미 첫 장을 펴보기도 전에 반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첫 장을 펴면 목차나 작가의 말 같은 것은 없고 - 감사의 말은 책의 맨 뒷장에 나온다. -
『이 소설을 쓰는 내내 나와 함께했던 모든 심령에게』 라는 문구만 나온다.
혹시 이 책은 작가가 실제로 만난 심령들에 관한 소설일까 하고 다음 장을 넘기면 
『마술의 길』  구스타브 마턴 - 이 마술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 '프레스티지'같은 마술사들의 대결 이야기인가? 

주인공은 '거리의 마술사 제니'.  그녀가 유명 탐정회사 수장을 만나서 탐정 요원이 되어 심령술사들을 파헤친다.
하여 탐정회사의 지침서가 등장하고 심령술사들에 관한 설명서 또한 존재한다.
마술사   심령   심령술사   탐정회사 - 이 조합을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까.
작가는 마술사와 심령술사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이용해서 긴장감을 불어넣고 그들 사이의 묘한 닮음을 적절히 사용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게다가 그 사이에 탐정회사라는 장치를 넣어서 추리소설 특유의 궁금증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그러니 추리 소설을 좋아해서 이 책을 추리 소설로 분류하고 싶은 나의 바람과는 별개로
이 책의 소개처럼 [제니의 위험천만한 대모험!]으로 분류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책의 구성은,
주인공 제니가 겪게 되는 일들 속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남겨 주신 『마술의 길』 책 1권과    『완벽한 요원을 위한 핑커턴 지침서』 가 토막토막 소개되며 길잡이처럼 이야기의 흐름을 잡아준다.  책 소개에서는 '책 속의 책'이라고 불렀는데 이 마술이야기와 탐정회사 지침서를 함께 읽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책은 크기가 작은 편이면서 꽤 두꺼운 편이다.
책을 처음 받아보고는 예상보다 두툼해서 놀랐고 읽는데 시간이 꽤 걸리겠다 싶었는데 잘 읽히는 편이다.
마술사의 실크해트에서 끊임없이 색색의 천이 나오듯이 예상치 못한 내용의 전개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이다.

마지막에 소개되는 page 607의 이 내용이 아주 좋았다. 심령술사와 탐정회사가 실존했다는 이야기다.
와우. 소설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흥미롭다니.


**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마술사와 심령술사는 닮은 점이 많은 듯하다.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기 전에는, 내가 마술사나 심령술사가 되기 전에는 그것은 현실 같기도 하고 거짓 같기도 하고 속임수 같기도 하고 신비한 어떤 힘인 것도 같다.  그렇게 본다면 탐정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일반인들이 보지 못했던 것을 찾아내서 진실을 파헤치는데 사용하니 마치 심령술사가 범인을 잡는 것처럼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다.

** 유독 한국이 사랑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영향 때문이겠지만 띠지에 쓰인 '또 다른 베르베르의 등장' 이라는 말보다는 마술사, 심령술, 탐정 등 내용을 부각시키는 문구였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뒤표지에 있던 '거리의 마술사 제니, 우당탕 기상천외한 수사에 뛰어들다'  처럼.


※ 위의 글은 도서리뷰단에 선정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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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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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소설 모음집은 언제나 환영한다.
짧은 호흡의 소설을 좋아하기도 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한 권으로 읽다 보면 나의 상상력 또한 풍부해지고 대중교통 안에서 잠깐잠깐 읽기도 좋다. 책 한 권을 가볍게 읽으려면 단편 모음집이 딱이다.
 
책 소개를 읽자마자 꼭 읽어보고 싶었던 [레이디스]

 

 책 제목만을 봤을 때는 단편소설 모음집인 줄도 몰랐고 작가가 이렇게나 유명한 사람인 줄도 몰랐다.
서스펜스의 대가, <더 타임스> 선정 역대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 유명 영화들의 원작자이자 [캐롤]의 원작자
[캐롤]은 분명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퀴어 영화였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기억한다. 비록 원작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범죄소설가와는 동떨어져 보이는데 미국과 유럽에서 추리작가협회 상을 수상할 정도라니 작가의 소개를 읽고 작가에 대해 검색해 볼수록 이 책의 내용이 더 궁금해져 갔다.
 

하지만 제목만으로는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알지 못했다.
작가의 이력을 읽는 것만으로도 한껏 기대 중이었지만 제목은 심심하게도 [레이디스]
 
여성만의 이야기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내용들을 되짚어보니 각 작품 속에 나오는 여성들의 존재가 굉장히 강렬하다. 소설 속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듯한 여성들이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존재감. 작가 소개 페이지에서 말하듯 '타인에 대한 불안한 감정' 이 생생하게 담긴 책 속의 인물들이 책을 읽는 나에게도 전해지며 당장 어떠한 일이 생길 것만 같고 깊은 사연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아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큰 사건은 없지만 한 장면 장면이 섬세하고 예리하게 묘사되어 있고 그 정교한 심리 표현에 있어서는 흔하지만 독특한 여성 캐릭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작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초기 심리소설들을 모아 출간하게 된 것이라 하니 제목을 먼저 정해놓고 쓴 작품들이 전혀 아니지만 전혀 다른 열여섯 개의 작품을 하나로 묶는 데는 [레이디스]라는 제목이 충분히 잘 어울려 보인다.

작품의 길이는 제각각이다. 단편소설 치고도 아주 짧은 이야기도 있었다.
7번째 작품인 [프림로즈는 분홍색이야]는 이야기도 짧지만 사건도 아주 단순해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때 '어라? 이게 끝난 건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시작은 분명히 흥미진진했는데 마무리가 생소하고 허무했다. 한데 리뷰를 쓰는 지금에서야 '아...!' 알게 된다.
작가를 알고 나면 책이 더 재미있어지는 경우도 꽤 있었지만, 특히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그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나서 책을 읽는 것이 좀 더 이해하기 쉽다. 왜냐하면 작가는 장편/단편 할 것 없이 다작을 했고 한 번도 소재의 고갈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니 [공 튀기기 세계 챔피언]이나 [프림로즈는 분홍색이야]와 같은 이야기들은 어떠한 소재라도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특히나 별것 아닌 소재에도 긴장감을 불어넣는 그녀의 재능을 뽐내는 글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열 여석 작품 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최고로 멋진 아침]과 [모빌 항구에 배들이 들어오면]이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설정과 묘사들도 좋았고 배경이나 문장 하나하나는 평화로워 보이는데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불안감과 긴장감이 감돌면서 별의별 상상을 하게끔 만든다. 물론 결말은 나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쪽이라 더욱 신선했지만. 그것은 글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미드에서나 나올 법한 끔찍한 결말을 상상해서이기도 했으니 서스펜스의 대가라는 말이 정말로 맞다.
 
다만 수록된 작품들은 초기의 작품이라 그런지 내용이 신선하고 특이해서 흥미롭지만 어딘지 알 수 없게 밀도가 부족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상황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거나 인물의 묘사가 너무 단편적이라 독자의 상상력이 꽤나 필요한 내용이 있다거나 하는 부분 말이다. 어쩌면 작가의 시그니처일지도 모르지만 이 책 한 권만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그러하다.
그래서 아무래도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꼭 읽어보아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초기 단편들이 이렇게나 흥미진진한데 영화화까지 되어 유명해진 장편들은 얼마나 더 흥미진진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아직 작가의 그 어떤 작품도 읽어보지 않았다면 [레이디스]의 열여섯 작품을 먼저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읽는 내내 검은 오라를 내뿜어내며 자신만만하게 글을 써 내려가는 작가의 모습이 분명 그려질 것이고
그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에게 입덕하게 될 것이다.
 
 
 
** 작가의 작품이 [태양은 가득히]라는 영화의 원작이었는지 몰랐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관심 있는 '리플리 증후군'이 이 영화를 통해서 알려졌다고 하니 굉장히 놀랍다. 이러한 작가가 [캐롤]의 원작자라는 사실까지도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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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워 보이는 것들의 비밀 우리 미술 이야기 3 - 철학의 나라 : 조선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의 비밀 우리 미술 이야기 3
최경원 지음 / 더블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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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500년이 넘도록 왕조가 이어지며 대한민국이 태어나도록 무너져버린 나라. 애증의 역사이자 살아 숨 쉬는 현재이다.


현대와 가장 가까운 역사이니만큼 자료가 풍부하고 긴 역사였던 만큼 이야깃거리도 넘친다. 조선왕조 500년이란 MBC 드라마로 8년 동안 방영하고도 부족했을 정도이다. 장희빈,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등 조선시대 인물들로 각종 사극이 방영되었고 조선을 분석하여 발간된 책은 어마어마한 양일 것이다. 영화의 소재나 배경의 단골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이제 우리는 조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 자신 있게 '충분히 알고 있다'라고 말한다면 묻고 싶다. 조선의 미술은 알고 있는가.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꼭 한 번은 읽어보아야 할 책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의 비밀 우리 미술 이야기 3]



이 책의 제목을 보면 3이라고 쓰여있다.

조선의 미술이 1,2,3으로 구성되어 있는 줄 알고 내용이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 앞부분을 놓친 게 아닐까 걱정하며 찾아보니 역사의 흐름별로 나누어져 있다.


1권이 미완의 시작 - 선사, 삼국, 통일신라

2권이 영원한 현재 - 고려

3권이 철학의 나라 - 조선




책의 첫인상은 '예쁘고 두껍다'이다.

책을 다 읽고도 깨끗하게 소장해두고 싶은 예쁜 표지를 가지고 있다.

아마 서점에서 이 책을 봤다면 '읽어볼까..?'라는 호기심이 생길만하다.


하지만 아마 책을 들어보고는 멈칫할 수도 있다.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사진들이 곳곳에 들어 있어 책의 무게가 상당하다.

출퇴근 시간에 읽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장 수(480쪽)이지만 쉽게 잘 읽힌다.

가끔 역사에 관한 책을 읽을 때면 너무 딱딱한 문체거나 너무 어린이 만화 같은 구성일 때가 있는데 이 책은 읽기에 딱 좋을 정도의 친근함이 있다. 마치 잘 만들어진 다큐를 글로 보는 듯한 느낌이다.



차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각각의 장에 담긴 저자의 조선시대 미술에 대한 애정과 지식이 상당하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저자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었는데 궁금해져서 이력 부분을 읽어보았다.

의외로 공업디자인을 전공했는데 미술과 당시의 시대상에 관한 연결이 매끄럽다.

친근하면서도 전문적이고 어렵지 않지만 새로운 시각.



조선시대 그림이나 미술품이라고 하면 고작해야 김홍도, 신윤복, 백자 정도가 떠오를 뿐이었는데

책의 첫 장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분청사기'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조선시대 성리학 이념으로 풀이해 놓아서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게 되었고 글을 따라가다 보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는 기쁨과 함께 조선의 미술에 무관심하거나 폄하했던 시각을 완전히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32장 자연을 초대한 인공물 지게> 를 보자.

지게라고 하면 일본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고려장'에 대한 이야기만 떠오를 뿐이었다. 부정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농사를 짓기 위한 민속 도구이자 짊어지는 만큼의 무게가 어깨와 삶을 함께 누르는 느낌의 고난의 도구. 투박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 조선시대 미술에 관한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인다.

한데 이 책에서는 전혀 다른 설명을 해준다.


...도구로서의 기능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면서 자연 본래의 속성이 최대한 유지되도록 만든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쓰임새와 자연성이 모두 성취되는 그 선을 정확하게 찾아내야 하니, ...

>>> page 445 중에서


책을 읽으며 지게의 사진을 다시 보니 나무의 속성 그대로이면서 튼튼하고 효율적인 도구로 보인다.

자연 친화적이고 군더더기가 없는 만듦새이다.


소박한 아름다움도 충분히 멋지지만

조선왕조 500년을 소박함 하나로만 치부하는 것은 분명 편협한 시각이고 좁은 식견이다.

책 한 권을 읽을 덕분에 조선시대를 새로이 바라보게 되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단순히 조선시대의 미술이 우리의 생각보다는 멋지더라. 라는 '국뽕'의 영역을 벗어난 책이다.


프롤로그의 한 줄이 이 책의 전하고자 하는 진심이다.


조선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과거를 밝히는 일만이 아니라 미래를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 책을 읽기 전에 [우물 밖의 개구리가 보는 한국史] 읽어서 그런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다. 우연히도 아주 좋은 흐름의 책 읽기가 되어 기쁘다.


** 책이 두꺼웠지만 재미있었기에 출퇴근 대중교통에서도 틈틈이 읽었다. 체력도 조금 늘지 않았을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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