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 9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김영두 옮김 / 소나무 / 200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시대 최고의 사상논쟁이라고 하는 이 사칠논쟁의 와중에 의외의 장면이 있습니다. 기대승이 이황에게
종이를 보내며 <중용>을 필사해주면 평생의 가보로 삼겠다는 것이죠. 이황은 건강상의 이유로 거절합니다만
서간집들을 읽다보면 그리 의외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논쟁인 동시에 나이를 뛰어넘은
망년지우의 사귐의 기록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단칠정론에 관한 치열한 논쟁으로 점철되어 있을 것만 같은 고봉과 퇴계의
서간집은 일상적인 내용들이 더 많습니다. 벼슬길에 오른 지 얼마되지 않은 기대승에게
판서 출신의 노학자가 보내는  진심어린 걱정과 충고, 지금쯤으로본다면
장관에서 물러난 사람이 이제 막 행정고시를 치고 사무관이 된 이에게 보낸 것과 같겠군요.
그렇게, 이 책에는 , <禮>가 담겨있습니다. 지금의 시대에 '예'를 말한 다는 것은 명절 때가 아니면
말장난에나 쓰일 고리타분하고 지리멸렬한 단어일 법한데 이 말들이 몇 백년전의 조선에서 먹물 향기와
함께 묻어나는것이 새삼 신비롭게느껴집니다.

서로에게 충심으로 예를 다하고는 있어도 기본적으로 이 서간집은 논쟁집입니다. 낮출수 있는한
자신을 낮추고 높일 수 있는 한 상대방을 높이는 격의 속에서도 理와 氣에 관한 그들의 논쟁은
한 치의 양보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단칠정론은 논리상 기대승의 우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어찌보면 이황이 억지를 쓰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사실 이 사단칠정 논쟁은 논증적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직관적 인식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예의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왜 이것을
지켜야되느냐라고 설명하기 시작하면 한계가 있죠. 왜 우리가 어른들에게 존대를 해야하는가.
왜 우리가 선한 것을 추구하고 악한 것을 배척해야 하는가. 이것은 논리적인 설명으로는
명쾌하게 해결 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사단칠정은 <맹자>의 한 구절부터 시작합니다.
측은지심은 인지단이라. 그렇게 해서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그리고 인의예지 이렇게 4구절이 나옵니다. 태극은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주희의 해석을 기점으로
기대승과 이황이 그들의 주장을 펼치게 되죠. 기대승은 기본적으로 주희의 이론에 충실한 정통
주자학입니다. 그러니까 주희 이후 최고의 주자학자, 성리학자로 꼽히는 이황이 사실은 정통 주자학
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것은 애초에 논리로 풀 수 없는 문제였던 것입니다.
논쟁을 시작한 것은 기대승이었지만 논쟁을 그만두자고 시 한 수를 보낸 것은 이황이었죠.
이것은 타협이나 설득의 문제가 아니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정통 주자학에서 벗어나면 또 어떤가,
일탈에서부터 발전이 드러나는 예는 역사적으로 수없이 존재합니다. 지금의 시대에 이황의 무게가
이이보다 높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겠죠.

리가 움직여서 사단이 되고, 기가 움직여서 칠정이 된다. 리는 언제나 선하기 때문에 사단은
언제나 선하고 기는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기때문에 칠정은 다스려야 한다. 이기호발론.
리와 기가 상호 발함으로써 성립된다는 이황은 주장은 참으로 금욕주의입니다. 그 바탕에는
리라고 하는 절대 존재에 대한 숭앙을 기본으로 합니다. 영남학파의 근원을 이루는 주리론입니다.
현실에서는 보수적 성향을 띄게 되겠죠.

기대승의 주장은 사단과 칠정모두 기에서 발현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통주자학에 기초한 것인
만큼 그는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에서의 心은 곧 이미 발현된 (已發) 氣이며 곧 그것이 端(단초)
이므로 사단 또한 기의 발현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이와 함께 기호학파의 근원을 이루게 되는
이른바 기발리승일도설이죠. 기가 발현하고 리는 그것에 올라타 한 길로 흐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상대적으로 이황에 비해 덜 금욕적입니다. 이런 주기론 현실에서는 개혁적 성향을
띄게 되겠죠.

보수와 개혁라고 하지만 이것은 현대의 용어에 기댄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저의 상대적인 분류
일뿐이죠. 학파가 주장하는 설들의 성격과 현실정치의 성향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게다가 주의해야 할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주리론과 주기론이 리와 기의 우의로
그 범주가 나뉘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리론이 리를 우위에 두고 주기론이 기를 우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둘 다 리를 위에 두되 다만 기의 역활을 좀 더 강조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이도 말했지만 오히려 선험적 자아라는 측면에서 볼 때 기의 역활을 볼 때 기가 변화 무쌍
하게 강조되면 될 수록 오히려 변하지 않는 리의 존재는 더욱 돋보일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황은 변하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아야할 리가 發해서 선하게만 쓰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찌보면 치기어리죠. 그만큼 도덕적 절대성에 대한 숭배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
이었을 테지만 도덕과 함께 인간에 내재하는 慾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하는 측면, 어찌보면 알고
있었으면서도 굳이 부정하려한 억지가 보입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런 것들이 이황을 존경받게
만드는 것이겠죠. 에도의 유학자 야마자키 안사이는 매일 아침 이황의 초상을 걸어두고 절을 했다
라고 하던가요.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정치사상사연구>에서도 보이는 것처럼 안사이는 에도유학
사상 가장 엄격하고 보수적인 인물이죠. 이렇게 이황이 존경받게 된 것은 그의 학설만큼이나 주자학
이라는 존재가 현실 개혁적 성향보다는 현실유지적 성향이 강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봐도 될 듯
합니다.

붕당과 연속과 탕평책, 결국은 조선을 멸망으로 끌고가는 세도정치. 기호학파와 영남학파의 경향성
으로 조선왕조를 설명하려는 것은 제게는 힘에 부치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기적, 주리적
성격이 정권을 운영해나가는 데에 반영되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도 있습니다.
개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가 변화해야 한다는 지향성입니다. 무엇인가가 변할때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흔들리는 진자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기하학적인 부동점과도 같이 중심으로 자리
합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없다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말장난 같은 이
명제 속에는 개혁속에 내재하는 보수성의 맹아가 보입니다. 무언가가 변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되어버릴 때 그것은 파시즘이나 다름없는 도그마가 되어버리죠. 제가 발견하는 이 서간집의 현재성
은 이런 것입니다. 현재를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 존재로써 맹신할 때, 자신들이 하늘 일이 선왕의 도
이며 천하의 도인 것이며 따라서 결코 틀릴 수 없다는 아집은 보수의 극단에 서있습니다.
극우와 극좌가 통한다는 것은 이런 면에서 볼 수도 있지않을까요. 구름위에서 이와 기를 논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빛나보이는 것은 그런 통찰력때문이겠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려한 군주 - 근대일본의 권력과 국가의례 이산의 책 26
다카시 후지타니 지음, 한석정 옮김 / 이산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마루야마 마사오는 그의 저작 '겐큐'의 영어판 서문에서 오진 천황의 한자를 잘못 표기한 것     때문에 동료 교수의 충고를 받아들여 '삼가 아래와 같이 고칩니다'라는 정정문을 내야만했던    40년대 일본 학계의 풍토를 언급한적이 있다. 정중히 정정하지 않았다면 사상 경찰의 표적이   되어 학계 내외적으로 곤란을 겪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50년이 지난 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는 한 인터뷰에서 사르트르처럼 노벨상을 거부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이것은 유럽의 작가와는 달리 일본의 한 작가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에게 주어지는 상이므로 받겠다는 말을 했다. 이후 그는 천황이 하사하는 상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일본극우세력의 테러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일본에서는 '천황' '텐노' '미카도' 를 논하는 것은 아직도 극히 조심스런 일이다. NHK를 통해  들려오는 료헤이카 (兩陛下)에 대한 아나운서의 멘트는 극진할 정도다. 만세일계, 천조대신으로 부터 면면히 이어져와 하나의 혈통을 순순하게 지키고 있다는 일본 황가의 내력. 다카시 후지타니는 그의 저작 <화려한 군주>를 통해 일본에서의 실제적인 '천황'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수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낸다. 니체, 푸코가 사용했던 계보학의 방법론을 빌려 지금은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현상들이 그 기원을 파고 들어가면 필연적인 역사를 가진 것이 아니라 매우 '우연한' 계기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후지타니가 말하는 '천황제'의 실제적인 기원은 '고사기'나 '일본서기'에서 제시되는 것처럼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가 아니라 '메이지 유신'이라는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메이지 유신의 공신들은 막부를 타도한 후 국민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일본'이라는 국가적 정체성과 '일본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여기서 구심점으로 삼은 것이 그 동안 막부에 밀려 블라인드 속에 갇혀있던 '천황'이라는 존재였다. 그렇다면 그들이 직접 왕위에 올라 진두지휘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유신의 과정에서 주도자들은 막부뿐만 아니라 사이고 다카모리와의 서남전쟁처럼 토막파의 한때 동지들과도 전쟁을 치뤄야만 했다. 존왕양이의 기치를 혁명의 적당성으로 삼고 천황에서 우선 충성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국민들을 구슬리는 방법을 택했다. 그래서 '천황'의 권위를 키우기 위해 메이지 신궁과 삼전을 세우고 국토 순행을 통해 국민들에게 장막속에 갇혀있던 천황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천화에 관련된 수많은 의식과 행사들을 만들어낸다. 왕가의 일을 관장하는 궁내성이 어떤 면에서 대장성보다 더 은밀한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도 이때부터다. 

일본에서 천황의 문제는 결국 그 흔하디 흔한 '근대성'의 문제다. 후지타니는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의 파놉티콘을 인용하며 천황이 원형감옥 속의 감시자와 같이 모든 사람들을 굽어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여 일본사회의 구심점이 되어왔음을 지적하며 권력과 제도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이 문제에서 우리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박정희의 10월 유신 - 웃기다. 維新이라니. 헌법을    쓰레기통에 용도폐기하고 어록 몇 개로 나라를 움직였던 긴급조치. 그딴것들이 뭘 새롭게 할 거라고 유신이라는 말을 쓰고 있나.- 과 그 이전 정치 사회 경제적 제도의 많은 부분들을 일본에서 도입해왔던 우리나라는일본의 구조를 많이 닮아있다. 만세일계, 수천년을 이어온 순수함. 어디서 많이 듣던 말 아닌가. 한국의 근현대사에는 이와 비슷한 장면들이 많이 발견된다. 메이지 교육칙어를 베껴와 국민교육헌장이라는 이름으로 둔갑시키고 길을 걸어가다가도, 야구장과 농구장에서도 애국가가 울려처지면 멈춰 서서 가슴에 손을 얹고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을 칭송하며 반만년 역사속에서 수천번의 외침을 물리치고 꿋꿋이 이어온 백의 민족. 야마토타마시와 배달정신의 차이가 무색해지는 순간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 9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