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에 대해서 처음 알게된 것은, 만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내 삶의 모습이 조금은 변해있었을지도 모를, 지금도 마음속으로 사형으로 생각하는 한 선배를 통해서였다. 대학시절엔한창 피씨통신을 통해서 자신의 내공 내지는 스넙을 과시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았었는데 그 중 '기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입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절판된 서적이었고 단과대학인 내 모교는 그다지 다양한 장서를 자랑하지 못했기에 옆의 국립대 도서관에서 일일이 복사를 해서 보았던 그 책은 시시껄렁한 소설책 따위나 어슬렁거리던 내게 가벼운 충격을 주었다. 어쩌면 언론에 대한, 기자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면도 없지 않았을것이다. 그 속의 잔인하고 냉정하고 때로 뜨거운 현실은 - 특히나 동유럽의 - 몸으로 체득하지 못한 경험에서 실재성을 걷어버리고 문자 자체로의 매력으로만 남아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뒤늦게 책읽기에 맛을 들인 탓에 읽고자 하는 책들이 절판되는 경우에 적지 않은데 고종석
의 경우도 구하기 쉽지 않은 책들이 많았다. 헌책방을 종일 돌아다니거나 출판사의 재고
담당자들을 닥달하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유럽통신'은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미녀 후배가 충무로 한 극장 앞에서 내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


나는 그의 언어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볼 때 부럽기도 하고 또 부끄럽기도 하다.
한 우물을 파는 것에 익숙치 않은 내게 프랑스어로 기사를 쓸 줄 아는 그의 모습이,
중세 국어의 모습을 재구해 나가는 그의 모습이, 사전 한 구석에서 잠들어 있을 고유어
들을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그의 모습이 그러했다.

'히스토리아'와 '코드 훔치기'를 통해 드러나는 그의 정세에 대한 분석은 현상의 단면
만을 바라보는 내게 한없는 절망감을 안겨준다.
'바리에떼'와 '서얼단상'과 '자유의 무늬'를 통해 드러나는 그의 정치에 대한 신념은
현실 정치에 무심한 내게 양심과 행동에 관한 자책에 빠져들게 한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의 저작 '감염된 언어'는 순결함에 대한 욕망이
무시무시한 파시즘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교훈과 함께 민족주의, 진리, 절대, 다수,
애국과 같은 단어들에 스며들어 있는 집단주의에 대한 경계를 깨우쳤다. 그것이 비록
그런 집단주의를 강요하는 지금의 현실들을 경멸하게만 만든 지금의 내 모습에 일조를
했다손 치더라도 아마 히틀러 유겐트나 다름없을 국가주의나 마초이즘에 빠지지 않게
만들어 준것만으로도, 그런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큰 후회를 하지 않게 만든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축복같이 여겨진다. 

나는 그의 글쓰기를 통해 수많은 고전과 노래와 사람들을 알게되었다.
요컨대 그의 글쓰기는 내용에서나 형식에서나 나의 전범과 같다.


 


 

 

 

 

 

그의 저작 두 권이 새로 나왔다. 하나는 그간 한국일보에 실렸던 칼럼들을 모은 '말들의 풍경'과
예전에 나왔던 것에 글 하나를 보탠 '감염된 언어'의 증보판이다. 다른 책이면 모르되 '감염된
언어'라는 특수성에 힘입어 망설임없이 주문하고야 말았다. 페이퍼 신문을 거의 사지 않는 내가,
주말 서평판조차 인터넷을 뒤지는 내가 주중 한국일보를 사게만든 것도 전적으로 그 때문이다.

고종석에 관한 짧은 헌사를 쓰려다 결국 두서없는 장광설로 끝맺는다.
오랫동안 그가 붓을 놓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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