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 과학수사와 법의학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이수광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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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골이 띵할만큼의 흥미진진함을 기대했으나, 초전박살내준 책.-_-

일단 저자명을 보니, 4~5년 전에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보다가도 열받아서 안 본

'나는 조선의 국모다'를 쓴 사람.

그 책도 보면서 아니 도대체 명성황후에 대해서 이렇게밖에 못쓰나 싶었는데,

(고종에게 잘 보이기 위한 민비의 처절한 자태 꾸미기에 굉장한 지면을 할애했는데,

그 내용이 요즘 초딩들도 유치해서 못볼 정도임)

이 책도 역시.. 아.... 내 돈 돌리도.

아니, 조선을 뒤흔든 살인사건이라면서 최소한 결말을 추측할 정도의 재미는 남겨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이야기 시작하기 전에 조그맣게 어떤 사건이었는지를 자세히(!) 요약해주었고,

그리고 나서 모든 사실에 이유를 갖다붙이는데, 일단 그 서술방식도 책을 구매한 독자를 우롱하는 짓이지만,

그 서술마저도 너무나 1차원적이다.

서점에서 대강 훑어라도 봤다면 절대 그 자리에 서서도 안봤을 책.

제길, 기획만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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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츠 마이클? What's Michael? 1~8 세트
고바야시 마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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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87년도에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잠시 거주한 적이 있다.

거기서  아버지가 만나는 지인들 몇 분이 계셨는데,

그 분 중 한 분이 만화를 그렇게 좋아하셨다네.

암튼, 이래저래 일어판 'what's michael?' 5권이 계속 굴러다녔는데..

항상 그림만으로 웃다가 어느 날 문득 요것이 한글판도 나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인터넷을 뒤져보았더니~!

헉.. 있었다...캬캬캬캭.

그것도 무려 8권이나!!!

당장 구입해서 정말 근 20년만에 '아~~ 이런 얘기였구나..! ㅋㅋㅋ'이러면서 봤다는 얘기.

암튼, 각설하고

고냥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과히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그 섬세한 행동거지의 묘사며, 그 얼굴의 미묘한 변화와 머릿속에 들었음직한 생각들..

요건 도저히 키우지 않고서는, 같이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그 무언가에 관한 만화다.

같이 사는 동거자로서 '묘'를 강력추천한다.

고양이는 웬지 좀.. 이라고 생각돠는 분들에게도 강추가능한 만화.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에 힘입어 9권도 발간 예정..음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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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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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책을 좋아한다. 아마 대부분의 애서가들이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 책을 '읽는' 것만큼 책을 '다루는' 것도 좋아한다. 책을 사모으고, 책장에 나만의 방식으로 배열하고, 그렇게 놓여진 책을 훑어보며 뿌듯해하고 책에 관한 메모들을 적어두는 것. 책의 내용과 형식 모두를 사랑하는 일. 그것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벌써 뱃속이 간질간질한 긴장과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오른다.

이런 자칭 책벌레인 내가, 언젠가 <독서의 기술>을 읽고 그 지루함에 놀란 적이 있었다. 분량이 얼마 되지도 않는 그 '책에 관한 책'을 읽으며 과연 내가 진정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가를 의심하기까지 했었는데, 이 <서재 결혼시키기>를 읽고, 그 이유를 알아냈다. 책을 읽는 일은 순수한 개인적 정신 활동이다. 그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행위를 타인들과 공유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 있어 책을 읽는 일이란, 책의 저자뿐 아니라 그 책과 관련된 모두를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는 적어도 '책을 나만큼 좋아한다'는 사람이라면 일단 관심을 가지게 된다. 사람의 향기가 나지 않는 책의 책, 어떻게 읽느냐에 관한 얘기는, 원체 건조한 나조차도 그 꺼칠함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같은 지점에서, 반대로 이 책의 미덕은 그런 것이다. 책에 관한 얘기이면서, 동시에 사람에 관한 얘기라는 것. 책을 무엇보다 사랑하지만, 사람과의 삶을 놓치지 않는 저자의 일상이 너무나 멋지다. 부모님이 작가였다는 행운도 빼놓을 순 없지만, 그건 단 한가지 조건일 뿐, 저자 자신이 글을 깨치고, 책을 가지고 놀고 낭독을 듣고 시를 쓰고 산문을 쓰고 공부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해주고……. 내가 아는 한 사람 간의 아름다운 만남의 최선은 서로를 북돋워가며 끝없는 지성의 길로 달려가는 모습이다. 사람이 사고를 하고 삶을 사는 데 지성을 추구하는 일보다 더 사람다운 일은 없는 것 같다. 아니 이렇게 거창하게 지성 운운할 것도 없이, 한 가족이 책에 둘러싸여 책을 가지고 놀며 성장하고 토론하고 뭔가를 나누는 모습, 인간이라는 공통점 외에 서로를 가르는 기준없이 만나는 이 모습은 너무나 따뜻하다.

더불어 이 책을 읽는 누구나가 느낄, 저자의 재치있으되 냉소적이지 않은 유머와 지적 탐구심과 애교는 붙잡은 즉시 책을 '먹어치울' 수 있게 하는 맛깔스러운 천연조미료다. 오랜만에, 골방에 처박혀 책에 파묻히고 싶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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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수희 옮김 / 열림원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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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끔 하루키의 소설이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사람들의 관계에 치이거나 일들이 복잡하게 얽혀버릴 때, 특히 마음 속 감정들이 모두 일어나 소용돌이를 이룰 때 그렇다. 하루키의 소설은 늘 단순하면서 간결하고, 사람 마음을 온건하게 가라앉혀준다. 마치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이.

하루키의 다른 소설에서처럼, 여기에서도 그의 냄새가 물씬 난다. 혼자 사는 30대 중반의 남자 '나', 끊임없이 등장하는 맥주와 와인들, 가만히 있는 '나'에게로 접근하는 여자들, 옷입는 양식과 요리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 오래된 영화와 소설들. 삶을 이루는 '디테일'에 대한 이러저러한 그의 '법칙들'은 마치 따라하기를 은근히 요구하는 권유처럼 보인다. 물론 그는 아무 의도도 없다 하겠지만. 어쨌건, 그럴듯해 보이도록 입고 먹고 보게 만든다. 그래서 이런 구체적 품목들을 내 실제 생활에 써먹으면서 나는 '하루키'를 아주 쉽게 만끽할 수 있게 된다. 아주 작은 하루키의 미덕이랄까.

하루키 소설에는 대체로 단조롭던 삶을 크게 바꾸는 기/발/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특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제목도 의미심장한 이 소설에서도 우리의 생각 너머에 있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것이 강렬한 어떤 일임에 분명하지만, 절대 내게 혼란이나 복잡함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늘상 결말이 하루키식의 '그저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지요'하는 담담한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건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아무럴 것도 없는 일인 것이다. 세상사는 대체로 호들갑일 뿐이라는 듯. 그러나 그것이 곧 'nothing happened'라는 것은 아님을, 읽는 우리는 책을 덮을 때쯤엔 알게 된다.

항상 두터운 완충제를 몸에 두른 듯, 그(인지 '나'인지)는 담담하다. 마치 마음 속의 티끌 하나를 응시하는 듯. 이 소설도 그렇다. '세계의 끝'이라는 곳도 실은 어느 특정한 장소라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의식이 만들어낸 완벽한 마음의 장소다. 그리고 '나'는 결국 탈출을 포기한다. 결국 한 개인은 자신이 만든 그 곳에서 높다란 벽에 둘러싸인 채, 심지어 존재를 의식하지도 못한 채 영원히 살아가고 있다. 그 곳에는 모든 것이 있지만, 또한 아무 것도 없다. 타인도, 자아도, 감정도, 죽음도. 들어갈 수는 있지만 빠져나올 수는 없는 곳.

개인에게 지금 현세는 얼마나 달콤한가. 모든 것이 있기에 아무 것도 없으면서 불행하지 않다. 빠져나올 수 없지만 그것은 당연한 사실이기에 그저 잠깐 씁쓸할 뿐, 불행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구체적인 유토피아를 머릿 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재미일지도 모른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지칭되는 생활에서 잠시 지친 육체와 영혼이 세계의 끝을 꿈꾸는 것. 모두들 각자의 순수한 구멍을 파는 곳. 목적이 없는 행위, 진보가 없는 노력, 어디에도 도달하지 않는 보행이 있는 곳. 그래서 아무도 상처입지 않고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으며 아무도 앞지르지 않고 누구에게도 추월당하지 않는다. 이것이 멋지다고 생각되는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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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3
장정일 지음 / 하늘연못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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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3

장정일은 너무나 흥미로운 작가이다. 사디즘의 원초작가라는 등의 평가는 그닥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를 너무나 좋아한다.

그의 소설은 사실 전혀 끌리지 않는다. 그가 독서일기 중간중간에 밝히는 그의 소설에 대한 해설만 읽어보아도 충분하다. 그는 자기모멸에 대한 연작시리즈를 썼으며 몇 년전에 판매금지된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마지막이라고 했던 것 같다. 나는 그의 주제가 '자기모멸'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겐 충분한 영감을 주며, 애써 시간을 들여 그의 소설을 읽고 싶지는 않다. 또한 그가 자주 사용하는 사도 마조히즘에 대해 상식 이상으로 알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그것의 소설화는 더욱 보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의 해석 혹은 그의 시들, 잡문이 더욱 좋다.

고로 나는 그의 독서일기를 너무도 즐겁게 읽었다. 남들은 뭐라건 나는 그가 최대의 행복을 누리며 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일년에 읽어대는 그의 책들이 전부 그의 행복이며 그가 이 세상에서 하고싶은 일이다. 혹자는 남이 읽은 2차적인 글을 읽을 것이 아니라 그 원본을 보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느냐고 하나, 그것은 원본콤플렉스로 설명되는 하나의 강박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의 독서일기를 읽으면서 나도 이런 일기를 쓰고프다는 질투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그보다 더 이런 2차적인 읽기를 통해, 즉 그의 해석을 통해 책들을 읽는 것 자체도 하나의 독서라고 생각되며 어차피 내 주관이 있고 스스로의 읽기 능력이 있는 한 내가 원본을 읽을 경우에도 결코 그의 언설에 넘어가서 그것이 내 고정관념이나 일차적인 꺼풀이 되지는 않으리라 확신한다. 오히려 내 경험상으로, 독서 후에 끌렸던 책을 읽고 비교해가면서 그가 주목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 더욱 절실히 느끼고 더불어 나의 다른 관점에서 보는 그 책의 평가와 비교하는 것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다들 책읽기는 최고의 취미이자 지식인-우리 나라 모든 부모들이 자식에게 되기를 바라는-이 되기 위한, 혹은 교양인이 되기 위한 기본코스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책읽기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거부감도 없고 오히려 장려되어 마땅하다 생각되지만 사람들의 그 만사형통이라는 책의 편견에는 반대한다. 또한 책을 읽고난 후에 좋았다, 재미있다로 도배된 서평도 저주한다. 아무리 텍스트가 기원적인 목적과 주제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그 주제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다양한 해석과 평가의 스펙트럼이 나올 수 있을진대, 그것을 통한 책의 선별에는 무관심하다. 또한 그 책 자체의 훌륭함만 칭찬할 뿐, 그것을 양식삼아 일어나는 독서자의 변화에는 대체로 너무도 rough하다.

고로 나의 이러한 의견에 동감하는 사람이라면 장정일의 독서일기 씨리즈를 충분히 즐길 수 있으며 또한 그 씨리즈의 4권까지밖에 없음이 쉬울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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