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수희 옮김 / 열림원 / 1997년 9월
평점 :
품절


가끔 하루키의 소설이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사람들의 관계에 치이거나 일들이 복잡하게 얽혀버릴 때, 특히 마음 속 감정들이 모두 일어나 소용돌이를 이룰 때 그렇다. 하루키의 소설은 늘 단순하면서 간결하고, 사람 마음을 온건하게 가라앉혀준다. 마치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이.

하루키의 다른 소설에서처럼, 여기에서도 그의 냄새가 물씬 난다. 혼자 사는 30대 중반의 남자 '나', 끊임없이 등장하는 맥주와 와인들, 가만히 있는 '나'에게로 접근하는 여자들, 옷입는 양식과 요리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 오래된 영화와 소설들. 삶을 이루는 '디테일'에 대한 이러저러한 그의 '법칙들'은 마치 따라하기를 은근히 요구하는 권유처럼 보인다. 물론 그는 아무 의도도 없다 하겠지만. 어쨌건, 그럴듯해 보이도록 입고 먹고 보게 만든다. 그래서 이런 구체적 품목들을 내 실제 생활에 써먹으면서 나는 '하루키'를 아주 쉽게 만끽할 수 있게 된다. 아주 작은 하루키의 미덕이랄까.

하루키 소설에는 대체로 단조롭던 삶을 크게 바꾸는 기/발/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특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제목도 의미심장한 이 소설에서도 우리의 생각 너머에 있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것이 강렬한 어떤 일임에 분명하지만, 절대 내게 혼란이나 복잡함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늘상 결말이 하루키식의 '그저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지요'하는 담담한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건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아무럴 것도 없는 일인 것이다. 세상사는 대체로 호들갑일 뿐이라는 듯. 그러나 그것이 곧 'nothing happened'라는 것은 아님을, 읽는 우리는 책을 덮을 때쯤엔 알게 된다.

항상 두터운 완충제를 몸에 두른 듯, 그(인지 '나'인지)는 담담하다. 마치 마음 속의 티끌 하나를 응시하는 듯. 이 소설도 그렇다. '세계의 끝'이라는 곳도 실은 어느 특정한 장소라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의식이 만들어낸 완벽한 마음의 장소다. 그리고 '나'는 결국 탈출을 포기한다. 결국 한 개인은 자신이 만든 그 곳에서 높다란 벽에 둘러싸인 채, 심지어 존재를 의식하지도 못한 채 영원히 살아가고 있다. 그 곳에는 모든 것이 있지만, 또한 아무 것도 없다. 타인도, 자아도, 감정도, 죽음도. 들어갈 수는 있지만 빠져나올 수는 없는 곳.

개인에게 지금 현세는 얼마나 달콤한가. 모든 것이 있기에 아무 것도 없으면서 불행하지 않다. 빠져나올 수 없지만 그것은 당연한 사실이기에 그저 잠깐 씁쓸할 뿐, 불행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구체적인 유토피아를 머릿 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재미일지도 모른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지칭되는 생활에서 잠시 지친 육체와 영혼이 세계의 끝을 꿈꾸는 것. 모두들 각자의 순수한 구멍을 파는 곳. 목적이 없는 행위, 진보가 없는 노력, 어디에도 도달하지 않는 보행이 있는 곳. 그래서 아무도 상처입지 않고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으며 아무도 앞지르지 않고 누구에게도 추월당하지 않는다. 이것이 멋지다고 생각되는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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