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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3
장정일 지음 / 하늘연못 / 1997년 1월
평점 :
절판
장정일의 독서일기3
장정일은 너무나 흥미로운 작가이다. 사디즘의 원초작가라는 등의 평가는 그닥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를 너무나 좋아한다.
그의 소설은 사실 전혀 끌리지 않는다. 그가 독서일기 중간중간에 밝히는 그의 소설에 대한 해설만 읽어보아도 충분하다. 그는 자기모멸에 대한 연작시리즈를 썼으며 몇 년전에 판매금지된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마지막이라고 했던 것 같다. 나는 그의 주제가 '자기모멸'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겐 충분한 영감을 주며, 애써 시간을 들여 그의 소설을 읽고 싶지는 않다. 또한 그가 자주 사용하는 사도 마조히즘에 대해 상식 이상으로 알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그것의 소설화는 더욱 보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의 해석 혹은 그의 시들, 잡문이 더욱 좋다.
고로 나는 그의 독서일기를 너무도 즐겁게 읽었다. 남들은 뭐라건 나는 그가 최대의 행복을 누리며 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일년에 읽어대는 그의 책들이 전부 그의 행복이며 그가 이 세상에서 하고싶은 일이다. 혹자는 남이 읽은 2차적인 글을 읽을 것이 아니라 그 원본을 보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느냐고 하나, 그것은 원본콤플렉스로 설명되는 하나의 강박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의 독서일기를 읽으면서 나도 이런 일기를 쓰고프다는 질투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그보다 더 이런 2차적인 읽기를 통해, 즉 그의 해석을 통해 책들을 읽는 것 자체도 하나의 독서라고 생각되며 어차피 내 주관이 있고 스스로의 읽기 능력이 있는 한 내가 원본을 읽을 경우에도 결코 그의 언설에 넘어가서 그것이 내 고정관념이나 일차적인 꺼풀이 되지는 않으리라 확신한다. 오히려 내 경험상으로, 독서 후에 끌렸던 책을 읽고 비교해가면서 그가 주목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 더욱 절실히 느끼고 더불어 나의 다른 관점에서 보는 그 책의 평가와 비교하는 것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다들 책읽기는 최고의 취미이자 지식인-우리 나라 모든 부모들이 자식에게 되기를 바라는-이 되기 위한, 혹은 교양인이 되기 위한 기본코스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책읽기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거부감도 없고 오히려 장려되어 마땅하다 생각되지만 사람들의 그 만사형통이라는 책의 편견에는 반대한다. 또한 책을 읽고난 후에 좋았다, 재미있다로 도배된 서평도 저주한다. 아무리 텍스트가 기원적인 목적과 주제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그 주제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다양한 해석과 평가의 스펙트럼이 나올 수 있을진대, 그것을 통한 책의 선별에는 무관심하다. 또한 그 책 자체의 훌륭함만 칭찬할 뿐, 그것을 양식삼아 일어나는 독서자의 변화에는 대체로 너무도 rough하다.
고로 나의 이러한 의견에 동감하는 사람이라면 장정일의 독서일기 씨리즈를 충분히 즐길 수 있으며 또한 그 씨리즈의 4권까지밖에 없음이 쉬울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