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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이야기는 한 여자의 자살기도에서부터 시작된다.
여자는 자살하기 전 의미 없는 삶과 반복될 일상들의 지루함에 치를 떤다.
그녀는 아무도 자신을 기억해주지 않기를 바라며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고
의식을 잃는다.
그녀는 의식을 잃은 지 일주일 후쯤 정신이 든다.
그 곳은 여느 병원과는 달랐다.
빌레트. 원래는 전쟁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 장애를 가진 군인들을 수용할 시설로 시작됐지만 실제로 전쟁이 길지 않았고 오히려 전쟁 보다는 일반 정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훨씬 많았으므로 그 곳 정신 병동은 꽤 많은 방이 비어있었다.
그녀는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의사에게서 자신이 자살기도의 후유증으로 심장에 이상이 생겼으며 일주일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그 것 참 아이러니 하게도 그녀는 자신이 일주일도 못 살 것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에 오히려 자신이 살 수 있었을 삶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녀는 처음 이 삼일 동안은 다시 자살하기 위해 알약을 구하려 했지만
이내 부질없음을 느끼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려 한다.
그 순간 어찌나 버럭 겁이 나는지 다시 살고 싶은 욕망이 저 심연 깊은 곳에서부터 치솟음을 그녀도 느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피아노에 일생을 걸려 했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꿈을 좌절해야만 했던 기억도 함께.
그녀는 피아노를 칠 수 있을만한 공간을 찾는다. 살롱. 이미 어두운 방안에 피아노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녀는 가까이 다가가 앉는다. 달 빛이 창문을 통해 슬며시 들어온다. 그녀는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무지막지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증오, 사랑, 두려움, 불안, 공포, 후회 등 의 감정들이 심장을 세차게 방망이질 한다. 우당타앙……
갑자기 문이 열리며 한 청년이 미소를 지으며 서 있다. 그는 정신 분열증으로 병원에 입원한 에뒤아르 였다. 그는 그녀의 옆에 다가와 피아노를 더 쳐주기를 기대하는 눈빛을 보낸다. 그녀는 월광 소나타를 연주한다.
이 책은 나에게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이미 생각해 보았던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에 잠기게 했다. 이 책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나는 이미 연금술사라는 책으로 내게 큰 감명을 준 파울로 코엘료라는 작가를 언제나 칭송의 어조로 이야기하지만 이 책은 거의 여자의 마음을 아니 어쩌면 나의 마음 속에 들어왔다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나를 경악 케 했다. 자살 충동. 그리고 새롭게 다가간 삶에 대한 애착에 대한 여자의 심리를 자세하고도 지리멸렬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 또한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지 않아 있다. 실제로 손목에 칼을 대볼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죽음에 대한 충동만큼 삶에 대한 충동 또한 컸다. 나는 죽도록 살기 싫었지만 죽도록 살고 싶었던 것 같다.
어떤 드라마에서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죽이기 위해 무기상에 들러 총을 구입하려 하는데 총을 파는 남자가 사려는 남자에게 말하던 장면이다. 남자는 총을 넘겨주며 사람을 진짜 죽이려는 사람들이 이 총을 구입하려고 한다며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에 자신의 본성을 깨닫게 된다고 이야기해준다. 그 순간이 와야만이 자신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엔 나는 자살을 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다. 자살 또한 그 순간이 와야만 알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옥상 위에서 뛰어내릴지 안 뛰어내릴지를.
결국 베로니카는 죽지 않는다.
늙은 의사 이고르는 자신의 논문을 위해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그는 그녀가 자살 기도 이후 자신이 다시 삶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을 알면 또 다시 자살을 시도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녀를 시한부 인생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죽음의 자각이라는 자신의 논문을 완성한다. 그녀를 실험의 대상으로 삼았던 거다. 결국 두 사람이 빌레트를 탈출함으로써 그는 거짓말에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됨을 위안으로 삼는다.
베로니카는 에뒤아르라는 정신분열증 환자이면서도 아닌 이 청년과 빌레트의 허술한 경비를 빠져나와 하룻 밤의 목숨을 즐기려 한다. 하지만 다음날 차디찬 공원? 속에서 노숙하다 깨어난 이 커플은 아직도 그녀가 살아있음에 하늘에 감사하며 하루를 맞이한다.
사람들은 삶을 그토록 증오하면서도 사랑한다. 어쩌면 인간들은 하루하루를 죽어가며 사는데도 더 빠른 죽음을 맞지 못해 안달이 난 듯 하다. 뉴스에서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들으며 또한 속으로 안심하는 인간의 본성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또한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정말 현자들의 이야기처럼 삶과 죽음은 같은 것일까. 처음 시작한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게 맞는 말일까.
어쨌든 나는 지금 살아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더 빠른 죽음을 맞지 못해 안달난 듯이. 그리고 더 빠르게 지루하게 지쳐가며 또한 감사할 것이다. 이토록 생기 있고 아름다운 삶의 기회를 갖게 된 것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