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섹스
헨리밀러 지음 / 예술시대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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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외설작가로 유명한 헨리 밀러. 하지만 막상 그의 책들을 읽어보면 야하다기 보단 뭔 말인지 도통 이해가 안되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많은 이들이 뭔가 '야사시'한 걸 기대하고 '북회귀선'이나 '남회귀선'과 같은 그의 대표작에 손 대 보곤 하지만, 한 페이지조차 넘기기 힘들게 하는 형이상학적 난해함에, 기대했던 바를 얻지 못한 채 결국 손 들어 버리고 말곤 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집에 꽤 많은 밀러의 책들을 보유하고 있는 나름의 밀러 애호가지만 사실 그의 작품보다는 그의 인생, 용기, 업적 자체에 애정이 더 많은 편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읽게된 이 책은 이제껏 밀러의 책들에 실망을 계속해온 사람들에게 강추 할 만한 '헨리 밀러 입문서'라 할 만하다.

이 책은 젊은 시절 밀러의 파리 생활(특히 성생활)을 다룬 작품으로서 이 책의 주인공 죠이는 곧 밀러 그 자신이다. 이 책은 밀러 특유의 난해한 철학적 문체 없이 스토리텔링 중심의 쉬운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담겨 있는 내용 역시 유머러스 하고 경쾌하며 행복하다.

이 책 역시 '외설' 작가의 작품답게 과감하고 일탈적인 성생활을 많은 부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 보다 밀러만의 자유와 행복으로 가득찬 인생관을 엿 볼 수 있어 흐뭇한 작품이다. 그의 문란한 성생활을 본 받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법만은 꼭 배우고 싶다.

P.S. 사실 내가 읽은 책은 여기 이 책이 아니라 1995년에 시아 출판사에서 '클리쉬의 고요한 나날'이라는 다른 제목으로 발행했었던 책이다. 알라딘 목록에 있는 '빠리섹스'와는 원제도, 옮긴이도 똑같은 쌍둥이 판본이다. 사실 원제를 그대로 살린 '클리쉬의 고요한 나날'이라는 목가적 제목 보다 '빠리섹스'라는 제목이 내용상으로는 훨씬 어울리는게 사실이지만, 왠지 제목부터 삼류풍으로 전락한 것 같아 좀 아쉽다. 내가 읽은 판본인 '클리쉬의 고요한 나날'이라는 책 사이사이에도 어이없는 에로 사진들이 마구 삽입되어 있어 공공장소에서 읽기 무척 민망했던 기억이 있는데...하여튼 제목만 보고 삼류 에로 소설로 오해하는 분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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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제국
앙리 프레데릭 블랑 지음, 임희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국내에는 '저물녘 맹수들의 싸움'이라는 작품이 먼저 소개되었지만 실제로는 '잠의 제국'이 이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한다. '저물녘 맹수들의 싸움'과 함께 이 책까지 읽어보면 이 작가의 책들이 줄거리는 다르지만 결국 같은 주제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앙리 프레데릭 블랑의 작품들은 이야기 초반의 흥미로운 설정이나 발단부분의 독창성에 비해 뒷이야기는 좀 지루하고 단순한 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결말 부분에는 나름대로 급격한 반전이 있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이 좀 지루하다. '저물녘 맹수들의 싸움'은 매우 얇은 책이기 때문에 지루하기도 전에 후루룩 지나갔지만 그 보다 더 두꺼웠던 이 책 '잠의 제국'은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정도의 지루함이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앙리 프레데릭 블랑의 책들을 좋아한다. 이유는 그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나와 맞다고나 할까?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 아무 것도 안하고 있으면 불안한 세상, 이 모든 것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만 하는 숨가쁜 세상살이.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잘못된 것이라고 대신 말하여 주는 책 속의 주인공들을 보고 있으면, 비록 그것이 지금의 지친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없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이 책을 읽을 당시에 나 역시 숨가빴기에, 나로서는 정말 난생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는 페이지를 따로 표시해두기도 하면서 유심히 책을 읽었다.(책을 읽으면서 그런 행동을 한 적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잠이란, 곧 학문의 연장'으로 생각하여 잠을 자는 조제프의 생각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긴 하지만, 어째든 그의 잠예찬론은 지루하지만 경의롭다!!

만약 여러분이 이 책을 읽으시면서 육체적인 수면에 대한 욕구를 조금만 참아내신다면, 틀림없이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에는 정신적인 휴식의 단계로 접어들 수 있을 것입니다. 좀만 참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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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Mr. Know 세계문학 33
A.스뜨루가쯔키 외 지음 / 열린책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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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억년이라니 얼마나 긴 세월인가?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십억년 뒤에 지구를 멸망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만약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반응은 어떨까? 상당히 철학적일 수도 있는 주제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철학소설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책의 편집도 시원시원하고 내용 역시 막힘 없이 술술 읽힌다. 뒷 내용이 계속 궁금해 지면서...

대충 분류는 SF소설이지만,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는 SF는 아니고, 일상 속의 SF라 하겠다. 내용은 도대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계속 자신의 연구를 저지 당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이다. 러시아 소설이니 만큼 '학문의 정치적 검열'이란 주제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그리고 실제로 주제가 그렇다고 한다.), 나는 오히려 앞서 말한 철학적 주제에 더 주목을 하였다.

'나비효과'가 생각난다. 중국 베이징에서의 작은 나비 날개짓이 다음날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일으킨다는... 나는 사실 그러한 소위 '카오스 이론'의 신봉자인데, 내가 무심결에 한 작은 행동이 큰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큰 결과'의 원인이 나의 그 '작은 행동'이라는 것을 나는 마지막까지 알 수 없다. 뭐, 내가 지금 이렇게 컴퓨터에 글을 남기고 있는 일이 십억년동안 돌고 돌아 지구를 멸망시키는 원인이 될 지 알게 뭔가? 십억년이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세월이니까.

누군가 나타나 그 사실을 말해준다면? 지금 그런 글을 쓰는 것은 십억년 뒤에 지구를 망하게 하는 일이라고. 글쎄, 그래도 그냥 글을 계속 쓰지 않을까? 십억년이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세월이니까.

나 혼자 깊이 생각하고 있는 이 철학적 주제는 집어치우더라도 이 책은 재치와 글을 이끌어가는 힘이 장난이 아닌 작가들의 재미있는 SF소설이다. 열린책들에서 희귀 러시아 소설을 많이 찍어내던 80년대 말~90년대 초에 이 작가들의 다른 소설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를 '발간예정'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빨리 발간해 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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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녘 맹수들의 싸움
앙리 프레데릭 블랑 지음, 임희근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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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프랑스 소설들을 읽어보면 도대체 이 작가가 결론적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책들이 있다. 물론 그런 소설들은 그런 소설대로의 매력이 있다. 일단 고전 소설들과는 다른 신선함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또 독자들에게 적극적 독서의 여지를 많이 주는 것이니까.

하지만 현대 프랑스 작가 앙리 프레데릭 블랑의 '저물녘 맹수들의 싸움'은 요즘의 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매우 명료하게 드러나는 소설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주인공 여자의 대사를 통해 상당히 직접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이런 형식은 사실 현대 다른 소설들에 비해 좀 촌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처음 시작은 매우 흥미롭다. 속물적인 광고 회사 직원(모든 영화나 소설에서 광고업이란 돈만 아는 속물근성을 나타내는데 단골 메뉴이다.) 샤를르는 아파트를 세놓는다는 광고를 보고 어느 아파트 건물로 찾아가게 된다. 그 동안에도 그의 머리 속은 '집세 협상'에 관련된 속물적인 생각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중,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고장나게 되고, 그는 4층과 5층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멈춘 채로 갖혀버리는 꼴이 되고 만다. 샤를르는 도움을 청하지만 그때 나타난 집주인 여자는 도대체 그를 구해 줄 생각이 없다. 샤를르는 이 책이 진행되는 20일 동안 엘리베이터에 갖힌 채로 엘리베이터의 틈을 통해 집주인 여자와 결론없는 대화만을 계속할 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엘리베이터에 갖힌 이후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게 된 남자.' 샤를르는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해 보지만 엘리베이터에서 탈출할 수 없다.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의 연출은 하나의 환상소설 같기도 하다. 이런 환상적 상황의 전개와 함께, 집주인 여자의 설교가 계속되는데 그녀의 설교는 단연 그의 속물 근성과 그를 그렇게 만든 현대 사회를 한탄하는 것이다. 이는 이 작가의 다른 소설 '잠의 제국'을 통해서도 다시 나타나는 주제로, 이를 통해 작가의 서구 현대 사회(-물론 우리네 현대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에 대한 비판의식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현대인들의 물신주의와 불필요하게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을 당시 나 역시 그러한 사회 행태에 지쳐 있었기 때문에 소설의 스토리나 형식면의 미숙함과는 관계없이 읽는 동안 상당히 마음이 편안해졌다. 뭐, 집주인 여자의 노골적인 설교가 약간 민망하고 결말 부분이 좀 의외이긴 했지만 어째든 읽는 동안 상당히 흥미롭고 마음을 달래주었던 소설이었으니 성공적인 독서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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