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Mr. Know 세계문학 33
A.스뜨루가쯔키 외 지음 / 열린책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십억년이라니 얼마나 긴 세월인가?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십억년 뒤에 지구를 멸망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만약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반응은 어떨까? 상당히 철학적일 수도 있는 주제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철학소설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책의 편집도 시원시원하고 내용 역시 막힘 없이 술술 읽힌다. 뒷 내용이 계속 궁금해 지면서...

대충 분류는 SF소설이지만,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는 SF는 아니고, 일상 속의 SF라 하겠다. 내용은 도대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계속 자신의 연구를 저지 당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이다. 러시아 소설이니 만큼 '학문의 정치적 검열'이란 주제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그리고 실제로 주제가 그렇다고 한다.), 나는 오히려 앞서 말한 철학적 주제에 더 주목을 하였다.

'나비효과'가 생각난다. 중국 베이징에서의 작은 나비 날개짓이 다음날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일으킨다는... 나는 사실 그러한 소위 '카오스 이론'의 신봉자인데, 내가 무심결에 한 작은 행동이 큰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큰 결과'의 원인이 나의 그 '작은 행동'이라는 것을 나는 마지막까지 알 수 없다. 뭐, 내가 지금 이렇게 컴퓨터에 글을 남기고 있는 일이 십억년동안 돌고 돌아 지구를 멸망시키는 원인이 될 지 알게 뭔가? 십억년이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세월이니까.

누군가 나타나 그 사실을 말해준다면? 지금 그런 글을 쓰는 것은 십억년 뒤에 지구를 망하게 하는 일이라고. 글쎄, 그래도 그냥 글을 계속 쓰지 않을까? 십억년이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세월이니까.

나 혼자 깊이 생각하고 있는 이 철학적 주제는 집어치우더라도 이 책은 재치와 글을 이끌어가는 힘이 장난이 아닌 작가들의 재미있는 SF소설이다. 열린책들에서 희귀 러시아 소설을 많이 찍어내던 80년대 말~90년대 초에 이 작가들의 다른 소설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를 '발간예정'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빨리 발간해 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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