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이스라엘
랄프 쇤만 지음, 이광조 옮김 / 미세기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시오니즘....

 

.오.니.즘.

이 짤막한 말장난 아래 탄생된 극악 무도한, 마치 악마의 사주라도 받은 듯한 시오니스트들의 팔레스타인 정복기는 '잔인하다'라는 말 조차 무색하게 만든다. 누가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했던가? 누가 인간을 지구상의 가장 고결한 생물체라 했던가....인간의 잔인성은 냉혈동물의 그것보다 훨씬 무서운 요소다. 그것은 '잔인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깊이 깨닫고 난 후에 치러지는 의식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를 탈출한 유태인들은 시오니즘을 국가 건설의 토대로 삼고 그들이 당한 수모를 고스란히 뱉어냈다. 그것이 복수가 되었건, 약속된 땅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되었건 간에 이 모든 일련의 행위가 무조건 적인 폭행이라는 수단 아래서 자행되었다는 점에서 식민주의와는 또 다른 비난성이 엿보인다. 그들의 목표는 단순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착취와 약탈이 아닌, 분산, 해체, 혹은 완벽히 씨를 말리는 학살을 통해 제거해 버리는 데 주 목적이 있었다. 때문에 폭행과 폭력은 공식 정책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의식 속에는 외부의 무력은 필수적이라는 강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잘못된 믿음의 정당성 아래 갖은 고문과 비인간적인 처벌이 가해졌다. 고문의 내용은 실로 끔찍하기만 하다. 구타와 감금은 어쩌면 그들에겐 고문의 딱지를 붙이기조차 힘든, 그저 일상의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책 속에 제시된 예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아버지와 딸의 고문 현장이었다. 그들은 남자든 여자든 주로 성기(性器)고문을 자행했는데, 남자들에게는 성기에 볼펜 심을 쑤셔 넣거나 고환 사이에 구슬을 넣고 쥐어 짜는 형식의 고문이 가해졌다. 여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딸의 질 속으로 커다란 막대기가 쑤셔 들어간다. 그것도 모자라 아버지에게 딸을 강제 성폭행 하도록 강요한다. 개, 돼지만도 못한 행위라고 할 밖에 달리 적절한 어휘가 떠오르지 않는다.

시오니즘은 어떠한 사상도 국가를 지탱하는 버팀목도 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정상세포에 반발하는 무분별한 암세포와도 같이 미친 분자일 뿐이다. 그렇다고 미친 국수주의라 표현할 수도 없다. 시오니스트들 사이에도 배반이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암세포의 또 다른 암세포이다. 그들은 나치와의 협력도 주저하지 않으며, 다윈의 진화설에라도 감동 받은 양 젊고 탁월한 시오니스트들의 구출에만 목매달았다. 헝가리의 유태인들은 대부분 희생되어야 했고, 그렇게 내버려 졌다. 맹목적인 국수주의도 민족주의도 그 무엇도 아니다. 대체 무엇으로 표현해야 한단 말인가.

학살의 현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레바논에 정착한 팔레스타인들에게 까지 손을 뻗어 경제적 파괴는 물론이요, 체포(자의적 판단에 의해 개인을 구금할 권리?)와 자백이 강요되었다. 피는 피로 물들어 갔고, 그 이면에는 이미 제국주의의 달콤함을 맛 본 강대국들의 야욕이 숨어 있었다. 미국의 지원정책은 중동 지역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속내를 어김없이 들어냈고, 시오니즘의 팽창과 함께 미국 세계 지배 전략의 핵심요소도 붉어져 갔다.

 

미쳤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이 모든 일련의 사태들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고스란히 장식하고 있다. 무엇을 위한 행진곡인지, 이제는 목적도 방향도 잃은 듯 보인다. 어쩌면 작은 불씨 하나로 시작되었을지 모를 잔인한 비극의 굴레가 극단적 민족주의와 함께 강대국들의 야욕과 함께 얽히고 설켜 무고한 난민의 희생과 또 다른 대량학살의 장을 부추기고 있다. 대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 것들인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 모든 인간의 잔인성은 대체 무엇으로부터 기인되는 코미디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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