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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문학입문
윤오영 지음 / 태학사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명작은 서로 통한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진리를 관통하면 그 내용은 같다는 선조들의 말씀은 정말 사실인것같다. 바로 이런 생각을, 수필문학입문을 읽으며, 언젠가 읽었던 손자병법을 떠올리며 하게 된다.
손자병법하면 제일 처음 떠오르는 말은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는 말일 것이다. 헛된 만용 부리지 말고 자신의 실력을 냉정하게 파악한 후 행동해야 패배하지 않는다는, 객기와 만용과는 아주 거리가 먼 경구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치옹도 '삶이 곧 수필'이라고 역설하며,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해선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한다. 자신의 개성이 드러나게 마련인 수필에서, 아무리 대상에 대한 묘사가 훌륭하다 해도 글은 자기 삶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까닭이다.
요즘 한겨레21에서 연재되고 있는 바와 같이, 손무는 전쟁 이전에 국력의 신장을 도모하라고 누차에 걸쳐서 가르쳤다. 되지도 않을 상대와 싸움을 벌이는 것이야말로 손무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이었다. 치옹도 마찬가지다. '흔히 보는 바와 같이 말초적인 감각에서 오는 재치나, 풍세적인 고십에 가까운 촌평류의 글을 쓰기 시작하면 대성은 이미 기대할 수 없다.'며 철저한 학습을 강조한다. 짧은 글보다 긴 글부터, 그리고 풍경 묘사부터 시작하라는 치옹의 가르침은 되새겨볼수록 값지다.
국력의 낭비만큼 손자가 싫어하는 것이 또 있으니 그것은 바로 병사들의 목숨을 낭비하는 것이다. 전시에는 병사일지 몰라도 전쟁이 끝나면 국력의 뒷받침이 될 장정들의 목숨을 헛되이 낭비해서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기에 그는 심지어 적병의 목숨마저 아낄 수 있는대로 아끼라고 한다. 그리고 치옹은 언어를 아끼라고 한다. 쓸데없은 군살들이 더덕더덕 붙어있는 글을 읽을때 느껴지는 그 짜증스러움을 치옹은 가감없이 표출한다. 그럴 공간에 알찬 내용을 하나라도 더 넣어야 독자의 서정을 환기시킬 수 있는 것이다. 흔히들 '만연체'니 어쩌니 하는 염상섭의 글도 실은 허투루 언어를 사용한 적은 없다는 사실은 새로운 충격이다.
비록 이 글이 수필문학입문이라는 제목을 달고있기는 하지만, 그 가르침은 수필문학 뿐 아니라 우리 국문학 전체에 새로운 시사점을 던져준다. 쉽게 쓴 소설과 시가 판치고, 특히 서점 비소설 코너에 가면 신변잡기류의 잡문이 악취를 풍기는 현 세태에, 나 말고 다른 독자 여러분들도 이 책 한번 읽어보시고 참다운 문장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수필에 있어서 백전불패의 길이 바로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