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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인생을 위하여
이충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5월
평점 :
'이 책은 잡지에 연재된 글과 그 밖의 것들을 모은 것'이라는 말로 이 책을 설명하는 것은 심각하게 잘못되었을 뿐 아니라 어리석은 행동이다. 신문이나 잡지 등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 책을 내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그 개별적인 글들이, 그 자체가 마치 하나의 잡지처럼 읽히는 글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고 싶은게 너무나 많은 인생을 위하여》의 저자인 이충걸이 유일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내용들은, 일관성은 있지만 체계적이지 않고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긴 하지만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소비의 현장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매체를 만들어온 사람답게, 저자는 소비의 안팎을 전부 해집어놓을 듯한 태세로 종횡무진 발걸음을 이어간다. 그것은 쇼핑하는 장소, 백화점이나 중고시장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쇼핑의 대상, 자동차에서 전동 드릴까지 이어지며, 궁극적으로는 쇼핑하는 사람, 물건 하나를 구입할때마다 쾌감과 관능과 죄의식을 동시에 느끼는 그 누군가에게로 향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말미에 실린 세 명의 디자이너와의 인터뷰는, 체계는 없지만 일관성만큼은 확실한 이 책의 마무리로 매우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쉽게 훌훌 읽어넘길 수는 없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에 실린 글 하나 하나를 읽는 것은 마치 잡지 한 권을 읽는 것과도 같은 감각적 포화 상태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것을 '이충걸식 글쓰기'라는 편리한 단어 하나에 우겨넣어버린 후 치워버리지만, 이것은 실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소비의 현란함을 논하는 글쓰기에서, 저자처럼 온갖 명사를 끌어내어, 그들에게 가장 알맞은 형용사를 입혀놓은 후, 그 모든 언어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걷게 할 수 있으니, 독자로는 더 바랄 게 없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잡지식 글쓰기'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을 구성하는 방식의 글쓰기이다. 저자는 '잡지에 싣기 좋은 글'을 쓰지 않는다. 대신 그 자체가 잡지가 되어버리는 그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책의 주제와 내용을 정리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 그것은 마치 벤야민의 《베를린의 어린 시절》의 주제가 뭔지 논하는 것과도 같다. '주제가 뭐지?' '요점이 뭐지?' 라는 강박을 놓아버려야 한다. 이 책은, 다소 느긋한 마음으로, 마치 평일 한낮에 대형 서점에서 책 고르기를 하듯 읽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의외로 본문에는 '북 쇼핑'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야 저자인 이충걸이 열어밝히고 있는 한국어 산문 미학의 지점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충걸의 글을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이런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딘지 모르게 안심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쇼핑에 '대한' 책이 아니다. 그냥 이 책이 쇼핑 그 자체이다. 잡지에 대해 논하는 꼭지가 몇 개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자가 다루는 주제가 아니라, 그 주제가 다루어지는 방식이다. 쇼핑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국어의 경계와 그 확장에 대해 탐색해보기 위해서라면 이 책을 읽어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p.s. 책 표지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종이를 왜 그렇게 무거운 걸 사용했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소비 문화의 가벼움'을 논하는 책이 한없이 무겁게만 느껴질 때의 역설이란. 단행본도 결국 하나의 매체라는 점에서, 이 지점은 다소 아쉽다. 내지 디자인은 평가가 오갈 수 있겠는데, 내 취향은 아니지만 독자 친화적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