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마치 한 편의 발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경쾌한 터치가 도드라지는 이 소설을 나는 설날 연휴가 시작하기 전날인 그저께부터 오늘 아침까지 약 사흘에 걸쳐서 다 읽었다. '이것은 나름대로 회심의 상품입니다'라고 말하는 듯, 잘 만들어진 표지와 훌훌 넘어가는 내지가 우선 마음에 들었다. 물건만 놓고 보더라도 책값이 아깝지는 않다.

인도의 현실을 뭄바이의 슬럼에서 생활하는 한 웨이터의 눈을 통해 두루 짚어보기 위해, 저자는 다소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의 이력을 다채롭게 꾸며낸다. 가톨릭 신부의 손에서 자라나, 힌두교 신자와 이슬람교 신자의 조언을 동시에 받아들여 세 가지 종교색을 전부 띤 이름을 가지게 된 그는, 한 사람이 평생에 다 겪을 수 없는 일들을 서른 살도 되기 전에 모두 경험한다. 저자도 쓰다가 헷갈렸는지, 아니면 다소 뒤죽박죽 뒤섞인 플롯으로 일종의 '혼종성'을 구현하고 싶었는지, 주인공의 인생사에는 다소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고 시간 순서도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면이 없잖아 있다.

주인공의 캐릭터가, 이런 류의 '활극'에 가장 적합한 '백지'라는 점도 우선 단점으로 기록해둘 만하다. 이 책은 말하자면 '람 모하마드 토마스'와 함께 떠나는 현대 인도 유람에 가깝다. 이 작품의 주인공 람은 캐릭터가 아니라 사파리용 관람차인 것이다. 전형적으로 몰상식하거나 방황하거나 타락하는 캐릭터 속에서, 람 또한 전형적으로 올바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주인공 람의 시선은 상식적이지만, '살인은 무조건 안 돼'라는 식으로까지 상식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고아원에서 자라고 슬럼에서 생활하는 사람다운 최소한의 면모는 갖추고 있다. 죽어 마땅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난간에서 떠밀고도, 서구식의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는 모습이 그렇다.

작품의 기본적인 성격이 이러하다보니, 독자로서 내가 갖는 관심은 소설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사회학적인 것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으며 줄곧 마이크 데이비스의 <슬럼, 지구를 뒤덮다>를 떠올리고 있었다. 마이크 데이비스가 논픽션으로 묘사한 현실을, <Q & A>의 저자는 픽션의 형태로 고스란히 한 번 더 그려낸다. 정부에 의해 그 존재가 애초에 인정되지 않는 슬럼에서의 생활 말이다. 화장실을 한 번 이용하기 위해 줄을 서야 하고, 골목길을 걷다가 똥물을 뒤집어쓰는 일도 없지 않으며, 살인과 강도와 강간이 빈번하지만 그 누구도 경찰의 도움 따위 기대하지 않는 그런 삶 속에 처한 수억의 사람들. 하지만 작품의 본래 성격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저자는 마이크 데이비스처럼 진지한 성찰과 운동을 촉구하거나 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단점이 아니다. 적어도 외국인인 내가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로서 이 작품이 갖는 미덕이 거기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발리우드 영화처럼 현란하고, 발리우드 영화처럼 정신없으며, 발리우드 영화처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지금 나는 내가 인도인이 아니니까 그정도면 만족한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데, 얼핏 생각해보면 이것은 너무 편한 입장이 아닌가 싶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어차피 인도인이 아닌데 '이런 시각은 사회 변화에 도움이 되지 않아' 따위 발상으로 괜히 분노하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그러니 이쯤해서 넘어가고,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소설인 <퀴즈쇼>에 대해 잠깐 언급이나 해보자.

당연히 김영하의 <퀴즈쇼>를 연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 속에서 뭔가 인생이 안 풀리는 청춘이 주인공이고, 사회상을 두루두루 짚어내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퀴즈쇼를 소재로 삼고 있으니 말이다. 기왕에 영화의 비유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전반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심지어는 결말도 그렇고, <Q & A>가 발리우드 영화라면 <퀴즈쇼>는 한국 영화와도 같다. 두 작품 모두 그 소설이 태어나게 된 사회의 요즘 모습을 나름대로 잘 포착하고 있으니,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김영하의 <퀴즈쇼>도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람 모하마드 토마스가 뭄바이의 슬럼 집단주택에 살 때, <퀴즈쇼>의 이민수는 고시원에서 상한 고구마 먹고 채한 '옆방녀'의 등을 두드려준다. 전반적인 것을 접어두더라도, 디테일만으로도 두 작품은 비교해 볼 가치가 있다(만 지금 그런 글을 쓸 생각은 별로 없다).

<Q & A>는 현대 인도 사회에 대한 일종의 파노라마를 제공한다. 그것이 주마간산이라고 해서 우리가 이 책의 가치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한국에 사는 독자인 우리는 그저, 점점 평평해지면서 작아지는 세계의 가장자리 바깥으로 떨어지고 있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 정도를 기억하면 된다. 나 자신도 아차하는 순간 그런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것까지 굳이 떠올리지는 말기로 하자. 그런 '통찰'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퀴즈쇼>를 펼쳐보는 편이 더 나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이 소설은 재미있고, 부담 없이 훌훌 넘길 수 있도록 잘 쓰여진 작품임에 분명하다. 여기서 묘사된 대도시 슬럼의 생활상을 좀 더 리얼하게, 혹은 적나라하게 알고 싶다면 마이크 데이비스의 <슬럼, 지구를 뒤덮다>를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하면서 대강대강 생각나는 대로 두들기는 리뷰를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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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 eun 2009-06-16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slumdog millionaire 영화도 강추합니다... Danny Boyle 스타일..무지 재밌는데요 인도 친구들중에는 poverty porn 이라고 싫어하기도 하던데, 솔직히 한국에서 수많은 울고 짜는 영화나 드라마를 봐왔던 저로서는 별 저항감 없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