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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부인은 지나간 늦가을 최치수가 장암선생의 병문안을 위해 떠나던 날 자신이 일을 그르쳤음을 깨닫는다. 치수 없는 틈을 타서 서둘렀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으려니와 윤씨부인은 그들 불륜의 남녀를 위해 피신처까지 마련해주질 못했다. 못했다기보다 안 했었는지도 모른다. 치수도 자식이며 환이도 자식이다. 서로가 다 불운한 형제는 윤씨부인에게는 무서운 고문의 도구요 끊지 못할 혈육이요 가슴에 사무치게 사랑하는 아들이다. 십 년 이십 년 세월 동안 윤씨부인은 저울의 추였으며 어느 편에도 기울 수 없는 양켠 먼 거리에 두 아들은 존재하고 있었다. 치수를 가까이하지 못한 것은 물론 죄의식 때문이다. 그보다 젖꼭지 한 번 물리지 않고 버린 자식에 대한 연민 탓이기도 해었다. 환이를 돌보지 못한 일 역시 치수에 대한 의무와 애정 탓이 아니었던가. 결국 십 년 이십 년 세월 동안 윤씨부인은 어느 편에도 기울 수 없는 저울의 추가 되어 살아왔었다. 치수의 눈을 피하여 환이를 도망가게 하면서도 피신처까지는 마련치 못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뻗쳐줄 어미의 손길을 결박당한 채 감내해온 긴 세월이 윤씨는 아직도 많이 남았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1부 1권 9장, 과거의 거울에 비친 풍경)

 

어리석은 삼수. 그가 아무리 악독하다 한들 악의 생리를 몰랐다면 어리석었다 할밖에 없다. 악은 악을 기피하는 법이다. 악의 생리를 알기 때문이다. 언제나 남을 해칠 함정을 파놓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궁극에 가서 악은 삼수가 지닌 그와 같은 어리석음을 반드시 지니고 있다. 왜냐, 악이란 정신적 욕망에서든 물질적 욕망에서든 간에 그릇된 정열이어서 우둔할밖에 없고 찢어발길 수 있는 허위의 의상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토지 1부 3권 15장, '악(惡)은 악(惡)을 기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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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네 마이어의 인간관계는 바로 이런 오해들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남이 자기를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겁니다. 이제 우리의 기억을 한번 더듬어 봅시다. 이레네 마이어는 조부모 손에서 자라면서 일찌감치 손아래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그 사람입니다.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도, 자신이 뭘 원하는지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없는 것을 괴로워하면서 이레네는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어릴 때 엄마와 아빠가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일이 거듭되자 이레네는 부모가 자기를 싫어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기는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서 언제나 혼자 내버려둔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성장한 후의 남녀 관계도 이러한 그녀의 생각을 더욱 굳혀주는 것들뿐이었습니다. 걸핏하면 애인이 떠나버려서, 이런 경험을 자기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증거라고 해석했습니다. 남자들이 떠난 근본적인 원인이 자신의 외모나 몸매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몸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겁니다. 밥을 먹지 않는 것도 이 몸을 자기 마음대로 부리려는 시도였습니다. 아주 날씬하고 예뻐지면 절대 자기를 버리지 않을 남자를 발견하게 될 거라고 믿었지요. 새로운 상대를 만날 때마다 그녀는 매력적이고 멋진 여자가 되기 위해, 상대의 마음에 꼭 들기 위해 애썼습니다. 나름대로 남자가 이상적인 배우자에게 바랄 만한 것은 모두 다 해보았지만, 사랑한다는 분명한 표시라고 느낄 만한 것을 남자한테서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녀가 남자의 태도를 평가하는 기준은 단 하나, 그가 자기를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그가 하는 일이든 하다 중단한 일이든 모두, 그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관점에서 해석했습니다.

최근 애인과도 역시 이런 태도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실 토마스와의 관계는 이레네가 아주 편안하게 느끼는, 좋은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토마스가 그녀를 모른 척하거나 그녀의 기대를 저버릴 때마다 이레네는 심한 불안에 빠졌지요. 그러면 즉시, 토마스가 이제 자기에게 관심이 없으며 자기는 이젠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그가 몇 달 동안 여행을 떠났을 때, 두 사람은 겨우 전화로만 연락을 취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레네는 토마스에게 자기를 그리워한다는, 떨어져 있어 그녀 못지 않게 슬프다는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아주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토마스가 자기 없이도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그녀는 결국, 토마스는 자기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자기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결론을내 렸습니다.  그리고 나니 불안해졌습니다. 그가 자기와 멀어져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관계를 끝내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그래서 전화를 할 때마다 그의 목소리를 아주 주의 깊에 신경을 써서 들었습니다. 아직도 자기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지 살폈던 것이지요. 그녀가 전화한 것을 전혀 반가워하는 눈치가 아니든가, 통화할 시간이 없다고 하면, 이레네는 당장 그것을 자기에 대한 거부로 받아들여서 마음이 상했고, 그래서 그에게 또 억지를 부리게 되었습니다. 전화 통화가 다툼이나 긴장된 분위기로 막을 내리는 경우가 잦아졌고, 이것은 버림받는 데 대한 그녀의 두려움을 더욱 부추겼습니다. 두 사람이 헤어질 가능성 또한 실제로 이에 비례하여 커진 것은 물론입니다.

근본 문제는 자기가 마음에 상처를 받은 데 있으며, 그 이유는 그가 자기를 그리워하는 정도가 자기가 그를 생각하는 것에 미치지 않았고, 그가 자신을 함부로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나자, 이레네는 토마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다른 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다친 데서 오는 분노에 사로잡혀 있는 대신 토마스에게, 그가 없어서 얼마나 쓸쓸했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가 하고 있는 일에 관심을 보이면서,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자기 마음의 상처로 인해 모든 것을 거부로 해석하는 대신, 그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다시 느끼고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러나 토마스가 돌아왔을 때 이레네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쳤습니다. 그가 무척 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들의 재회를 무척 아름답게 상상했습니다. 한데 그는 예상보다 늦게 돌아왔습니다. 몹시 실망한 이레네는 그가 자기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순간 화가 폭발하면서 그를 비난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나를 이렇게 한없이 기다리게 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하고 말입니다.

마음이 아파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자신이 상대의 배려를 전혀 받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함부로 취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의 아픈 상처가 다시 되살아나면서 그 옛날의 온갖 느낌들이 몰려왔습니다. 혼자 남겨져 공포에 떨던 일, 끝없는 허공으로 떨어져가던 느낌. 바로 그 순간 이레네는 토마스와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그와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대신, 노여움과 경멸이 가슴에 넘쳐났습니다. 어찌나 분노했는지 다시는 보고 싶지 조차 않았습니다. 그가 돌아온 데 대한 기쁨과 그를 향한 사랑은 더 이상 느낄 수 없었고, 마음을 다친 아픔만 그녀를 뒤덮었습니다. 마음상함에 너무도 강력하게 사로잡힌 나머지, 그녀는 차분히 생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아마도 차분히 생각할 수 있었더라면 홀로 남겨진 옛날 그 어린아이의 눈으로가 아니라 이제 다 자란 어른의 눈으로 이 상황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토마스는 또 어떻게 느꼈을까요? 이레네가 그렇게 버럭 성을 내면서 자기를 물리치는 바람에 그는 그대로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 역시 이레네를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면서, 명랑하고 사랑스럽게 그녀가 자기에게 다가와 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죄책감이라곤 전혀 느끼지 않았습니다. 늦게 돌아온 것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 데다가, 일단 왔으면 됐지, 언제 왔느냐가 도대체 뭐 그리 중요한가 싶었던 것이지요. 오히려 이레네가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를 향한 자신의 애정을 우습게 안다고 느끼면서, 등을 돌려버렸습니다. 이미 그녀가 전화로 원망 섞인 말을 할 때부터 어안이 벙벙하고 기분이 상했던 토마스였습니다. 항상 자기 마음에 꼭 맞게 대해 달라는 그녀와 암묵적인 요구를 들어줄 수도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녀의 힐책과 의심은 그로 하여금 관계에서 완전히 뒷걸음질치게 만들었습니다. 도덕적 압박감이 인격이 깍인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자기가 아주 모범적으로 행동해야만 그녀에게 사랑 받을 수 있다는 듯이 말입니다.

그가 이런 식의 관계를 처음 접한 것은 어머니에게서 였습니다. 어머니는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항상 "착한 내 아들아, 내가 바라는 대로만 하렴. 그럼 나도 너를 예뻐하마" 하는 식으로 대했습니다. 그가 혼자서 뭔가 좀 다른 일을 하면 어머니는 그를 외면하는 것으로 벌을 주고 등을 돌리기 일쑤였습니다. 아들이 애써서 마음을 풀어준 다음에야 어머니는 다시 아들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렇게 감정적 혹사를 당하고 나서 어른이 되자, 토마스는 어느 관계에서나 항상 이 착취의 낌새를 지레짐작하게끔 되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고 나면 으레 혼날까 봐 겁이 났습니다. 이레네에게서 그는 예전의 어머니 같은, 자기를 조종하려는 여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레네는 이런 일들을 알 리가 없었지요. 그녀가 원하는 건 오직 그가 자기를 사랑해서 다시는 떠나지 않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요구와 감정으로 자신이 그를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지요. 반면 토마스는 자신이 남의 감시를 받을까 봐 지레 겁을 내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고, 상대가 항상 자기를 의심하며서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여기면서 저항부터 했던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자기의 인격과 상대에게 차지하는 자신의 비중이 손상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사랑과 애정을 받고 싶은 욕구는 두 사람 중 어느 누구에게도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이레네는 상대가 늦게 돌아오자 그가 자기를 떠날 듯한 두려움을 느꼈고, 토마스는 애인의 불평을 듣고서 그녀가 멋대로 자기를 지배할까 봐 겁을 냈던 것이지요. 두 사람이 각각 상처받는 주제들이 서로 이가 잘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한번 상처를 입으면 양쪽 다 격렬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렇게 일이 묘하게 얽혀 있는 경우, 각자가 자신의 욕구와 느낌에 대한 책임을 떠맡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토마스의 처지에서는 자신의 두려움을 이레네에게 투사하는 것부터 멈추어야 합니다. 자신의 고유 영역을 그녀가 침범하려 한다고 믿는 대신에, 관계 속에서도 독자성을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뿐 아니라, 혹시나 가까운 사람이 생기더라도 자기 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 자유로움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론 이레네가 원하는 대로만 맞추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그에 맞서 세울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고요. 이레네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절망감이 토마스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대신 누가 자기를 떠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잘 다잡아서, 자기 자신을 위해 걱정하는 마음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마음상함을 피하고 싶다면 결국 두 사람 다, 상대방의 태도가 자기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생각부터 그만두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 대신, 자기태도에 대해서는 확실히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오해나 의심 등을 상대에게 터놓고 얘기하는 것도 일이 더 꼬이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지 못하면 헤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기 몫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 이 문제는 미해결인 채로 남을테니까요.  


-따귀 맞은 영혼 154~160p, 베르벨 바르데츠키,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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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오래간만에 거리를 나와 보니
나의 눈을 흡수하는 모든 물건
그 중에도
빈 사무실에 놓인 무심한
집물 이것저것

누가 찾아오지나 않을까 망설이면서
앉아있는 마음
여기는 도회의 중심지
고개를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이
태연하다
일은 나를 부르는 듯이
내가 일 우에 앉아있는 듯이
그러나 필경 내가 일을 끌고 가는 것이다
일을 끌고 가는 것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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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으로 관계가 멀어지는 원인은 이전에 너무나 가까이 '융합'하여 지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의 밑바닥에는, 두 사람의 의견이 똑같은 것이 가장 좋은관계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누어질 수 없는 단위를 뜻하는 이 융합 상태는 퇴짜나 비판, 거절로 인해 깨어집니다. 특히 자존감이 약한 사람들이 이 융합 상태를 추구하는 편인데, 그들은 외부의 확증을 받아서 그 힘으로 자기의 자존감을 확립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확증이란 남들의 호불호가 자기와 같음을 뜻합니다. 비판, 이견, 거절, 그 밖에 자신을 남과 갈라놓는 것은 모두 남과 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환상을 깨어버림으로써 그에게 현격한 거리감을 맛보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존감이 약한 사람들이 마음을 다칠 때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입니다. 단순히 상대가 자기를 거부한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퇴짜를 맞음으로써 자신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맛보게 되는 것이 실은 더 큰 원인인 것입니다.


.....


내 세미나에 참석했던 한 부인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마음이 상할 때면 "나는 지금 몇 살로 느끼고 있지?"하고 물어본다고요. 그러면 곧장 마음속의 아픈 곳, 마음상함을 일으킨 배경이 되었던 불안의 뿌리에 가 닿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처음 마음을 다쳤을 때의 나이, 그 나이가 바로 정신적으로는 현재의 나이입니다. 따라서 상담치료에서는 최초로 정신적 타격을 입은 때가 언제였는지 알아내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됩니다. 그래야 내담자로 하여금 그 다음에 오는 부차적인 마음상함이 무엇 때문인지를 확실하게 알게 할 수 있으니까요.


....


"접촉이라는 진행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새롭고 창조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기꺼이 경험하고 놀라운 일들에 대해 마음을 여는 동시에, 집착하지 않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아라는 것은 완성품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출생과 죽음 사이에서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화하는 것이니까요"


...



유대감을 표현하는행동 양식은 그 내용에 따라 다음의 네 가지로 측정해볼 수 있습니다.


1. 헤어짐에 대한 불안


2. 가까워짐에 대한 불안


3. 믿을 만한 인간 관계의 결여


4. 독립(간섭받지 않기)에 대한 욕구


...


독립에 대한 지나친 희구는 결과적으로 의존 상태를 잘 견디지 못하고 남과의 관계에서 책임지기를 거부하는 현상을 보이게 합니다.


...


한편,이 유대감에 대한 확신이 마음의 상처 때문에 줄어드는 경우도 있는데, 정서적 착취라고 설명했던 경우에서 이것이 잘 나타납니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고 가깝게 느꼈던 사람에게 신뢰를 주었다가 배반당한 아이는 자신의 느낌과 지각을 불신하게 됩니다. 따라서 자신의 인격과 요구가 이해심 있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기는커녕 거꾸로 부모의 욕구를 채워주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그 결과 인간 사이의 유대란 것을 믿을 수 없게 되어 다른 사람의 반응에 얽매이게 되지요. 결국 마음을 다칠 가능성이 무척 높아집니다.


...


아래에서나는 여러분과 함께 어떤 실습을 해보려고 합니다. 마음상함을 겪는 일이 육체적 차원에서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 또 그런 현상이 과연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여러분이 직접 경험해보게 하는 것이 이 연습의 목적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이 마음을 다치는 상황을 상상해보십시오. 거부든 비판이든, 누군가가 한 말이든, 아니면 그저 마음에 거슬리는 어떤 상황이든, 어떤 것이어도 좋습니다. 방금 일어난 일이어도 괜찮고 아주 오래 전 일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그 일 자체에 정신을 집중해보십시오. 그게 언제였습니까? 그때 당신은 몇 살이었고, 어디 있었나요?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은 누구였나요? 그 일이 일어났던 당시, 다른 사람들도 그 자리에 있었나요? 그 장면은 어떻게 끝이 났나요? 그 일이 있은 후 당신 마음을 상하게 한 사람과 당신의 관계는 어떻게 변했나요? 당신의 상황을 되도록 생생하게 눈 앞에 그려보십시오. 그래야 당신의 상처난 마음을 다시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의 몸을 주의해서 살펴보십시오. 당신은 지금 어떻게 앉아 있습니까? 편안한 자세입니까? 아니면 잔뜩 긴장해 있습니까? 빳빳하게 당겨지는 것은 어느 근육이고, 아픈 부위는 어디입니까? 꽉 힘을 주고 있는 곳은 몸의 어느 부위입니까? 숨쉬기는 어떻습니까? 얕고 밭은 숨이니까? 아니면 깊은 숨입니까? 옛날의 마음아팠던 일을 기억해낼 당신의 몸이 어덯게 반응하는지 느길 수 있습니까? 몸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요. 이 기억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몸의반응을 잘 관찰해보십시오.


이제 이 체험을 집약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몸이지금 취하고 있는 자세를 강화시켜보십시오. 이로 인해 아주 크게 영향을 방아서 우리가 '힘을 잔뜩 주는' 곳은 몸의 어떤 기관, 어느 근육이니까? 팔다리 어느 부분입니까? 마음이 언잖을 때 몸은 아주 여러가지 방법으로 반응합니다. 숨이 갑자기 느려지거나 멈출 때가 있는데, 이 경우에는 가슴이 압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등이나 뒷목 또는 사지가 뻣뻣해지거나 어깨가 치켜 올라가기도 합니다. 위가 사방에서 조여들거나 위벽이 떨릴 때도 있는데,  이는 주로 불안할 때 생기는 현상입니다. 시선이 경직되고 심장에 통증이 오며, 가슴 부위가 땡깁니다. 목구멍에 덩어리가 하나 결려 있는 건, 슬픔이나 화를 나타냅니다.


 몸의 경직 상태나 당신의느낌을 분명히 감지한 다음에는, 다시몸을 편하게 하십시오.아까와 지금의 상태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면서, 숨쉬기에 주의를 집중해 보십시오. 몸의 자세를 변화시키는 데 따라 당신의 느낌도 변해가는 것을 눈으로 보듯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 실험을 통해서, 당신이 마음에 상처를 받을 대 몸의 어느 부위가 어떤 식으로 그것을 표현하는지 체험했으리라 믿습니다. 마음상함이 표출되는 방식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경우에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즉 몸 전체가 퍼뜩 놀라면서 방어와 보호 준비를 갖춘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가 아무 흔적 없이 우리 의 몸과 마음을 스쳐 지나가는 법은 없습니다. 몸 어디가 뻣뻣해지거나 아니면 정말 병이 되어서라도 마음상함은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물질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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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힐리즘 nihillism
허무주의라고도 한다. 종래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온 생활상의 가치, 즉 이상이나 도덕규범이나 문화, 생활양식 등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견해. 이 말은 라틴어'nihil'(無)에서 유래했는데, 18세기에서 19세기초의 신앙을 원리로 하는 철학자 야코비가 [피히테에게 보내는 편지](Brief an Fichte.1799)에서 사용하고 있고, 19세기 러시아의 작가 투르게네프(1818~83)의 작품 [아버지와 아들](1862)의 주인공 바자로프를 니힐리스트로 묘사한 것에서 이 말이 널리 보급되었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나 서유럽에서 오늘날까지 계속 유행되고 있는 니힐리즘의 의의와 러시아에서의 그 의의는 종래의 가치의 부정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그 역사적인 의미에서는 다르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서 유럽적인 니힐리즘은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로 진행하고 독점 자본가와 노동자 및 쁘띠 부르조아의 모순과 계급대립이 격화되고 유럽문명의 위기가 심화되는 시기를 역사적 배경으로 두드러지게 표출되어 온 것이다. 이 니힐리즘의 대표자로서는 니체를 들 수 있다. 그는, 니힐리즘이란 "최고의 제(諸)가치가 그 가치를 상실한 것, 목적이 없고 '무엇을 위해서'라는 물음에 답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종래 인정되어 온 가치가 변화의 시대에서는 유용하지 않는 환상일 수 밖에 없게 되었다고 단언하며, 이 환상은 기독교에서 기인(起因)한다고 보아 교회를 모두 부정했다. 그는 사회주의도 또한 기독교에서 말하는 가치의 영역안에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리하여 그는 한편에서는 붕괴된 가치속에서 무의미한 생을 살아가는 소극적인 니힐리즘에 대해서, 다른 한편에서는 환상적 가치를 분쇄하고 새로운 가치를 일으켜 세우는 능동적인 니힐리즘을 제시했다. 그는 '초인'이나 군주도덕'에 대한 설명은 이것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19세기 중엽의 키에르케고르도 이 사상의 대표자인데, 그의 주장이 주목받게 된 것은 19~20세기의 과도기였다. 니체는 기독교가 가르치는 가치를 부정하였지만,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시대의 병으로 규정하고, 이것은 가치있다고 여겨져온 교훈이나 사상, 생활방식에 대한 환멸에서 나오기 떄문에, 그러한 것의 부정을 기초로한 '참된 기독교'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현대는 실존주의는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하이데거는 니힐리즘이 종래의 형이상학, 즉 '존재'와 의미'의 분리에 있으며 그가 말하는 '실존'이라는 말에 그 극복이 있다고 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자 카뮈는 세계는 부조리(不條理)하다'라고 규정하면서 니힐리즘적인 색채를 강하게 띄었지만, 부조리한 삶을 영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이러한 모든 니힐리즘은 자본주의 사회가 야기시킨 위기의식에서 생겨났으며, 새로운 시대, 사회의 출현을 통해 극복하려고 하는 마르크스주의의 방향과는 달리, 공상적인 상태속으로 (키에르케고르, 야스퍼스), 또는 반동적 정치의 방향으로 (니체, 어느정도 하이데거) 사람들을 몰아 넣는다.

러시아의 니힐리즘은 19세기 50년대 말에서 60년대, 러시아 농노제가 위기에 봉착하고 혁명적 상황이 대두하던 시기에 주변계급의 지식인들(사제, 관리, 농민, 상인 출신)이 지녔던 민주주의적으로 미성숙된 계층의 정신적인 경향이었으며, 이 위기속에서 민주주의적인 사회계층의 사상으로 일단 정착됐다. 이것은 종래의 철학, 도덕, 생활양식의 부정을 포함한 그 시기의 독자적인 표명으로, 혁명적 민주주의 사상 형성의 초기 단계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사상적으로는 명확한 기초를 갖고 있지 못했지만, 귀족적·신분적 제도의 타파, 전체에 대한 저항으로서 진보적인 의의를 지녔고, 60~70년대 혁명적 민주주의 자의 투쟁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명확한 방향성을 갖지 못한 이 운동은 60년 이후 그 힘을 상실하여, 하나는 혁명적 민주주의자로,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와의 타협, 문화주의로, 급진주의로 되어 무정부주의에 접근함으로써 분해되었다. 또 60~70년대에는 반동파가 혁명운동을 니힐리즘이라고 공격하기도 했었다.

== 철학사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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