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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그대에게 -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초등학생, 중학생이었을 무렵에도 역시 한 학기에 한 번은 꼭 국어 교과서에 시가 나왔다. 그때는 암호와도 같은 시를 풀이해야 하였기에 시가 나올 때마다 짜증이 났고 왜 시를 쓰는지, 왜 시를 공부하는지 알 수 없었다. '굳이 저렇게 함축적으로 줄여야 하나?' 정도의 생각이 주를 이뤘던 것 같다. 중학교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한 국어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에 국어책을 파면서 시를 공부하기 시작하였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첫사랑을 시작하면서 드디어 시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다.
나처럼 시를 공부하기 시작한 사람이 대한민국 학생들 중에 몇이나 될까. 여전히 시를 즐겨 읽고 공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시의 세계로 들어오기 전, 시의 참 맛을 모르는 사람이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이 넘을 것이라고 난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수능을 위한 시를 접했으므로. 특히나 이공계 계열의 학생들에게 시는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수학이나 물리의 한 수식이 아니었을까한다. 그런 공대생들의 가슴을 울린 강의라니 믿을 수 없다가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의 내 솔직한 생각이었다.
강의처럼 책은 총 12강으로 구성되어있고 제재에 따라 구성되었는데 나는 다음과 같이 12강의 제재를 정리하였다. 1강 가난한 사랑, 2강 별, 3강 떠나가는 것, 4강 슬픔과 희망, 5강 그대 등 뒤의 사랑, 6강 기다림, 7강 잊어버린 노래(혹은 현실과의 타협), 8강 아버지, 9강 애절과 사랑의 그리움, 10강 인생의 허무함과 초월 , 11강 눈, 12강 시에 시비걸기. 어찌보면 1강과 5강, 9강이 비슷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같은 사랑이어도 참 다르다. 1강은 가난하기에, 현실적인 면에서 사랑을 포기할 수 있음을 말하였고 5강에서는 짝사랑처럼 사랑하는 사람 뒤에서 당신을 내가 사랑하고 있음을 그리하여 나의 설렘과 당신이 알아주기를 표현한 시들을 소개, 9강에서는 나의 짝사랑을 받아주지 않은 당신 때문에 내가 너무 애절하나 사랑을 할 수 있음에 행복하다는 사랑의 아이러니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1강 신경림의 '갈대', 5강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9강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등 우리가 교과서에서 혹은 일상생활에서 많이 접했던 시들이 주를 이룰 뿐만 아니라 노래, 산문, 영화 등의 장면도 심심찮게 나온다.
우리는 시를 쓴 시인까지 공부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나 시에 대해 빠져 들다보면 그 배경지식을 관심을 갖는다. '공부해라'고 하면 더 공부하기 싫어지고 전혀 관계없는 일에 관심을 갖듯 저자는 무심히 시인에 대한 이야기, 시에 얽힌 이야기들을 강의하듯이 풀어낸다. 신경림이 '갈대'라는 시를 쓰고 10년을 절필한 것을, 황동규가 그 유명한 소설과 황순원의 아들이라는 것을, 박목월과 청마 유치환이 유부남임에도 불구하고 바람폈음을, 유치환의 불륜 상대가 시조 시인 이영도 였음을, 천상병이란 천재 시인이 시대의 피해자였음을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어떻게 알게 되었으랴. 책을 처음 받았을 때의 생각과는 다르게 읽는 내내 공대생들의 가슴을 울리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감탄한 강의라는 것이 새삼 공감이 되었다.
시를 보면 볼수록,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짧은 낱말 하나 하나 안에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담담하게 표현하였지만 지은이의 절절함이 묻어나는 시들이 많다. 또한 마치 줄글인 듯 그냥 풀어쓴 시들, 동심을 담은 동시, 애국지사의 광복을 위한 시 등 시를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시의 매력에 더 빠져들고 매번 읽어도 항상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 20대 후반 시에 대하여 이야기 할 사람이 없는 나에게, 또 언젠가 등단을 꿈꾸는 나에게 같은 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였다. 시의 감동을 시를 풀이해 놓은(어쩌면 설명해 놓은) 책에서 느껴보긴 처음이거니와, 책을 읽고 나서 쉬지 않고 한 번 더 읽은 적도 처음이니 나는 아마도 이 책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집 옆에 언제까지나 꽂아두며 계속 읽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