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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처럼 여행하기
전규태 지음 / 열림원 / 2015년 7월
평점 :
며칠전 지인들과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는다면 무엇을 할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동안 벌었던 돈을 다 쓸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이다, 못가본 곳에 가볼 것이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나에게 일주일이란 기간이 남아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겠지만 한달이 넘게 남아 있다면 객사를 하더라도 이 책의 저자처럼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떠날 것 같다. 스무개의 나라를 다녀왔지만 항상 여행 가고 싶은 갈증을 느낄만큼 여행을 좋아하니까.
<단테처럼 여행하기>라는 책 제목 때문에 이 책이 여행서적 혹은 여행에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책의 첫장을 넘겨 작가의 말을 읽으니 이 책은 여행에세이가 아니라 작가 전규태의 산문집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인생(삶)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뭔가 거창하거나 그런게 아니라 할아버지께서 본인이 살아보니 이런 생각도 들고 저런 생각도 들었다라는 것을 자식 혹은 손자들에게 이야기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저자의 문체 때문인지 이상하게 이 책을 읽다보니 할아버지가 생각났고 마치 할아버지와 삶에 대해 대화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자에 대해 너무 궁금해서 찾아보니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독립, 한국전쟁을 모두 경험하신 분이었다. 그래서 '문체에 연륜이 묻어나고 삶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할 수 있었구나.'싶었다.- 무튼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 듯한 것이 아니라 그냥 본인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나 내가 삶에 대해 '대화'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은 저자가 보이지 않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사랑에 대해, 혹은 진정한 삶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데 우리 예쁜 손녀의 생각은 어때?'와 같은 질문들이 책을 읽을 때 끊임없이 쏟아졌다.
길 위에서 내가 간절히 만나고 싶었던 것은 다름 아닌 또 하나의 나였다. 또 하나의 나, 또 하나의 인생을 확인하고 싶었다. -p.7
에서 무척이나 공감하였는데 나 역시 길 위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였다.
사람은 태어날 때에도 혼자이고, '죽살이 여행길'에도 혼자이며, 사람들과 함께 살 때도 혼자이다. 죽을 때 함께 떠나줄 이도 없다. 우리는 이러한 숙명을 통해 직시(直視)한다. -p.44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자기 주변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고독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을 남에게 전할 수 없을 때 고독해진다." -p.49
저자가 시한부라는 상황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 마음이 공허하기 때문인지 이런 부분들이 와닿았다. 혼자 있지 않아도 고독을 느끼는 경우를 누구든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고독은 인간의 숙명과 같은. 마치 신경림의 '갈대'란 시처럼.
일제 말기, 만주 관동주 다련으로 떨어져 지내던 엄마를 만나러 기대와 긴장으로 두근거렸을 가슴을 붙잡고 기차에 올라 첫여행을 했던 12살 저자의 모습이 어찌 그리 낯설지 않은지. 또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자연에서 치유받아 자연을 사랑하고 찾는 여행자가 되었기에 이리도 묘사가 뛰어나 글을 읽으면 장면이 그려지는 것인지. 3개월 시한부 인생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나와 같은 취미를 갖고 있는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하였을 때 드는 생각과 느낌, 그리고 배운점을 나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좁게는 나와 우리, 넓게는 삶에 대해 고찰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