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의 필적으로 다시 읽어본다는 것은 중요하며 새로운 경험으로 가득 찬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를 다른 사람의 시라고 생각하고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그것이 참으로 당신의 작품임을 마음속으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 P54

사랑한다는 것은 개개인에게 있어서 성숙하려는, 자신의 내부에서 무엇이 되려는, 세계가 되려는, 다른 한 사람을 위해서 그자신이 세계가 되려는 숭고한 동기입니다. 개개인에 대한 크고 엄청난 요구입니다. 한 개인을 선택하여 광대한 것으로 초빙해 가는 그 무엇입니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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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의 시가 좋은지 어떤지를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잡지에 시를 보냅니다. 당신은 그것을 다른 시와 비교합니다. 그리고 어떤 편집자가 당신의 시를 거절하는 일이 생기면, 당신은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당신은 제가 충고를 들고 좋다고 하셨으니까) 저는 당신에게, 그러한 일은 일절 그만두기를 부탁드립니다. 당신은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무엇보다도 당신이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충고를 하거나 도와줄 수 없습니다.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단 하나의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십시오. 당신에게 글을 쓰라고 명령하는 근거를 찾아내십시오. 그것이 당신 마음의 가장 깊은곳에 뿌리를 펴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글쓰기를 거부당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를 스스로에게 고백해보십시오.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이 맞는 밤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 ‘나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고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마음속을 파헤쳐 들어가서 깊은 대답을 찾으십시오. 만약 대답이 긍정적이라면, 만약 당신이 이 진지한 물음에 굳세고도 단순하게 ‘나는 쓰지 않을 수 없다‘는 말로 대답할 수가 있다면, 그때에는 당신의 생활을 이 필연성에 따라 구축하십시오.

당신의 생활은 가장 하잘것없는, 가장 사소한 순간에 이르기까지 이 절박감의 표시가 되고 증명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때에는 자연으로 다가가십시오. 그때에는 당신이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그리고 잃는 것을 마치 인류 최초의 사람처럼 표현하도록 노력하십시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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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양초는 비뚤어진 촛대 위에서, 이 가난한 방에서 영원한
책을 읽기 위해 기묘하게 만난 살인자와 매춘부를 희미하게 비추며, 이미 한참 전부터 꺼져가고 있었다.

그는 진보주의자들과 <우리의 젊은 세대>에 합류해 있었는데, 그런 행동도 일시적인 정열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가장 유행하고 있는 평범한 사상에 푹 빠져 들어서, 그 사상을 저속하게 만들어, 때로는 가장 진실한 모습으로 그 사상에 헌신하는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희화화시켜 놓고 마는 그러한 수많은 종류의 속물들, 나약한 조산아들, 모든 것을 어설프게만 배우는 고집쟁이들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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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 작품을 사상으로 축소하려는 자들에게 느끼는 혐오감! 사람들이 ‘사상 토론‘이라 부르는 것에 이끌려 들게 되었을 때 내가 느끼는 공포! 작품과 무관한 사상들에 의해 몽롱해진 시대가 내게 불러일으키는 절망감!

소비에트 : 나는 소비에트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네 개의 단어, 네 개의 허위." (카스토리아디스) 소비에트 인민: 러시아 제국 때 러시아로 편입된모든 민족들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말가리개.

소비에트라는 말은 대 공산주의 러시아의 공격적 민족주의뿐만 아니라 거기서 피신한 사람들의 민족적 향수에도 적합한 말이다. 이 말은 마술 같은 효과에 힘입어 그들로 하여금 소비에트라는 이름의 나라에 러시아(진짜 러시아)는 존재하지 않으며 러시아는 모든 비난에서 벗어난 곳에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본질로 영원히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나치 시대 이후로 독일의 의식은 상처를 입고 죄의식에 물들게 되었다. 토마스 만은 독일 정신에 대한 준엄한 문제 재기다. 폴란드 문화의 성숙성의 척도인 곰브로비치는 기꺼이 ‘폴란드 정신‘을 짓밟았다. 러시아인들이 때 묻지 않은 본질인 ‘러시아 정신‘을 짓밟을 것이라고는 좀처럼 생각되지 않는다. 그들에게서 토마스 만도, 곰브로비치도 나오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가는 어느 누구의 대변인도 아닙니다. 저는 이러한 주장을 좀 더 밀고 나가 소설가는 자기 자신의 생각을 대변하는 사람조차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중략)
모든 진정한 소설가들은 개인적 차원 너머에 있는 이 지혜의 소리를 경청합니다. 이것은 위대한 소설들이 항상 그 작가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자신의 작품보다 더 현명한 소설가들이라면 그들은 아마 직업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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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몽 당신의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역사를 알아야 하나요?
쿤데라 아녜요.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은 소설이 직접 말해 줍니다.

카프카적인 것의 세계에서 코믹한 것은 마치 셰익스피어에게서처럼 비극적인 것의 부주제(희비극)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가벼운 어조를 통해 비극적인 것을 조금이라도 견딜 만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비극적인 것‘에 수반되는 것이 아니다. 아직까지는 찾을 수 있는 위안, 즉 (진짜건 꾸며진것이건) 위대한 비극에서 찾을 수 있는 위안을 희생자들에게서 빼앗아 버림으로써 비극적인 것을 알의 상태에서 깨뜨려 버리는 것이다. 엔지니어는 조국을 잃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사람은 모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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