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아시아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시아의 경제성장이 자유무역에 바탕을 두었다는 이야기는 허구다. 당시 말레이시아, 한국, 태국은 매우 보호주의적인 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외국인들은 토지를 소유하거나 국영회사를 매입할 수 없었다. 여전히 국가가 비중 있는 역할을 하며, 에너지와 운송수단은 공공부문에 있었다. 또한 국내 시장을 강화하면서, 일본, 유럽, 북미의 많은 수입품들을 차단했다. 분명 의심할 여지없는 경제적 성공담이다. 그러나 이는 잘 관리된 혼합경제가 서부시대식의 워싱턴 컨센서스를 따를 때보다 더욱 공평하게 급성장했다는 증거였다. 서구와 일본의 투자은행들과 다국적기업들은 이런 상황이 불만스러웠다. 아시아의 소비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자 그들은 당연히 제한 없이 상품을 팔기를 원했다. 또한 아시아 호랑이 경제의 최고 회사들을 매입할 권리도 원했다. 특히 한국의 대우, 현대, 삼성, LG 같은 눈부신 종합기업들 말이다. IMF와 새로 설립된 WTO의 압력속에서, 1990년대 중반 아시아 정부들은 정책 조율에 동의했다. 외국인이 국영기업을 소유하지 못하게 금지하는 법은 그대로 유지했다. 또한 주요 국영회사들을 민영화하라는 압력에도 저항했다. 그러나 금융 분야의 장벽은 제거해야했다. 요컨대 환율거래와 증권투자를 허락한 것이다.

1997년, 단기자본의 물결이 아시아에서 이탈한 것은 서구의 압력으로 합법화된 투기성 투자의 직접적 결과였다. 물론 월스트리트는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최고의 투자 분석가들은 위기를 기회로 보았다. 아시아 시장을 보호하는 남은 장벽들을 단번에 제거할 기회 말이다.

(중략)

아시아 호랑이들의 몰락은 ‘두 번째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상징했다. ‘자유시장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적자본주의와 사회주의적 국가주의 사이에 제3의 길이 있다는 생각의 붕괴라는 것이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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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은 심문 과정에서 정보를 빼내는 수단으로 악명 높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고 통제하는 데 고문보다 더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1950~1960년대 많은 알제리 사람들은 프랑스 진보주의자들에게 화를 냈다. 프랑스 군인들이 알제리 자유해방군에게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가했다는 소식에 그저 도덕적 분노만을 표하면서, 학대의 원인인 점령을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2년, 프랑스 변호사 지젤 할리미(Giséle Halimi)는 감옥에서 잔인하게 강간당하고 고문당한 알제리인들을 변호했다. 절망에 빠진 할리미는 이렇게 표현했다. "항상 진부하고 똑같은 말뿐이다. 알제리에서 고문이 사용된 이래로 늘 똑같은 말, 똑같은 분노의 표현, 똑같은 대중의 항의 서명, 똑같은 약속이 반복된다. 그런 것들로는 전기쇼크기기나 물고문 세트를 철폐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고문자들의 권력을 막을 실질적인 방안도 제공하지 못한다." 그러한 주제에 관한 글을 쓴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도 같은 생각을 드러냈다. "권력 남용이나 권력 악용에 대해 도덕성을 이유로 항의하는 것은 커다란 실수다. 오히려 상황만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권력 남용이나 오용 같은 건 없다. 단지 체계적인 시스템만이 있을 뿐이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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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크 독트린은 이러한 과정을 그대로 모방했다. 심문실의 일대일 상황에서 고문을 통해 얻은 것을 더욱 큰 규모에서 얻어내는 것이다. 가령 9·11 테러 사건의 충격 때문에 수백만 명이 ‘익숙했던 세계‘가 폭발하는 느낌을 받았다. 부시행정부는 그러한 깊은 혼란과 퇴행의 시기를 노련하게 이용했다. 사람들은 갑자기 태초의 시대에 사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알고 있던 지식들은 ‘9·11 테러사건 이전에나 해당하는 사상‘으로 치부되었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결코 많지 않은 북미 사람들은 이제 백지상태에 빠졌다. 마오쩌둥이 국민들에게 말했듯, 가장 새롭고 아름다운 단어들이 쓰일 백지였다. 새로운 전문가들은 정신적 충격으로 무엇이든 받아들이게 된 의식에 새롭고 아름다운 단어를 써나갈 것이다. 우선 ‘문명의 충돌‘이라는 단어를 써 넣었다. ‘악의 축‘, ‘이슬람 파시즘’, ‘국토안보‘도 있다. 부시 행정부는 모두가 새롭고 치명적인 문화 전쟁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9·11 테러 사건 이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들을 시작할 수 있었다. 바로 해외에서는 민영화된 전쟁을 일으키고, 국내에서는 사기업들의 안보복합체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쇼크 독트린의 전개방식은 대강 이렇다. 우선 쿠데타, 테러리스트의 공격, 시장 붕괴, 전쟁, 쓰나미, 허리케인 등의 재난이 국민들을 총체적인 쇼크상태로 몰아넣는다. 쏟아지는 폭탄, 계속된 공포, 몰아치는 비바람은 사회를 약하게든다. 마치 고문실에서 시끄러운 음악과 구타가 죄수들을 약하게 만들 듯 말이다. 공포에 질린 죄수들은 동지의 이름을 대고 자신의 과거 신념을 비난한다. 마찬가지로 충격에 빠진 사회는 이전에 강력하게 보호했던 것들을 포기한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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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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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태곳적 소명에 의해서 나는 ‘부정‘을 할 운명을 타고났지만, 사실 나는 진정으로 착한 사람이라서 부정에는 전혀 소질이 없다네. 안 돼, 어서 부정해, 부정이 없으면 비평도 없고 비평 분과가 없다면 무슨 잡지라고 할 수 있겠나? 비평이 없으면 그저 ‘호산나‘ 밖에 없을 테지. 하지만 삶을 위해선 호산나 하나만으론 부족해, 이 호산나‘는 회의의 도가니를 거쳐 나오지 않으면 안 돼, 뭐 등등 이런 종류의 것들이지.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건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지, 내가 창조한 게 아니니까. 내가 책임질 일도 아니거든. 뭐 그쪽에서들 속죄양을 한 마리 골라서 비평 분과에서 글을 쓰도록 강요했고 그러다 보니 인생이 이 꼬락서니가 된 거라네. 우리는 이 희극을 이해해. 예컨대 나는 솔직히 탁 깨 놓고 나 스스로의 파괴를 요구하는 바일세. 하지만, 안 돼, 살아야 돼, 너 없이는 아무것도 없을 테니, 하고 말하더군. 세상에 모든 것이 합리적이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다. 네가 없으면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하지만 사건이란 반드시 일어나야만 한다. 자 그래서, 나는 마지못해 마음을 굳게 먹고 사건이 일어나도록 봉사를 하는 거고, 또 명령에 따라 불합리한 짓을 저지르는 거란 말일세.

사람들은 심지어 의심의 여지없이 명료한 이성을 지녔음에도 이 희극 자체를 뭔가 진지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바로 여기에 그들의 비극이 있는 거야. 뭐 물론 고통스럽기도 하겠지만... 그 대신 여전히 살고들 있어, 그것도 환상적인 삶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왜냐면 고통이란 것이 곧 삶이기도하니까. 고통이 없다면 인생에 무슨 낙이 있겠나. 모든 것이 끝없는 기도의 연속으로 바뀔 텐데. 그건 거룩하긴 하지만 지루하기 짝이 없지.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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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건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지, 내가 창조한 게 아니니까 내가 책임질 일도 아니거든. 뭐 그쪽에서들 속죄양을 한 마리골라서 비평 분과에서 글을 쓰도록 강요했고 그러다 보니 인생이 이 꼬락서니가 된 거라네. 우리는 이 희극을 이해해. 예컨대 나는 솔직히 탁 깨 놓고 나 스스로의 파괴를 요구하는 바일세. 하지만, 안 돼, 살아야 돼, 너 없이는 아무것도 없을 테니, 하고 말하더군. 세상에 모든 것이 합리적이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다. 네가 없으면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하지만 사건이란 반드시 일어나야만 한다. 자 그래서, 나는 마지못해 마음을 굳게 먹고 사건이 일어나도록 봉사를 하는 거고, 또 명령에 따라 불합리한 짓을 저지르는 거란 말일세.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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