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크 독트린은 이러한 과정을 그대로 모방했다. 심문실의 일대일 상황에서 고문을 통해 얻은 것을 더욱 큰 규모에서 얻어내는 것이다. 가령 9·11 테러 사건의 충격 때문에 수백만 명이 ‘익숙했던 세계‘가 폭발하는 느낌을 받았다. 부시행정부는 그러한 깊은 혼란과 퇴행의 시기를 노련하게 이용했다. 사람들은 갑자기 태초의 시대에 사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알고 있던 지식들은 ‘9·11 테러사건 이전에나 해당하는 사상‘으로 치부되었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결코 많지 않은 북미 사람들은 이제 백지상태에 빠졌다. 마오쩌둥이 국민들에게 말했듯, 가장 새롭고 아름다운 단어들이 쓰일 백지였다. 새로운 전문가들은 정신적 충격으로 무엇이든 받아들이게 된 의식에 새롭고 아름다운 단어를 써나갈 것이다. 우선 ‘문명의 충돌‘이라는 단어를 써 넣었다. ‘악의 축‘, ‘이슬람 파시즘’, ‘국토안보‘도 있다. 부시 행정부는 모두가 새롭고 치명적인 문화 전쟁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9·11 테러 사건 이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들을 시작할 수 있었다. 바로 해외에서는 민영화된 전쟁을 일으키고, 국내에서는 사기업들의 안보복합체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쇼크 독트린의 전개방식은 대강 이렇다. 우선 쿠데타, 테러리스트의 공격, 시장 붕괴, 전쟁, 쓰나미, 허리케인 등의 재난이 국민들을 총체적인 쇼크상태로 몰아넣는다. 쏟아지는 폭탄, 계속된 공포, 몰아치는 비바람은 사회를 약하게든다. 마치 고문실에서 시끄러운 음악과 구타가 죄수들을 약하게 만들 듯 말이다. 공포에 질린 죄수들은 동지의 이름을 대고 자신의 과거 신념을 비난한다. 마찬가지로 충격에 빠진 사회는 이전에 강력하게 보호했던 것들을 포기한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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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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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태곳적 소명에 의해서 나는 ‘부정‘을 할 운명을 타고났지만, 사실 나는 진정으로 착한 사람이라서 부정에는 전혀 소질이 없다네. 안 돼, 어서 부정해, 부정이 없으면 비평도 없고 비평 분과가 없다면 무슨 잡지라고 할 수 있겠나? 비평이 없으면 그저 ‘호산나‘ 밖에 없을 테지. 하지만 삶을 위해선 호산나 하나만으론 부족해, 이 호산나‘는 회의의 도가니를 거쳐 나오지 않으면 안 돼, 뭐 등등 이런 종류의 것들이지.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건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지, 내가 창조한 게 아니니까. 내가 책임질 일도 아니거든. 뭐 그쪽에서들 속죄양을 한 마리 골라서 비평 분과에서 글을 쓰도록 강요했고 그러다 보니 인생이 이 꼬락서니가 된 거라네. 우리는 이 희극을 이해해. 예컨대 나는 솔직히 탁 깨 놓고 나 스스로의 파괴를 요구하는 바일세. 하지만, 안 돼, 살아야 돼, 너 없이는 아무것도 없을 테니, 하고 말하더군. 세상에 모든 것이 합리적이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다. 네가 없으면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하지만 사건이란 반드시 일어나야만 한다. 자 그래서, 나는 마지못해 마음을 굳게 먹고 사건이 일어나도록 봉사를 하는 거고, 또 명령에 따라 불합리한 짓을 저지르는 거란 말일세.

사람들은 심지어 의심의 여지없이 명료한 이성을 지녔음에도 이 희극 자체를 뭔가 진지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바로 여기에 그들의 비극이 있는 거야. 뭐 물론 고통스럽기도 하겠지만... 그 대신 여전히 살고들 있어, 그것도 환상적인 삶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왜냐면 고통이란 것이 곧 삶이기도하니까. 고통이 없다면 인생에 무슨 낙이 있겠나. 모든 것이 끝없는 기도의 연속으로 바뀔 텐데. 그건 거룩하긴 하지만 지루하기 짝이 없지.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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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건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지, 내가 창조한 게 아니니까 내가 책임질 일도 아니거든. 뭐 그쪽에서들 속죄양을 한 마리골라서 비평 분과에서 글을 쓰도록 강요했고 그러다 보니 인생이 이 꼬락서니가 된 거라네. 우리는 이 희극을 이해해. 예컨대 나는 솔직히 탁 깨 놓고 나 스스로의 파괴를 요구하는 바일세. 하지만, 안 돼, 살아야 돼, 너 없이는 아무것도 없을 테니, 하고 말하더군. 세상에 모든 것이 합리적이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다. 네가 없으면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하지만 사건이란 반드시 일어나야만 한다. 자 그래서, 나는 마지못해 마음을 굳게 먹고 사건이 일어나도록 봉사를 하는 거고, 또 명령에 따라 불합리한 짓을 저지르는 거란 말일세.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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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사회주의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것이 여전히 살아 있는 유일한 환상이기 때문이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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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도 군중이 받아들이면 종교적 감정처럼 여지없이 편협성을 띠고 겉으로 볼 때도 금세 하나의 광적인 종교가 될 것이다. 실증주의를 추구하는 한 소수파의 변화 과정이 이를 입증하는 흥미로운 증거를 제공한다. 도스토옙스키의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한 허무주의자에게 일어난 현상이 이 소수파에게도 일어났다. 어느 날 이성의 빛에 눈을 뜬 그는 교회 제단을 장식하고 있는 온갖 신과 성자의 형상을 부숴버리고 촛불도 껐다. 그러고는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뷔히너[독일의유명한 유물론 철학자 루트비히 뷔히너(Ludwig Büchner, 1824-1899)]와 몰레스호트[19세기 네덜란드의 자연과학적 유물론자이자 의사인 야코프 몰레스호트(Jacob Moleschott, 1822-1893)] 같은 무신론자들의 저서로 빈자리를 채운 후 경건한 마음으로 다시 촛불을 켰다. 그런데 그가 이처럼 신앙의 대상을 바꿨다고 해서 종교적 감정까지 달라졌다고 진정 말할 수 있을까?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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