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태곳적 소명에 의해서 나는 ‘부정‘을 할 운명을 타고났지만, 사실 나는 진정으로 착한 사람이라서 부정에는 전혀 소질이 없다네. 안 돼, 어서 부정해, 부정이 없으면 비평도 없고 비평 분과가 없다면 무슨 잡지라고 할 수 있겠나? 비평이 없으면 그저 ‘호산나‘ 밖에 없을 테지. 하지만 삶을 위해선 호산나 하나만으론 부족해, 이 호산나‘는 회의의 도가니를 거쳐 나오지 않으면 안 돼, 뭐 등등 이런 종류의 것들이지.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건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지, 내가 창조한 게 아니니까. 내가 책임질 일도 아니거든. 뭐 그쪽에서들 속죄양을 한 마리 골라서 비평 분과에서 글을 쓰도록 강요했고 그러다 보니 인생이 이 꼬락서니가 된 거라네. 우리는 이 희극을 이해해. 예컨대 나는 솔직히 탁 깨 놓고 나 스스로의 파괴를 요구하는 바일세. 하지만, 안 돼, 살아야 돼, 너 없이는 아무것도 없을 테니, 하고 말하더군. 세상에 모든 것이 합리적이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다. 네가 없으면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하지만 사건이란 반드시 일어나야만 한다. 자 그래서, 나는 마지못해 마음을 굳게 먹고 사건이 일어나도록 봉사를 하는 거고, 또 명령에 따라 불합리한 짓을 저지르는 거란 말일세.
사람들은 심지어 의심의 여지없이 명료한 이성을 지녔음에도 이 희극 자체를 뭔가 진지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바로 여기에 그들의 비극이 있는 거야. 뭐 물론 고통스럽기도 하겠지만... 그 대신 여전히 살고들 있어, 그것도 환상적인 삶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왜냐면 고통이란 것이 곧 삶이기도하니까. 고통이 없다면 인생에 무슨 낙이 있겠나. 모든 것이 끝없는 기도의 연속으로 바뀔 텐데. 그건 거룩하긴 하지만 지루하기 짝이 없지. - P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