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 작품을 사상으로 축소하려는 자들에게 느끼는 혐오감! 사람들이 ‘사상 토론‘이라 부르는 것에 이끌려 들게 되었을 때 내가 느끼는 공포! 작품과 무관한 사상들에 의해 몽롱해진 시대가 내게 불러일으키는 절망감!

소비에트 : 나는 소비에트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네 개의 단어, 네 개의 허위." (카스토리아디스) 소비에트 인민: 러시아 제국 때 러시아로 편입된모든 민족들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말가리개.

소비에트라는 말은 대 공산주의 러시아의 공격적 민족주의뿐만 아니라 거기서 피신한 사람들의 민족적 향수에도 적합한 말이다. 이 말은 마술 같은 효과에 힘입어 그들로 하여금 소비에트라는 이름의 나라에 러시아(진짜 러시아)는 존재하지 않으며 러시아는 모든 비난에서 벗어난 곳에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본질로 영원히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나치 시대 이후로 독일의 의식은 상처를 입고 죄의식에 물들게 되었다. 토마스 만은 독일 정신에 대한 준엄한 문제 재기다. 폴란드 문화의 성숙성의 척도인 곰브로비치는 기꺼이 ‘폴란드 정신‘을 짓밟았다. 러시아인들이 때 묻지 않은 본질인 ‘러시아 정신‘을 짓밟을 것이라고는 좀처럼 생각되지 않는다. 그들에게서 토마스 만도, 곰브로비치도 나오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가는 어느 누구의 대변인도 아닙니다. 저는 이러한 주장을 좀 더 밀고 나가 소설가는 자기 자신의 생각을 대변하는 사람조차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중략)
모든 진정한 소설가들은 개인적 차원 너머에 있는 이 지혜의 소리를 경청합니다. 이것은 위대한 소설들이 항상 그 작가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자신의 작품보다 더 현명한 소설가들이라면 그들은 아마 직업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몽 당신의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역사를 알아야 하나요?
쿤데라 아녜요.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은 소설이 직접 말해 줍니다.

카프카적인 것의 세계에서 코믹한 것은 마치 셰익스피어에게서처럼 비극적인 것의 부주제(희비극)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가벼운 어조를 통해 비극적인 것을 조금이라도 견딜 만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비극적인 것‘에 수반되는 것이 아니다. 아직까지는 찾을 수 있는 위안, 즉 (진짜건 꾸며진것이건) 위대한 비극에서 찾을 수 있는 위안을 희생자들에게서 빼앗아 버림으로써 비극적인 것을 알의 상태에서 깨뜨려 버리는 것이다. 엔지니어는 조국을 잃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사람은 모두 웃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존재의 부분을 찾아내려 하지 않는 소설은 부도덕한 소설이다. 앎이야말로 소설의 유일한 모럴인 것이다.

인간은 선악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세계를 원한다. 이해하기에 앞서 심판하고자 하는 타고난,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이 인간에게 있기 때문이다.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바로 이 욕망 위에 수립된다. 이것들은 소설의 상대적이고 애매한 언어를 자기네들의 명확한 교조적 담화로 바꾸지 않고서는 소설을 인정하지 못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눈을 가린 채 현재를 지나간다. 기껏해야 우리는 현재 살고 있는 것을 얼핏 느끼거나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나중에서야, 눈을 가렸던 붕대가 풀리고 과거를 살펴볼 때가 돼서야 우리는 우리가 겪은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버지 죽이기
아멜리 노통브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진짜 이제 그냥 의리로 보고 있다 노통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