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진형민의 동화를 읽고 보니 작가의 관심사는 개개인의 상처나 트라우마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모두 괜찮은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오늘을 살고 있지만 저마다의 사정이 내밀한 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 이는 어른들 뿐 아니라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다. 이번 동화는 그러한 상흔이 외부로부터 촉발될 수 있으며 문제의 해결이 쉽지 않고 답을 찾아가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의 상처가 지구 온도가 높아지는 것과 무슨 상관일까? 이 작품을 쓴 작가는 이런 상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산불이 나서 기주네 가족은 기주 이모네로 이사해 이모의 잔소리를 견디며 살고 있다. 기주는 다정이라는 개를 목줄만 풀어주고 함께 하지 못해 속상하다. 진모는 잔다르크라도 되는 듯 행동하는 누나 진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록희는 아빠가 시장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한다. 박수찬은 록희 아빠가 시장에서 일하시는 줄 아는 의리의 친구라 왜왜왜 동아리를 만든 록희와 함께 한다. 네 어린이들에게 얽힌 사연과 지구온난화가 재미있게 버물려진 이 작품은 서로 다른 의견을 어떻게 조율해 나가는지에 대한 긍정적인 사례를 펼쳐놓는다.
석탄 발전소를 짓되 어떻게든 주민들의 경제생활에 도움이 되면서도 환경을 덜 훼손시킬 방법을 찾으려는 세력과 처음부터 오염원의 배출원 설치를 막으려는 하는 세력의 갈등은 자칫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다. --현실에서는 이미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갈등의 극단을 가고 있기도 하다.-- 이와는 달리 이야기 속에서는 다른 모습이어서 좋았다. 외국의 사례들이 참조되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대등하게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을 즐겁게 읽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중학생의 행동을 막지 않는 부모님의 모습은 닮고 싶은 상이기도 하다. 딸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서 자칫 선출직 공무직의 지위가 위태로워질 수 있는데도 적극적으로 막기보다는 공적인 지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건 거의 우리 현실에서 판타지나 다름 없다.
동화가 바라는 세상이 이처럼 아이들과 어른들이 대등하게 소통하는 것 아닐까. 여전히 동화속에는 어른들의 행태가 부끄럽다. 그럼에도 절차를 지키려는 어른들이 있다는 건 아이들에게 선배세대로서 좋은 모습이다.
어쨌거나 동화라는 것. 아이들의 세계는 화해가 필요하다. 기억하지 못했던 약속을 위해 마음 한 자락을 내어주는 아이들,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아직 희망이 있음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