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문학기행 - 머나먼 울림, 선연한 헌것
김윤식 지음 / 문학사상사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작년 초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하여 단숨에 읽었던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아직도 왜 내가 김윤식 교수의 책을 선택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손에 잡히는 대로 골라 읽은 책이라고 말하기엔 책의 짜임새가 돋보이고 글의 깊이가 있어 이 독자평을 쓰기에도 스스로 민망해지려 한다.

작가가 한국 평단의 큰 어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일까. 우리는 그의 문학기행 곳곳에서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필치를 느낄 수 있음은 물론, 문학사가로서의 그의 뛰어난 면모를 입증해주듯 그의 연륜이 담긴 감동적인 해설을 제공받을 수 있다.

작가의 발걸음은 몽골에서 시작하여 중국을 돌아 일본을 거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단순한 여행 후기나 역사기행과는 구분되는 그 무엇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여행지에는 늘 문학적인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사실이나 구구절절한 감상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전적으로 작가 자신의 시각과 감정에 의존하여 행선지의 문학적 기운을 읽어내는 모습은 우리에게 문학기행 그 이상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몽골에서 우연히 만난 '이조잔영', 태산에서 다시금 짚어보는 '공자'의 인생, 그리고 강경애, 안수길, 윤동주, 송몽규에 대한 역사적인 흔적과 기억의 편린들.. 그리고 일본 고마바에서 되돌아본 조선의 예술.. 각 여행지마다 색깔은 분명하고 추억도 허다하였다. 그러나 그 추억은 이제 작가에게 또한 우리에게 머나먼 평원에서 들려오는 울음 같기도 하고 눈앞에 선명히 보이면서도 잡을 수 없는 하늘과 같다. 그래서인지 정돈되고 간결한 그의 문장 속에서 우리는 문학 속에 숨겨둔 스스로의 삶의 가슴 시린 이야기들을 만나게 되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이웃 나라들이 우리의 사연을 담고 살아가고 있다는 은은한 비밀을 깨닫게 된다. 폐부를 찌를듯한 적나라한 현실감은 오히려 그의 문학적 발자취가 만들어낸 울림 속에서 녹아버렸으며, 이제 우리는 그 울림을 듣고 추억할 뿐이다.

한 한국 평론가의 시선은 이렇듯 우리에게 이국적 정취와 더불어 잃어버렸던 문학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에 글의 깊이를 전혀 헤치지 않는 여러 장의 사진들도 이 책의 완성도를 더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작가의 해박한 배경지식은 독자의 공감을 충분히 얻어내고 있기 때문에 현학적으로 보일 수 있는 면을 자연스럽게 극복해냈다.

특히 <사기>와 소설<공자>에서 공자의 삶을 되짚어보는 작가의 말은 종교적인 깨달음마저 느끼게 한다. 잠시 한 부분을 소개하고 리뷰를 마친다.

(공자):'詩에 '코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데 저 광야를 달리네'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의 도가 잘못된 것인가. 우리가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p.127)
...
들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 것, 그러니까 사람이었다. 들판을 14년 간이나 헤매어도 그는 사람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니었다. 사람으로 태어남, 그것을 아는 것이 천명이었고, 그것의 고마움을 아는 것이 천명이었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고 그야말로 난세라 할지라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은, '태어나서 참 좋았다'라는, 최소한도의 기쁨만은 확보해야 한다는 것, 만일 정치가의 이상이 있다면, 그러니까 공자의 이상이란 이것이 아니었겠는가. '나는 장사꾼이다'라고 공언하며 물건을 팔고자 14년 간이나 중원천하를 헤맨 이유도 이로써 조금은 설명되지 않겠는가. 그 상품이 바로 '태어나서 참 좋았다!'이다. (pp.129-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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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 바흐
안나 막달레나 바흐 지음, 김미옥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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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안나 막달레나 바흐는 바흐의 두 번째 아내이다. 전처에게서 난 자녀와 자신과 바흐에게서 난 자녀들을 키우면서 써간, 남편에 대한 사랑과 남편의 음악에 대한 존경이 듬뿍 들어간 이 책은 바흐에 관심이 있는 고전음악 애호가라면 한 번 쯤 읽어볼만한 책이 아닌가 한다. 물론 이 책은 이미 밝혀진 대로 안나가 직접 쓴 책이 아니다. 내 경우는 동호회 등을 통해 이 책이 바흐의 아내가 쓴 책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이 책을 읽은 것이었는데, 소설이라는 걸 감안하고 읽는다해도 바흐의 음악을 흠모하는 나로서는 그저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되는 안나의 목소리가 단순히 소설로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볼 것이다. 만약 내가 바흐의 아내라면.. 그 당시 그의 아내로.. 혹은 그녀의 남편으로 태어나 자신의 동반자의 일과 사랑과 삶에 대해 회고해 본다면.. 내가 작가였다해도 아내를 위해 소품을 작곡하고 친절하게 오르간을 가르쳐주는 남편 바흐의 모습, 매주 교회에서 연주될 코랄을 작곡하기 위해 머리를 싸맸을 것 같다가도 그 수많은 아이들을 사랑하여 그들에게 아버지의 음악을 가르치기를 주저하지 않았을 바흐의 모습.. 바흐의 음악에 감동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아마 망설이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평화로운 바흐의 가정을 상상해보았으리라.. 그게 사실이었든 아니었든 말이다.

바흐를 사랑하는가? 바흐가 살았던 곳과 그 당시 음악가의 삶이 궁금한가? 그렇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한다. 바흐 연구의 필독서라고 할 수는 없다해도 바흐에 애정이 있는 당신이라면, 이 책이 소설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는 당신이라면 바흐의 아내 입장에서 한 번 읽어볼 것을 감히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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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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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불혹의 나이에 작가의 반열에 오른 박완서. 그리고 그녀의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쟁통에 죽은 오빠의 기억.. 내게 박완서는 고교 국어 교과서 수준의 단편적 지식 그 이상으로 다가오는 작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와 읽은 단편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과 이후 보게 된 <아주 오래된 농담>은 그녀에 대한 피상적인 인상에서 나를 해방시켰다. 이 두 권으로 말미암아 그녀는 작가 박완서가 아닌 여자 박완서, 오랜 삶의 경험을 간직하고 있는 할머니 박완서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전작들에 비하면 <아주 오래된 농담>은 통속적인 느낌마저 배제할 수 없었지만 나는 이 책에서 작가의 현란하고도 날카로운 감정 묘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통속적이고 tv드라마 같은 배경 설정에서 오히려 우리 현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글쎄..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나이지만 음모와 배신의 덫에서 허우적 거려본 나로서는 이 소설의 배경설정이 단순한 허구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까.. 윤리나 교양은 찾아볼 수 없는 졸부 가족과,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기 힘든 자수성가형 남매의 이야기는 내 이웃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고, 또한 내 친구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주인공들에게 조소를 보내고 섣부른 비판을 가하면서도 그 어느날 오래된 농담 속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르는 내 자신의 모습 때문에 불안을 금치 못한다. 그렇다면 내가 삶을 더 겪고 난 다음에 이 책을 접했을 때 나는 영묘에게 경호에게.. 무엇보다 현금에게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아주 오래된 농담>은 그저 오래 지나 썰렁하기만 한, 떠올리기 어색하고 시덥지 않은 이야기거리일 뿐인가. 박완서는 우리의 삶이 아주 오래된 농담일지 몰라도, 또 독자들이 농담의 주인공들을 강건너 불보듯 할지라도, 그것은 어느날 당신들에게 농담만은 아닐 것이라는 문뜩 섬뜩하기까지 한 말을 건네고 있다. 윤리와 상식이 깨지고 개인의 삶이 무섭게도 까발려지기 쉬운 요즘 시대에 우리는 수 많은 농담이 되어가고 있는 자기 자신의 삶을 스스로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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