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불혹의 나이에 작가의 반열에 오른 박완서. 그리고 그녀의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쟁통에 죽은 오빠의 기억.. 내게 박완서는 고교 국어 교과서 수준의 단편적 지식 그 이상으로 다가오는 작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와 읽은 단편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과 이후 보게 된 <아주 오래된 농담>은 그녀에 대한 피상적인 인상에서 나를 해방시켰다. 이 두 권으로 말미암아 그녀는 작가 박완서가 아닌 여자 박완서, 오랜 삶의 경험을 간직하고 있는 할머니 박완서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전작들에 비하면 <아주 오래된 농담>은 통속적인 느낌마저 배제할 수 없었지만 나는 이 책에서 작가의 현란하고도 날카로운 감정 묘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통속적이고 tv드라마 같은 배경 설정에서 오히려 우리 현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글쎄..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나이지만 음모와 배신의 덫에서 허우적 거려본 나로서는 이 소설의 배경설정이 단순한 허구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까.. 윤리나 교양은 찾아볼 수 없는 졸부 가족과,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기 힘든 자수성가형 남매의 이야기는 내 이웃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고, 또한 내 친구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주인공들에게 조소를 보내고 섣부른 비판을 가하면서도 그 어느날 오래된 농담 속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르는 내 자신의 모습 때문에 불안을 금치 못한다. 그렇다면 내가 삶을 더 겪고 난 다음에 이 책을 접했을 때 나는 영묘에게 경호에게.. 무엇보다 현금에게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아주 오래된 농담>은 그저 오래 지나 썰렁하기만 한, 떠올리기 어색하고 시덥지 않은 이야기거리일 뿐인가. 박완서는 우리의 삶이 아주 오래된 농담일지 몰라도, 또 독자들이 농담의 주인공들을 강건너 불보듯 할지라도, 그것은 어느날 당신들에게 농담만은 아닐 것이라는 문뜩 섬뜩하기까지 한 말을 건네고 있다. 윤리와 상식이 깨지고 개인의 삶이 무섭게도 까발려지기 쉬운 요즘 시대에 우리는 수 많은 농담이 되어가고 있는 자기 자신의 삶을 스스로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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