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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
전건우 지음 / 엘릭시르 / 2017년 8월
평점 :

추석 연휴 동안 다른 책을 읽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아 전에 사둔 전자책을 꺼내들었다. 이웃님들이 재미있다고 했던 기억이 나 <소용돌이>를 읽기 시작했다. 결국엔 중간에 멈추지를 못하고 늦은 밤까지 읽고 말았다.
죽음을 찍어서 파는 사진작가인 민호는 어느 날 옛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초등학교 동창인 유민의 죽음.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그날을 떠올리며 또다시 광선리로 향했다. 어린 시절 독수리 5형제로 칭하며 함께 어울렸던 상처가 있던 아이들, 부모의 이혼 후 외할머니 집에서 방학을 보낸 민호,전교 일등, 전교 회장에 부잣집 도련님이었지만 아픈 가정사가 있던 창현,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수돗가에서 허기를 달랬던 명자, 먹는 걸 좋아하고 힘이 센 길태, 양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했던 유민은 30대가 되어 죽음을 찍는 사진 기사, 지방대학 시간 강사, 술집 종업원, 조직폭력배, 죽은 유민은 학교 소사로 입에 겨우 풀칠한 할 수 있는 신세였다. 25년이 지난 사건이지만 그날의 여파로 다들 힘들게 살고 있었다. 그리고 유민이 죽었다. 친구들이 다시 찾아간 광선리는 공사 문제로 시끄러운 상태였고, 그들이 돌아오자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그 죽음은 누가 봐도 섬뜩할 정도로, 물이 없는 곳에서 익사체로 발견되는데...
처음엔 제목만 듣고 이토 준지의 <소용돌이>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티븐 킹의 <그것>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과거와 마주하며 다시 만난 친구들의 우정을 그렸다는 게 공통점이라서 그럴 것이다. 그나마 <그것>의 친구들은 사건을 거의 잊다시피 하며 나름 성공도 하고 평범하게 지냈지만(그랬던 걸로 기억하지만) <소용돌이>의 친구들은 그날의 사건의 공포와 죄책감으로 평범하게 사는 삶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어린 시절엔 그래도 순수해서 무모한 용기로 여차여차 물귀신과 페니와이즈를 이길 수 있었다면, 어른이 된 지금은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으며 감당하기 어려웠던 일이기를 알기에 더욱더 힘들기만 하다. 물론 둘 다 해피엔딩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용돌이>와 <그것> 중에 <소용돌이>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스티븐 킹의 전개 방식과 이래도 되나 싶은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 맘에 안 들었던 이유가 아마도 가장 클 것이다. 그리고 어디 피에로 모습을 한 악마 따위가 한이 서린 물귀신을 이길 수 있겠냐 말이다. 어느 공포 사이트에서 읽은 얘기였는데 다른 귀신들은 그래도 굿을 하던 뭘 하던 정성을 들이면 봐주는 시늉이라도 하지만 물귀신은 알짤없다고... 괜히 끈질긴 사람을 물귀신에 비할까.
공포 이야기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재미있어 한다. 혹자는 과거 경험의 유전 결과라고도 하던데 예를 들어 누군가 산에서 호랑이를 만났다고 하자. 그 사람은 호랑이가 너무 무서웠지만 어쩌다가 호랑이를 물리치고 가죽을 벗겨 마을로 돌아간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명예를 높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앞으로 닥칠지도 모를 무서운 상황을 이야기를 통해 예행연습을 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윈윈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아마도 우리는 무서운 이야기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믿거나 말거나지만 꽤나 신빙성은 있어 보인다.
요즘은 예전처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듣던 '전설의 고향'에서 들을 법한 이야기를 좀처럼 들을 기회가 없다. 세상이 워낙 흉흉해서 귀신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으니까. 그래서 추억 삼아서라도 이런 이야기를 만나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그런 중에 알게 된 전건우 작가님. 호러 미스터리 장르에서 오래오래 재미있는 무서운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기를...
"신기하네. 변하고 사라지는 게 수두룩한데 이런 아이스크림은 그대로야. 그리고 우리는 또 이렇게 둘러앉아서..."
내가 말했다.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분기에 한 번이라는 헛된 약속을 잡기는 싫었다. 살다 보면 알게 된다. 그런 약속이 얼마나 덧없는지. 대신에 이 세상 어디엔가 한 번쯤 다시 만나고픈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위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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