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복수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단숨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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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여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시신은 관절 마디마디가 부러진 채 밧줄에 감긴 데다가 다량의 혈액도 소실된 상태다. 발터 풀라스키 형사는 자살이 아님을 직감하지만 동료 형사들은 마약에 찌든 매춘부라며 크게 살인사건에 무게를 두지 않고 사고사로 단순 결론지으려고 한다. 나탈리의 사고 소식을 들은 엄마 미카엘라는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도망쳐 딸의 죽음의 진실을 알려고 한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폴라스키 형사에게 정보를 빼내고 종종 수사를 방해한다. 두 사람은 추적 끝에 연쇄살인사건임을 알고 함께 움직이고, 한편 빈에서는 에블린 마이어스 변호사가 성추행과 살인사건에 가해자로 의심을 받는 콘스탄틴의 변호를 맡게 되는데...

'복수'는 힘들다. 복수 자체가 힘이 들기보다는 복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정도로 개운하게 복수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대를 맞으면 최소한 두 대는 때려야 그나마 비긴 것 같으니까... 장난치다가 맞는 것도 그런데 자식을 잃은 엄마의 마음은 어떠할까. 나라면 관절 마디 마디를 부러뜨린 범인에게 뼈 하나하나를 망치질해서 부숴버리고 싶을 것 같다. 아니 그걸로도 모자를 것만 같다. 미카엘라는 범인을 잡기 위해 형사들보다 더 뛰어나게 정보를 모으고 또 행동했다. 딸의 범인을 잡기 위해 문신을 하는 등 수단을 가리지 않고 정보를 모은다. 딸의 죽음 앞에서 이성적으로 단서를 모으는 미카엘라가 어찌 보면 더 무서울 정도... 자신이 지키지 못한 딸에 대한 죄책감에 발 벗고 나서는 엄마를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범인 니가 사람 잘못 만난 거다.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알라딘 추천 마법사에 종종 뜰 때마다 보관함에 넣어두기는 했지만 구매해서 읽어본 적은 없었다. 이렇게 가독성이 좋은 소설이라면 진작에 읽어볼 걸 하는 후회가 살포시 밀려들어왔다. 예전에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라는 소설이 사람들 사이에서 화자 될 때가 있었는데 그때도 '난 유행에 따라 책을 읽지 않아~'라며 말도 안 되는 콧대를 높였었는데 지인이 빌려준 책을 읽고 단숨에 팬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오히려 지인보다 열심히 사 모으며 역으로 내가 빌려주는 단계가 되기까지... 나에겐 '안드레아스 그루버'도 조만간 애정 하는 작가로 책을 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시리즈의 전작인 <여름의 복수>도 너무 궁금하다. 다음 책은 <겨울의 복수>일까? 그다음 계절인 봄에는 용서하기를 바라며...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죽고... 세상은 회전목마처럼 계속 돌아간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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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
전건우 지음 / 엘릭시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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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동안 다른 책을 읽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아 전에 사둔 전자책을 꺼내들었다. 이웃님들이 재미있다고 했던 기억이 나 <소용돌이>를 읽기 시작했다. 결국엔 중간에 멈추지를 못하고 늦은 밤까지 읽고 말았다.

죽음을 찍어서 파는 사진작가인 민호는 어느 날 옛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초등학교 동창인 유민의 죽음.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그날을 떠올리며 또다시 광선리로 향했다. 어린 시절 독수리 5형제로 칭하며 함께 어울렸던 상처가 있던 아이들, 부모의 이혼 후 외할머니 집에서 방학을 보낸 민호,전교 일등, 전교 회장에 부잣집 도련님이었지만 아픈 가정사가 있던 창현,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수돗가에서 허기를 달랬던 명자, 먹는 걸 좋아하고 힘이 센 길태, 양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했던 유민은 30대가 되어 죽음을 찍는 사진 기사, 지방대학 시간 강사, 술집 종업원, 조직폭력배, 죽은 유민은 학교 소사로 입에 겨우 풀칠한 할 수 있는 신세였다. 25년이 지난 사건이지만 그날의 여파로 다들 힘들게 살고 있었다. 그리고 유민이 죽었다. 친구들이 다시 찾아간 광선리는 공사 문제로 시끄러운 상태였고, 그들이 돌아오자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그 죽음은 누가 봐도 섬뜩할 정도로, 물이 없는 곳에서 익사체로 발견되는데...

처음엔 제목만 듣고 이토 준지의 <소용돌이>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티븐 킹의 <그것>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과거와 마주하며 다시 만난 친구들의 우정을 그렸다는 게 공통점이라서 그럴 것이다. 그나마 <그것>의 친구들은 사건을 거의 잊다시피 하며 나름 성공도 하고 평범하게 지냈지만(그랬던 걸로 기억하지만) <소용돌이>의 친구들은 그날의 사건의 공포와 죄책감으로 평범하게 사는 삶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어린 시절엔 그래도 순수해서 무모한 용기로 여차여차 물귀신과 페니와이즈를 이길 수 있었다면, 어른이 된 지금은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으며 감당하기 어려웠던 일이기를 알기에 더욱더 힘들기만 하다. 물론 둘 다 해피엔딩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용돌이>와 <그것> 중에 <소용돌이>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스티븐 킹의 전개 방식과 이래도 되나 싶은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 맘에 안 들었던 이유가 아마도 가장 클 것이다. 그리고 어디 피에로 모습을 한 악마 따위가 한이 서린 물귀신을 이길 수 있겠냐 말이다. 어느 공포 사이트에서 읽은 얘기였는데 다른 귀신들은 그래도 굿을 하던 뭘 하던 정성을 들이면 봐주는 시늉이라도 하지만 물귀신은 알짤없다고... 괜히 끈질긴 사람을 물귀신에 비할까.

공포 이야기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재미있어 한다. 혹자는 과거 경험의 유전 결과라고도 하던데 예를 들어 누군가 산에서 호랑이를 만났다고 하자. 그 사람은 호랑이가 너무 무서웠지만 어쩌다가 호랑이를 물리치고 가죽을 벗겨 마을로 돌아간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명예를 높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앞으로 닥칠지도 모를 무서운 상황을 이야기를 통해 예행연습을 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윈윈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아마도 우리는 무서운 이야기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믿거나 말거나지만 꽤나 신빙성은 있어 보인다.

요즘은 예전처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듣던 '전설의 고향'에서 들을 법한 이야기를 좀처럼 들을 기회가 없다. 세상이 워낙 흉흉해서 귀신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으니까. 그래서 추억 삼아서라도 이런 이야기를 만나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그런 중에 알게 된 전건우 작가님. 호러 미스터리 장르에서 오래오래 재미있는 무서운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기를...

 

 

 

"신기하네. 변하고 사라지는 게 수두룩한데 이런 아이스크림은 그대로야. 그리고 우리는 또 이렇게 둘러앉아서..."

내가 말했다.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분기에 한 번이라는 헛된 약속을 잡기는 싫었다. 살다 보면 알게 된다. 그런 약속이 얼마나 덧없는지. 대신에 이 세상 어디엔가 한 번쯤 다시 만나고픈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위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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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이에몬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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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이에몬>은 일본의 유명한 괴담 중에 하나인 요쓰야 괴담을 각색한 이야기라고 한다. <우부메의 여름>도 그랬고 교고쿠 나쓰히코는 괴담을 다른 이야기로 재생산하는 걸 잘 하는 것 같다.

서서히 기울어가는 다미야 가의 이와는 결혼에 관심이 없다. 아름다운 여인이었으나 천연두를 앓고 추한 외모로 변해버린다. 사람들은 도도했던 이와에게 동정과 멸시를 보내자 외모에 의연했던 이와는 자격지심에 성격이 괴팍해진다. 한편 하급무사 이에몬은 외모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 이와와 결혼을 결심하고, 결혼을 했기에 아내를 사랑한다. 이토 기헤이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멋대로 처녀를 납치하여 능욕하는 인간이다. 이토는 이와와 이에몬을 갈라놓기 위해 수를 쓰는데...

한마디로 이토는 천하의 나쁜 놈이고, 이와는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쳤으며, 이에몬은 그런 그녀를 우직하게 사랑한다. 다만 보통 생각하는 사랑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지만... 이에몬이 조금만 더 살갑게 대하고 이와에게 다가갔더라면 두 사람에게 그런 비극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부부 사이에는 예의를 갖춘 솔직한 대화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래도 이 세 사람은 그나마 자신의 뜻대로 해석하고 움직였다면, 우메는 이토에게 능욕당하고, 이에몬을 사모하나 진정 사랑받지 못하고 끝내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만다. 한순간도 그녀는 행복하지 못했다. 이와보다 우메가 한 많은 요괴가 되는 게 더 어울릴 듯...

교코쿠의 책을 읽으면 실타래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등장인물도 적지 않고(일본 이름이라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특징을 적지 않으면 매번 헷갈린다. 나만 그런가?) 이야기의 떡밥도 꽤 많이 깔아놓아서 아무 생각 없이 읽다 보면 점점 실타래가 엉키는 느낌이 든다. 점점 그렇게 빠져들다가 실밥 하나를 건드리면 그동안의 이야기는 시원하게 풀린다.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따뜻한 에도시대 이야기를 그리는 미야베 미유키와는 또 다른 매력이다.

"이와 님. 당신은 훌륭한 분입니다. 강해요. 틀리지도 않았습니다. 틀리지는 않았지만 옳지도 않지요. 당신은 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잘 모르십니다. 자신은 아프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은 아플 수도 있어요. 당신이 아프지 않더라도 옆에서는 아프겠다고 생각한답니다. 분명히 당신이 말씀하시는 대로 동정과 경멸은 같은 일. 가엽게도나 꼴좋게 됐다나 같은 뜻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 켕기는 데가 있으니 경멸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동정이라도 원한다 - 그런 놈들이 많이 있습니다."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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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히어로즈
기타가와 에미, 추지나 / 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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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일곱 살짜리에겐 슈퍼 히어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거기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은 정신과에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중에서

 

배트맨, 슈퍼맨, 아이언맨... 어쩌고저쩌고 맨들과 원더우먼, 블랙위도우 같은 슈퍼 히어로들이 주구장창 쏟아지는 요즘이다. 너무 많아서 이젠 이름조차 못 외울 정도로... 이렇게 히어로가 판을 치는데 내 인생을 구해줄 영웅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그 영웅의 이름은 로또? (로또 1등을 기원합니다!!!)

누구의 인생이든, 평생에 히어로 한 명쯤은 존재한다. 특징 없는 외모에 '다나카 슈지'라는 평범한 이름을 가진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평범하게 살고 있다. 우연히 편의점 알바 동료에게 '히어로즈'의 일주일 알바를 제의를 받는다. 알바는 무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만화 <톤 앤 톤>의 원작자인 도조 하야토를 히어로 만드는 걸 도와주는 일이다. 일주일간의 아쉬운 아르바이트 후에 삼 퍼센트의 합격률을 뚫고 '주식회사 히어로즈'에 입사하는데...

라이트노벨(가벼운 소설이라잖아)이라 그런지 가독성이 장난이 아니다. 한번 보면 빠져들고 만다는 막장 드라마도 아닌데 쉴 새 없이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동안 라이트노벨이라는 장르는 약간 덕후스럽고(덕후를 비하하는 건 절대 아님), 막장과는 색깔이 약간 다른 과한 설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편견을 가볍게 무너뜨려주었다(그래서 라이트노벨이라 부르는건가?). 가볍게 읽을 수는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다. 한때 잘 나갔던 슈지가 약간의 오해 때문에 삶이 무너지고 버스조차 탈 수 없게 되지만 그가 도조 하야토를 도와주면서 자신도 누군가의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뛰어난 재능도 없는 평범한 사람도 히어로가 된다는걸...

 

"할아버지, 있잖아... 내 인생 첫 히어로는 맨손으로도 매미를 잡는 할아버지였는지도 몰라." p.296

 

내 인생의 첫 히어로는 누구였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의 부모님이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눈이 새하얗게 내리던 날, 내 동생과 난 방 안에서 투닥거리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잠시 후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엄마를 따라 나간 곳에서는 아빠가 아빠 키보다 더 큰 커다란 눈사람 옆에 환하게 웃으며 서계셨다. 빨간 고무장갑을 낀 채로... 우리 남매는 "우와~" 연신 감탄을 연발했다. 엄마와 아빤 우리를 즐겁게 해주시려고 두 손을 호호 불어가며 무거운 눈덩이를 굴리셨다. 아마 두 분도 동심으로 돌아간 듯 신나셨겠지. 세상에서 가장 멋졌던 우리 부모님. 시간이 지나 그분들이 평범한 걸 깨닫고 점차 실망하며 다른 히어로들을 찾아다녔지만 내 인생 가장 멋진 히어로는 아직도 나의 부모님이다. 밤톨군에게도 그런 멋진 히어로가 되고 싶다. 우린 히어로가 필요하지만 또 누군가의 히어로이기도 하니까.

 

 

"즐겁게 일하고 대가를 받을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일입니다. 대가는 꼭 힘든 일에만 지불되는 것이 아닙니다. " p.68

"재능이란 대체 어떤 형태를 하고 있을까요. 한 번쯤 제 눈으로 보고 싶군요."
희한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미치노베 씨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어쩌면 시가를 입에 물고 의자에 앉아 있는 날개 달린 남자일지도 모릅니다." p.105

"인간은 생각하기를 포기한 순간, 인간이 아니게 됩니다." p.140

"만약 성공을 가는 지름길이 있다면 방법은 딱 한 가지 일겁니다."
"뭐죠?"
나도 모르게 테이블 위로 몸을 내밀어 물었다.
"멀리 돌아가는 겁니다."
미치노베 씨는 깔끔하게 잼을 바른 토스트를 한 손으로 들더니 생긋 웃었다.
"성공으로 가는 유일한 지름길은 멀리 돌아가는 것입니다." p.176

"잘 안 맞는 서랍을 억지로 비틀어 열자 그 안은 전혀 빛바래지 않은 것들로 가득했어. 빛바래기 전에 꺼내서 정말 다행이야."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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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 여덟 가지 테마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앙투안 콩파뇽 외 지음, 길혜연 옮김 / 책세상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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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은 들어본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여덟 가지 테마로 정리한 책이다. 내가 처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을 알게 된 건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라는 영화에서였다. 소년 이츠키가 짝사랑하던 소녀 이츠키의 그림을 넣어둔 책이 바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였다. 그때는 이 책이 실제 하는 책인지도 몰랐다. 영화랑 책 제목이 참 잘 어울린다고만 생각했을 뿐... 후에 알았을 때, 호기심이 생겼으나 3000쪽에 가까운 분량이라는 얘기에 망설였다. 앤 후드의 장편소설 <내 인생 최고의 책>에서도 이 책을 다 읽은 폴라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책이 도전이 되는 건 마찬가지인가 보다.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에 중간중간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문장들이 적혀있는데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소년 이츠키는 이 책을 다 읽었을까?

"불행한 일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려면 중병이 들거나 한쪽 다리가 부러져야만 한다는 것이다>"라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동생 로베르 프루스트가 한 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세 번째 가능성을 빠뜨렸다. 바닷가에서 햇볕을 쬐며 혹은 프루스트 식으로는 자신의 고요한 방 안에서 달콤한 독서를 할 수 있는 더운 계절, 여름휴가가 그것이다. 이때 시간은 갑자기 속도를 늦추고 팽창하다가, 급기야는 증발해버린다. 그리고 양손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만 남는다. p.9

프랑스의 독자들은 이 책을 고요한 방 안에서 독서를 할 수 있는 더운 계절인 여름휴가에 만났겠지만 나는 이 책을 가을에서야 만났다. 나의 여름휴가는 늘 어린이집 방학과 겹치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책을 못 읽기 때문에 지금이 아마 가장 좋은 때 일 것이다.

소설가, 전기 작가, 영화인, 교수, 정신분석학자 등 다양한 경험을 가진 여덟 명의 평론가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각자가 맡은 주제로 프루스트와 그의 책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책 속의 세계에 대한 시간은 어떠한지, 등장인물의 특징과 저자인 프루스트와 사교계와의 관계, 어떤 사랑을 하는지, 어떤 상상의 세계인지, 어떤 장소가 나오고 그 장소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프루스트가 영향을 받고 준 철학자들은 누구인지, 그가 사랑하는 예술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5분만 봐도 영화 한 편을 다 본 것 같은(가끔씩은 그런 편이 더 나은) '출발 비디오 여행'같은 글은 아니다. 여덟 명의 평론가들은 프루스트와 함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읽기를 권한다.

친절하게 다각도로 분석해주지만 쉽지만은 않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봐야만 이 책의 진가를 알게 될 것이다. 분명 쉬운 책은 아니지만 여덟 명의 셰르파들과 함께 정상에 올라보면 그땐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읽은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다는 그 이유를...

 

 

길어 보이지만 짧은 작품들이 있다. 프루스트의 긴 작품이 내게는 짧아 보인다." 장 콕토는 이런 말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회상했다. 프루스트의 진정한 독자들이 모두 그렇듯이, 그는 끝까지 다 읽으면 처음부터 다시 읽는 사람들 축에 속했다. 이 책은 그들로 하여금 거기서 벗어나고 싶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p.26

흥미로운 것은 어머니가 영원히 죽지 않은 하나의 영토를 프루스트가 발견했다는 것이다. 죽었지만 불멸의 존재로 남아 있는 할머니를 통해서, 또한 소설 속에서는 죽지 않는 어머니라는 인물 안에서 그가 어머니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사라져서 어딘가로 자취를 감추지만, 어쩌면 여기 책갈피 뒤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는 문학이 어떻게 운명에 복수하는지 알게 된다. 죽음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문학은 우리가 죽지 않는 곳이다. p75

그는 평생 어떠한 그룹에 ‘소속되지‘ 않으려 했고 동화되는 것을 피했다. 그에게 있어 딜레마는 햄릿의 딜레마인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소속되느냐, 소속되지 않느냐‘였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태도로, 그에 따르면 소속을 전 생애의 조전으로 만든 프랑스 사회를 비난했다. p.204

프루스트는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통과하고 넘어서며 자신의 뒤를 잇는 문학을 위태롭게 지방으로 분산시키고 있다.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 중심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타인과 자기 자신의 생상을 절개하고 있다. 가학적으로, 빈정거리며, 정확하게. 그리고 ‘속하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을 끊임없이 훼방한다.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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