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엄마와 인도 여행이라니! - 세 여자의 ‘코믹액숀’ 인도 방랑기
윤선영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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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엄마와 인도 여행이라니! 게다가 골드미스 이모까지? 책 제목에 놀라고 책 소개 글을 읽고 놀라고... 세 여자의 코믹 액숀 인도 방랑기라는데 나는 코믹보다 걱정이 앞섰다. 아무래도 우리 엄마와 내가 여행하는 상상을 하고 말았으니까. 나도 그리 좋은 성격은 아니지만(욱하면서 소심하다. 그러니 이불 킥은 이제 내 인생의 일부) 울 엄마는 세상 여리고 순수하다고 본인 말로는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까칠하고 고집 세고 예민한 성격이라(엄마가 나 블로그 친구 해놨던데 이거 보면 뭐라 하시겠지?) 함께 여행하는 게 두렵다. 얼마 전에 "엄마! 나 미용실에서 그러던데, 내 머릿결 엄청 튼튼하대. 엄마 닮아서 그런가 봐!" "니 머릿결이 뭐가 좋냐? 엄마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대답을 들었다. 진짜 이런 엄마랑 여행을 하라고? 그런데 저자는 진짜 엄마랑 여행을 갔다고? 오~ 부디 내가 상상하는 그런 일은 없기를...

삶의 목표가 여행인 저자는 좋은 것을 보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순간들을 마주하던 어느 날 엄마가 생각났다. 그리고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로부터 10년 남짓의 시간이 흐른 후 여행을 하고 들어오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우리 같이 여행 가자."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이신 엄마, 한 달 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어디 가고 싶은지 생각해봤어?" "인도!" 1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놀랐다. 국내 배낭여행조차 해본 적 없는 방년 58세, 55세 골드미스 이모가 인도 여행에 함께 하기로 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녀들과 함께 캘커타, 바라나시, 맥그로드 간즈를 갔다.

짐을 싸는 과정에 골드미스 이모의 커피포트, 세숫대야, 고무장갑 등의 짐을 보며 빵 터졌다. 억척스러운 한국 아줌마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것도 다 자신보다는 언니와 조카를 생각하며 챙긴 게 아닐까 싶어 짠하기도 했다. 처음엔 모든 게 낯설었던 나라, 인도에서 음식을 시도하고, 사람들과 부딪히며 변화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보통 나이가 들면 편안한 것을 추구할 거라 생각했다. 젊은 사람이 가도 결코 편할 것 같지 않은 인도에서 엄마는 관광객에서 현지인으로 변화한다. 저자보다 더 적극적이고, 현지인들을 스스럼없이 대하고, 여행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저자가 느끼는 감정이 오롯이 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번 여행에서 '엄마와 딸'의 여행일 뿐만 아니라 58세 박귀미씨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여행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여행지에서는 새로운 나의, 그리고 함께 간 사람의 모습을 만나곤 한다. 엄마와 여행을 가면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을까? 서로를 마주 보고 이해하는 날이 올까? 엄마와 여행은 나에게 아직은 두려움이다. 엄마가 나를 비난하는 것보다 내가 그런 엄마에게 등을 돌려버릴까 봐... 엄마에게 쓴 뿌리가 많았다는 걸 새삼스레 발견하며 엄마가 다시 짠해진다. 아픈 아빠 병수발하고 경제까지 책임지며 살아온 엄마에게 내가 가지는 감정이 고작 이건가 싶어 나에게도 화가 난다. 이 모녀처럼 서로를 보듬고 사랑만 할 수는 없는 걸까? 엄마에게 전화해서 여행을 가자고 하는 것도, 그리고 그런 전화를 할 딸이 있다는 것도 마냥 부럽기만 하다. 에필로그 앞에 있는 박귀자 여사님의 여행 후기 글에서 이번 여행이 그들에게 얼마나 행복했고, 좋은 추억을 되었는지 느껴진다.

에필로그에서 다음 여행에 대한 예고편처럼 필리핀이 등장한다. 이처럼 경쾌하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세 여자의 이야기라면 필리핀 편을 안 읽을 이유가 없다.

 

 

인도에 처음 갔을 때 모든 게 비현실적이라 놀랐다. 나의 상식과는 전혀 맞지 않는 일들이 버젓이 눈앞에서 일어났다. 신기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곧 깨달았다. 내가 생각하는 상식이란 그저 내게 익숙한 것들이라는 것을. p.40

사실 나는 엄마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항상 엄마는 엄마라고만 생각했다.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에 대해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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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독 레볼루션 - 무자본, 무스펙, 고졸의 게임 폐인, 레드오션 창업으로 300억 신화를 쓰다
전종하 지음 / 미래의창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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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에 적혀있는 문구, '스물한 살에 800만 원으로 시작한 '더 반찬' 8년 만에 300억 매각, 최연소 대기업 상무까지 청년 CEO, 전종하 스토리'에 관심이 갔다. 재작년에 '더 반찬'이란 이름을 회사 동료로부터 들었다. 퇴근해서 허겁지겁 저녁거리를 만들어 겨우 먹는다는 내 얘기를 듣고 안쓰러움에 소개해주었다. 한번 듣고도 이름이 콕 와닿아서 잊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부터 우리 동네 반찬가게 사장님과 친해져서 '더 반찬'은 이용할 수 없었지만...

난 성공 스토리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흥미가 생겨서 읽으면 '난 이런 사람이라, 이렇게 잘 된 거야!'라고 잘난 척을 하거나 이래라저래라 꼰대질 가득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난 척과 잔소리 때문에 읽다가 책을 덮어버린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최근에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지인 때문이다. 워낙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그들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내가 무언가를 돕고 싶지만 뭐라도 알아야 하겠지 싶은 마음에 읽었다. 이번에는 잘난 척을 참으면서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술술 잘 읽혔다. 중간에 덮을 이유가 없었다.

수유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부모님이 걱정이 되어 일손을 돕고, 혼자 머릿속으로 계산해서 남는 게 별로 없다 싶은 날에는 떡볶이를 사양했던 소년. 중학교 때 공부 좀 해볼까 마음먹고 열심히 했지만 69점을 맞고 공부 DNA가 없다고 결론을 내고 공부로 성공하는 걸 접었다. 그의 재능은 리니지를 만나고 폭발을 했는데 고등학생 군주로 유명인이 되었다고 한다.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리더십을 키운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실수로 성주 자리를 빼앗기고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라는 고민과 함께 게임을 접기로 한다. 아이템을 정리하며 쥔 5천만 원은 그의 사업 종잣돈이 된다. 부모님의 가게가 망한 덕분에(?) 생각보다 일찍 창업의 길로 들어선다.

고등학교 갓 졸업하고 대단한 스펙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현실감각은  남달랐다. 신문을 꾸준히 가까이하고 읽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읽어냈던 거다. 해당 업계에서 1,2,3위를 찾고 그 업체 수준의 80% 이상이 되면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1년 동안 이를 악물고 준비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픈. 전화 한 통 오지 않는 2주가 흘렀다. 그래도 투정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다행히 주문과 동시에 입소문이 나서 15개월 만에 월 매출 1억을 달성한다. 그리고 '더 반찬'은 매년 성장하여 월 매출 25억이 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을 한다.

군주는 했지만 사장은 처음이라 우여곡절도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고생했다고 하지 않는다. 즐기고 일을 했고, 계획에 따라 정해놓은 원칙을 충실히 수행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직원들을 이끌면서 낮아지려고 했던 게 글에서 느껴졌다.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그리고 자신감에 차 있다. 고졸에 무스펙이었던 그가 이루어낸 놀라운 결과물 때문이 아니라 이 사람의 매력인 것 같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대졸에 고스펙자들이  고시원에서,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현실이 참 안쓰러웠다. '더 반찬'같은 청년 기업들이 많아지길 바라고, 또 대기업만 잘 나가는 게 아니라 단단한 중소기업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더 반찬'을 매각하고 올해 새로운 사업을 오픈한다고 하던데 또 다른 성공이 있길 기대해본다.

 

 

‘언더독‘은 경기에서 승산이 없는 선수를 일컫는 말이다. 패색이 짙은 사람, 승률이 매우 낮은 사람. 즉 ‘질 것이 뻔한‘ 선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나는 언더독이었지만, 난 스스로를 언더독이라 여기지 않았다. 남들은 모두 내가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승산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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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시 - 힘 빼고, 가볍게 해내는 끝내기의 기술
존 에이커프 지음, 임가영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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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은 시작하는 달이다. 그리고 매해 12월은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한 결과물들을 보며 후회하는 달이다. 사실 끝이라도 내는 것들은 그나마 다행인 거다. 1월에 의욕을 불태우며 시작했다가 중간에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난 프로시작러이자 이 책에서 말하는 만성 시작 환자 중에 한 사람이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흔한 거 보면 결코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목표를 이룬다는 게 그토록 힘든 거라면 목표를 이루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 거지? 정말 독한 몇 퍼센트의 사람들만 가능한 건가?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떨 때는 나도 쉽게 잘 달성하고, 어떤 때는 어쩔 수 없이(?) 포기할 때가 있다. 그 차이는 도대체 뭐지?

"내가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무언가를 시작한다. 그러다 신이 나서 꿈에 부풀어 오른다. 처음에는 자신감도 넘치고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완전히 감을 잡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꿈이 더 커지고, 점차 완벽함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난데없이 나는 그 일에 적임자가 아니라는 기분이 엄습한다. 그 일을 그토록 완성도 있게 해낼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점점 꿈은 사라지고 목표도 잊히고 만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지금까지 언급한 일들은 상상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정작 지금까지 내가 시작한 건 아무것도 없다." p.36

이 글을 읽고 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처럼 진짜 누가 내 머릿속에 도청장치를 해둔 것만 같았다. 아니면 나도 모르는 자아가 글을 썼거나... 이건 정말 백 퍼센트 나의 이야기였다. 심지어 불과 한 달 전의 일이었다. 한 달 전에 나는 의욕에 넘쳐있었으며 그것을 해보기 위해 계획을 짜고, 지인들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나라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잘 하고 싶다는 생각에 점점 완벽을 추구하고, 결국엔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로 결론이 났다. 그리고 시작조차 하지 않은 채 좌절을 맛봐야만 했다. 이 글에 의하면 나는 완벽주의자였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완벽주의는 필요하지 않다. 목표를 위해 가장 중요한 날은 첫째 날이 아니라고 한다. '더 이상 완벽하지 않은 그날'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것도 쉽지가 않다. 보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고 불편한 날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을 넘어설 힘을 얻고, 그 힘으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야 비로소 끝까지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힘을 얻어야 할까? 일단 나의 목표가 너무 거대했던 건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거대했다면 절반으로 낮춰 잡고, 마감일이 빠듯하다면 늦춰보자. 혹시 마감이 없던 일이라면 마감을 잡아야 한다. 만약에 미룰 수 없는 일이라면 일을 단순화할 방법을 찾아보자. 그리고 내가 어떤 동기로 움직이는지 점검해야 한다. 난 무조건 당근형이다. 채찍으로 때려봤자 난 채찍을 들고 있는 주인의 손을 물고 그대로 도망가 버린다. 재미있게 계획대로 움직이다가도 더 재미있는 걸 발견하면 어느새 그걸 하고 있는 나를 제지해야 한다. (청소가 극도로 귀찮았던 학창시절, 시험기간만 되면 청소가 그토록 재미있었던 건 역시 시험공부보단 청소가 재미있었던 것!) 나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주문들의 진짜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 나에겐 '끝을 내지 않을 거면 시작도 하지 마라!'라는 포기 주문이 있다(이건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을 며칠 땡땡이치고 놀다가 엄마에게 들켜 혼났을 때 들었던 말이다. 엄마는 나에게 인생의 가르침을 주고자 그날로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게 하셨다). 끝을 내라는 소리인데 반대로 '나에겐 끝을 낼 자신이 없으니 시작조차 안 하겠다'로 귀결된다. 그래서 시작하기 전에 계획을 완벽하게 세우고, 그 계획에 질러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나 할까. 그리고 결승선으로 달려가 테이프를 끊는 즐거움을 누려보자!

누군가가 그랬다. 사막을 건널 때는 지평선 끝을 보며 걷는 게 아니라고 했다. 내 발끝을 보며 한 걸음 한걸음 걷고, 때때로 뒤를 돌아보며 걸어온 길에 대해 응원을 해야 한다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르는 사막을 걷거나, 남극을 횡단하는 일도 아니니 까짓것 즐기면서 결승선을 달려가보자! 나 같은 프로시작러들을 위한 <피니시>. 당신도 나와 같다면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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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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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아내가 죽은 아서 페퍼, 그날부터 아내와의 일상만을 추억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할아버지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매일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하고, 아내가 좋아했던 양치식물에 물을 준다. 하루를 사는 것 대신에 하루라는 시간에 갇혀 1년을 살았다. 40년간 함께 한 아내를 떠나보내고 1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아내의 유품들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아서. 아내의 옷장 속 부츠 속에는 자그마한 하트 상자가 있었다. 열쇠수리공이었던 아서는 자물쇠를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자그마한 참이 여러 개 달린 황금 팔찌가 있었다. 아내의 취향과는 다른 정교하고도 화려한 게다가 비싸 보이기까지 한 팔찌의 참들 중에 코끼리 참을 살피자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아서 페퍼는 호기심이 생겨 전화를 건다. 그곳은 인도였다. 그리고 이 전화 한 통화로 아내가 자신이 모르는 시간을 살았음을 알게 된다. 참이 가져다주는 이야기는 다른 참으로 연결되었고, 아내의 과거를 하나둘씩 알아가는 동안 아서는 혼란스러워진다. 아내는 자신과 결혼하여 행복했을까? 

먼저 떠난 아내를 하루하루 그리워하는 남자가 아내의 과거를 밟아 떠나는 여행이라니... 그녀의 참들이 안내하는 여행에서 아서는 그가 알았던 아내가 과거에 화려하고 흥미진진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에 놀란다. 명탐정 코난의 베르무트의 대사인 'A secret makes a woman a woman.(비밀은 여자를 아름답게 만든다.)'이 떠올랐다. 그녀가 의도적으로 숨긴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간직한 비밀이 그녀를 더 사랑스럽게 만들었고 그녀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한다. 참들은 그에게 혼란을 주는 만큼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박제된 듯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호랑이를 만나기도, 낯선 이의 집에서 잠을 청하고, 그가 미쳐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게 한다. 그리고 아내의 비밀이 그가 소중하게 생각한 행복했던 아내와의 추억을 빛바래게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예전에 엄마, 아빠의 젊은 시절의 앨범을 본 적이 있다. 나에겐 늘 엄마와 아빠이기에 내가 모르는 그들의 시절은 살짝 오글거리기도 했다. 줘도 못 입을 것만 같은 통 큰 스트라이프 나팔바지에 잠자리를 연상시키는 색이 연하게 들어간 선글라스는 얼마나 어색하던지... 엄마는 무조건 아빠만 사랑하고, 아빠는 무조건 엄마만을 사랑했을 거라 믿었던 어린 시절에 아빠와 나란히 찍은 여자들은 다 미워 보였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아무리 친구 사이라고 해도 그 당시 나는 융통성이 1도 없어서 울며불며 난리를 쳤더라는). 엄마와 아빠는 서로가 첫사랑이라고 맨날 이야기하셨으니까. 나중에 밤톨군도 그럴까? 꺽정씨와 나는 심지어 서로가 첫사랑도 아닌데... 서로가 모르던 서로의 과거를 마주했을 때 배신감으로 남게 될까?

실은 나도 아서 페퍼와 살짝 비슷한 경험이 있다. 그의 책장과 나의 책장도 우리처럼 결혼을 해서 한살림을 차렸을 때 구석에 비닐에 쌓인 노트를 발견했다. 랩으로 어찌나 꼼꼼하게 감아놓았는지 호기심이 동했다. 몇 겹으로 된 랩을 풀고 보니 그건 꺽정씨가 나를 만나기 전에 쓴 일기들이었다. 그의 꿈과 진로에 대한 글들도 있고, 무엇보다 나의 눈길을 잡아 끈 건 그의 사랑 이야기였다. 하~ 가슴을 콩닥거리며 흥미진진하게 무엇이든 받아들이겠다며 마음을 먹고 읽어나가는데... 이런 별거가 없었다. 뭐야. 마음만은 카사노바의 화신이었던 꺽정씨의 유치한(원래 사랑은 유치한 거니까) 고백들이었다. (왜 랩으로 그렇게 칭칭 감아놓은 건지...) 그의 과거를 몰래 훔쳐읽은 죄로 우리는 서로의 흑역사를 공유해야만 했다. 그래도 그것들이 지금의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건 현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믿기 때문이리라. 참고로 난 비밀을 만들고 싶어도 표정에 다 나타난다. 게다가 밤에 잠꼬대까지 해대기 때문에 비밀이란 있을 수 없다. 궁금한 걸 물어보면 상세히 설명을 해준다며... 이런!

아서 페퍼는 아내의 빈자리만 지키던 껍데기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선택했다. 이제 그는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떠나간 이들은 남은 이들이 머무르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을 테니까...

 

 

내가 보기에 사별한 사람들은 둘 중 하나야. 과거를 꽉 움켜잡고 있거나, 훌훌 털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거나. 저 빨간 머리 여자는 후자야. 항상 바쁘게 지내더라고." p.42

지금은 그 일이 후회스러웠다. 아이들을 키운 뒤로, 그들은 함께 새로운 곳들을 가보고 새로운 경험들을 했어야 했다. 하고 싶은 일들을 해볼 기회를 잡았어야 했고 함께 삶의 지평을 넓혔어야 했다. p.152

"고맙긴요. 길 잃지 마세요. 낯선 사람하고 얘기하지 마세요. 항상 밝은 쪽을 보는 걸 잊지 마세요. 그 참들이 행운을 가져다줄지도 몰라요." p.223

아서는 게가 있던 자리를 보았다. 어쩌면 나도 이 웅덩이에 갇혀 있었던 건지 몰라. 그가 생각했다. 비록 두려운 미지의 세계일지라도, 나도 바라도 나아가야 해. 그러지 않으면 말라 죽어버릴테니까.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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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가
한창욱 지음 / 정민미디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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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꽃송이님의 서평 이벤트로 받은 책이다. 책 제목을 보고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의 심리를 파헤치는 책일 거라고 생각하고 신청했는데! 그런데 목차를 열어보니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은 행동을 바로잡는 인생 반전 필살기 프로젝트다. 표지를 보면 상어떼가 나타나서 모두 상어와 반대로 수영하는데 한 사람은 상어떼를 향해 수영한다. 수영팬티가 벗겨졌기 때문. 표지만 보고 한참을 낄낄거리며 웃다가 나도 별반 다르지 않겠다는데에 생각이 미쳤다. 물론 표지의 주인공처럼 수영팬티 때문에 상어떼로 돌진하지는 않겠지만 죽을 듯이 수영하는 가운데도 팬티 생각은 떠나지 않을 테니까.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큼이나 쪽팔리지 않도록 얼굴을 가리던가 아래를 가리던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듯하다. 알게 모르게 나도 팬티에 집착해서 상어떼로 수영한 적은 없는지 떠올려본다.

<나는 왜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가>는 대의를 위해 사소한 것을 희생시켜라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원하는 삶으로, 가치 있는 삶으로, 즐거운 삶으로, 행복한 삶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백세 인생이니 어쩌니 해도 생각보다 인생은 짧다. 모두가 백세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의 장점을 찾는 것도, 또 그것을 개발해 나가기에도 부족하다. 아직까지도 장점을 찾는 중이니 죽기 전에 개발은 할 수 있을런가.

책을 읽으면서 내 문제점을 만났다. 난 과정 지향적인 사람이라서 과정이 즐거워야 하고, 또 과정을 달성하기 위한 작은 사항들을 하나하나 점검해야 맘이 편하다. 그런데 하다 보면 변수가 생기고 그래서 원래 목표로 했던 것이 어느새 사라지고 다른 것에 열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예를 들면, 한자 공부를 할 때 한자검정능력시험 2급이 목표라고 치자. 그럼 2급 문제집을 사서 거기에 있는 한자들을 외우고 공부하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난 8급 문제집을 사고, 한자 카드를 하나하나 만든다. 심지어 아는 한자까지도... 그렇게 공부해서 8급이 완벽하게 숙지됐다고 생각할 때 7급을 공부하고, 또 6급을 공부한다. 성실하게 차근차근 공부하는 것은 칭찬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변수가 발생한다. 한자 카드 만들다가 서서히 카드 만드는 게 지겨워지고, 외운 한자도 까먹고, 외워야 할 한자가 많아지면 짜증이 발생한다. 2급을 따야지~라고 마냥 생각할 뿐 시험 날짜는 관심도 없다. 내가 자신감이 드는 때 시험도 접수할 거니까. 매번 이런 식이니 성공보다 실패가 많다. 그래, 그동안 과정 지향적으로 살았다면 남은 인생은 목표 지향적으로도 살아보자.

그런데 책의 내용 주에 한가지 좀 집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잘못된 관계는 청산하라'라는 챕터에서 중독성의 예를 든 게 아무래도 못마땅하다. 매 맞는 아내가 남편과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 또한 중독성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헤어지자고 말했을 경우에 목숨이 위험한 경우가 훨씬 많았고(실제로 헤어지더라도 보복하는 경우가 많다), 때리는 남자들의 특징 중 하나가 여자의 자존감을 파괴하기 때문에 좌절감으로 시도조차 못한다. 때리는 가해자가 나쁜 건데 맞는 행위나 아니면 가해자와의 관계에 중독된 것이 아니냐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잘못을 전가시키는 것 같아 불편했다.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문제가 심심치 않게 얘기가 나오는 시점에서 이런 예는 아닌 것 같다. 개정판이 나올 때는 부디 삭제를 부탁드리고 싶다.

책을 읽다가 <러브 액츄얼리>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그중에서 다니엘(리암 니슨)과 샘(토마스 생스터)의 이야기가. 정확하게 말하자면 샘의 사랑 이야기가 떠올랐다. 샘은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조안나를 좋아한다. 조안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던 중 조안나가 미국으로 떠난다는 소식까지 듣는다. 조안나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학기말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샘은 밴드로 출연해서 멋지게 연주를 해서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문제는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하나도 없다는 건데... 샘은 그건 진짜 사소한 문제라며 그날부터 드럼을 연습한다. 목표를 실행하는데 치명적인 걸림돌조차 사소한 문제라며 차근차근 연습하는 샘이 있다. 난 그보다 훨씬 사소한 문제들을 바위처럼 대하며 살아왔던 건 아닐까. 조약돌과 바위를 구분하며 내 인생을 원하는 대로 살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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