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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걸 - 노벨 평화상 수상자 나디아 무라드의 전쟁, 폭력 그리고 여성 이야기
나디아 무라드 지음, 제나 크라제스키 엮음, 공경희 옮김, 아말 클루니 서문 / 북트리거 / 2019년 4월
평점 :

작년 2018 노벨 평화상을 받은 수상자인 나디아는 코초라는 이라크 북쪽 지역에 있는 작은 야지디 마을 출생이다. 그녀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이며 그녀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며 평생 살 것이라고 믿었던 곳이다. 가난하지만 소박했던 공동체였지만 2014년 8월 수니파 무장단체 IS가 마을을 포기하면서 그녀의 믿음은 산산조각이 난다. 남자들은 끌려가 집단 학살 당했고 어린 소녀들과 젊은 여자들은 IS의 성 노예(사비야)로 잡혀간다. 사비야들은 IS 대원에서 또다시 다른 IS 대원으로 팔려가며 반복된 폭력을 겪는다. 《더 라스트 걸》은 나디아 무라드가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살다가 IS에 납치당해 성노예가 되고, 기적적으로 탈출하는 일까지 담은 이야기이다.
납치범들이 가축을 - 암탉, 병아리들, 우리 양 두 마리 - 훔쳐 간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채 2주가 흘렀다. 그즈음은 ISIS가 코초와 신자르 대부분을 점령한 상태였다. 뒷날 모든 코초 주민들을 학교로 몰아넣는 일을 도왔던 ISIS 무장 단체원이, 마을 여자들 몇몇에게 납치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어깨에 맨 라이플총을 흔들면서 말했다. "우리가 암탉과 병아리를 가져간 것은, 너희 여자들과 애들을 데려갈 거라는 경고였다. 숫양을 가져간 것은 너희 부족 지도자들을 데려간다는 뜻이고, 숫양을 죽인 것은 그 지도자들을 죽일 계획이라는 뜻이야. 그리고 어린 암양은 너희 소녀들을 뜻한다." ( p.28 )
나디아가 이런 읽을 겪었을 당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난 그곳으로부터 너무나 먼 곳에 떨어져 살았다. 뉴스로 그곳의 참상을 보았지만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IS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지적 호기심을 채웠을 뿐이다.
초가 포위된 뒤 처음에는 무슬림 이웃 몇 명이 음식을 들고 마을에 찾아와서, 우리의 아픔이 그들의 아픔이라고 말했다. 가슴에 손을 얹으며 "당신들을 보리지 않겠소."하고 약속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모두 우리를 버렸다. ( p.94 )
태어날 때부터 엄마 따라 교회를 다녔던지라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비유를 많이 듣고 자랐다. 사마리아인의 선한 행동과 제사장, 레위인의 위선적인 행동에서 대해서 말이다. 코초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단 한 명도 없었을까? 그건 사실이 아닐 거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건 양심이 아니라 어쩌면 양심을 지켜낼 수 있는 용기가 아니었을까? 비난하기는 너무나 쉽다. 내가 만약에 나디아의 이웃이었다면... 나는 과연 야지디를 도울 수 있었을까? 그 물음에는 대답할 수가 없다. 내 목숨보다 더 귀중한 밤톨군의 생명을 담보로 나는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을까.
"제가 유럽에 유학 갔을 때, 아, 이래 봬도 옥스퍼드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가장 신기했던 것 중에 하나는 흰옷을 입고 차를 타고 다니며 벌레를 죽이러 다니는 사람들이었지요. 등에 커다란 통을 메고 그들이 기숙사에 찾아오면 바퀴벌레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무슨 마법 같았다고 할까. 이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박 신부는 그가 갑자기 자신의 유학 시절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박 신부의 표정을 보며 민병대 장교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우린 말이죠. 같은 일을 하는 겁니다. 바퀴벌레를 박멸하죠. 살인자가 아닙니다."
"당신네들이 구덩이네 사람들을 몰아넣고 벌인 짓을 들었어요. 그, 그런데도 살인자가 아니라고?"
말투는 따지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개미 목소리처럼 자꾸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민병대 장교는 자신의 소총을 들어 보였다.
"예, 이게 등에 멘 소독약 통 같은 겁니다. 바퀴벌레를 죽이고, 불태워버릴 뿐이죠. 위생을 위해서. 알다시피 벌레들은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나오니까요. 우리나라 곳곳을 그 벌레들이 좀먹었습니다. 당신은 모르시겠죠. 지난 이백 년간 여기서 벌어진 일들을. 나라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죽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중에서)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장소는 다르지만) 민병대 장교가 하는 말이 자꾸만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사람이 어떻게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고 화를 낸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음은 애초에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는 걸 몰랐다. IS가 사람들을 참수하고 소녀와 여자들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것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서 그런 것임을... 하지만 여전히 이들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생명을 바퀴벌레 정도로 생각하며 학살하는 사람들도 인간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그런 사람들은 바퀴벌레라고 생각해야 할지 답하기가 힘들다. 지금도 IS의 치하 아래 오늘도 눈물 속에 죽을 수 없어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나디아의 말처럼... 나디아가 그런 사람들 중 마지막 사람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