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가본 내일의 도시 - 기술은 우리의 생활과 직업을 어떻게 바꿀까
리차드 반 호에이동크 지음, 최진영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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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수업 시간에 한 번 이상 꼭 그려본 내가 생각하는 미래. 그때 내 그림은 어땠을까? 다른 아이들 그림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돔형의 해저도시 속 화려한 건물들과 날아다니는 비행기 등을 그렸을 것 같다. 희망으로 가득 찬 미래 도시를 꿈꾸던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금의 나는 '미래'라는 단어 자체가 무섭기만 하다.

'인공지능', '로봇'이란 단어는 더 이상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나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었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불안하게 만든다. 아마존 물류 창고에 도입된 무인 시스템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일 것이다. 아마존 로보틱스라는 자동화 시스템으로 물류 창고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었다. 이젠 저 멀리 미국에서 굳이 예를 찾지 않더라도 로봇이 근무하는 곳은 널리고 널렸다. 산업화로 실업자가 된 런던의 공장 근로자들의 신세가 남일 같지는 않다. 로봇이 인간보다 더 우월해져서 인간을 지배하는 날을 두려워하곤 한다. 영화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 같은 미래도 무섭지만 당장 로봇이 인간만큼의 능력을 가져서 인간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가져가는 게 오히려 두렵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내는 로봇을 싫어할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 말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기계가 했어야 할 일을 인간이 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편하게 자동차를 타느냐 가마꾼의 노동력으로 이동하느냐의 차이처럼 말이다.

《미리 가본 내일의 도시》의 저자인 리차드 반 호에이동크는 4차 산업혁명이 앞서나가는 네덜란드의 미래학자다. 신기술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을 주제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9개의 챕터(헬스케어, 주거, 교통, 일, 교육, 에너지, 안전, 웰빙, 키워드로 미래를 읽다) 속 미래를 이야기한다. 한 챕터씩 읽다 보면 그동안 내가 미래를 얼마나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또는 갸우뚱거리며 그와 함께 내일을 기대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9개의 챕터 중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교육'이다. 아무래도 미래를 살아가야 할 아이의 부모이기 때문에 더 와닿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교육은 건강의 경제의 기반이 된다고 한다. 모두가 먼 미래를 바라보고 수준을 높여야 한다. 현재 구직 시 필요한 기술의 1/3이 필요 없어지는 시대가 5년 안에 찾아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필요한 것들도 있을 것이다. 수업 시간에 배운 것들뿐만 아니라 학교를 졸업 후에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유연하게 적응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난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하는 삶을 몸소 겪으면서 자랐으니까 말이다. LP, 테이프, CD, MD, MP3까지 다 보고 들을 수 있었으니... 지금도 수많은 것들이 하나씩 바뀌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패스트푸드의 셀프 계산대가 아닐까 한다. 아직까지는 셀프 계산대가 더 편하다는 느낌은 못 받고 있으나 대부분의 매장이 바뀐 듯하다. 하지만 젊은 축에 속하는 나 같은 사람은 딱히 그렇다고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얼마 전에 본 '박막례 할머니'가 이용하시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가고 싶어도 주문 못하는 가게라니... 아무도 어르신들에게 사용법을 알려주지 않았고, 기계는 주문을 기다려주는 여유도 없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성공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눈치로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라고 의문을 가져볼수 도 있지만 그건 아직 내가 젊기 때문이다. 내가 그분들의 나이가 될 때는 세상은 더 많이 변해있을 것이고, 내가 배우는 속도보다 세상은 더 많이 바뀔 테니까.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향해 도전하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적응하면서도 전문성을 갖춘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내일의 도시가 유토피아 일지 디스토피아 일지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시선에 따라 결정이 될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만 영유하는 곳은 결코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유토피아를 바라보는 사람도,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는 사람도 모두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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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돌아눕는 상상만으로도 서운해집니다 - 작은 몸짓 하나에도 헛헛해지는 마음에 대하여
오휘명 지음 / 문학테라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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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이 특이하다. 돌아눕는 상상만으로도 서운해진다니... 사랑에 빠진 연인이 한 침대에 누워 얼굴을 마주 보며 씽긋 웃는 상상을 해본다. 장난으로 한쪽이 돌아눕자 남은 쪽은 입을 삐죽거리며 서운해한다. 난 꺽정씨에게 늘 돌아눕기를 청했다. 그를 뒤에서 안은 채 양날개 뼈 사이 오목한 곳에 코를 박고 그의 몸 내음을 맡곤 했다. 이상하게 거기에 얼굴을 가만히 대면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방전된 새색시는 그렇게 매일 밤 나만의 충전기에 충전을 했다. 지금은? 젠더가 고장 난 모양이다. ㅋㅋㅋㅋ (이젠 뭘 해도 피곤해.)

구구절절한 사랑에 관한 에세이일 줄 알았다. 에세이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어디에서 찍어내는 것이 아닐까 싶은 사랑 에세이 중에 하나가 아닐까 잠시 의심도 했었다. 책을 펼쳤을 때 여백이 주는 생각과 공감들로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았다. 모두가 잠든 조용한 밤, 거실에 나와 조용히 읽고 싶은 글이었다. 부산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홀로 남은 순간 외로움을 곁에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갈 때마다 에세이가 더 좋아진다. 어렸을 때는 에세이를 왜 읽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머릿속에 지식을 넣었다는 뿌듯함이 있는 것도 아닌 소소하다 못해 평범한 글에서 무엇을 얻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제서야 에세이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이야기나 지식이 가득한 건 아니지만 다른 글에선 얻기 힘든 공감과 위로를 건네주곤 한다. 작가는 삶의 순간순간을 어떻게 이렇게 담백하게 기록할 수 있을까? 혼자 생각하다가 글로 써보고 싶다고 마음먹는 순간 내 생각들은 되감기 버튼을 누른 솜사탕처럼 이리저리로 사라지는데 말이다. 허공에 휘날려진 내 생각들을 둘둘 감아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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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 늘 남에게 맞추느라 속마음 감추기 급급했던 당신에게
유수진 지음 / 홍익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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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사실 블로그를 하는 것도, 인스타를 하는 것도 정작 내 주변 사람들에겐 편하게 하지 못하는 말을 뱉듯이 쓰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엄청난 엄청난 필터링을 거치지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내 머릿속은 24시간 풀가동한다. 흔히 멍 때린다고들 하는데 그런 시간도 거의 없다. 하루 종일 머릿속이 이 말 저말로 가득 찬다. 가끔씩은 머릿속으로 나오는 말들을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게으름이 나의 열정을 붙잡곤 한다. 저자는 처음에는 비공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만을 위한 요리를 하기 힘들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평을 해주는 사람 덕분에 음식 솜씨도 느는 거다. 저자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공개로 바꾸었다. 평범하지만 솔직한 저자의 글은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켜 이 책까지 나왔다고 한다. 난 아직까지 그럴 자신이 없다. 그리하야 오늘도 일기를 쓴다. 내 요리 솜씨가 안 느는 것처럼 글솜씨도 같은 이유로 안 는다.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는 방법은 그저 계속해서 이 방향, 저 방향을 왔다 갔다 하며 바라보는 방법뿐이다. 너를 바라볼 수 있는 360도의 방향 중 오직 1도의 방향에서 바라본 모습만 가지고 너를 판단해왔던 건 아닌지. 내일은 또 다른 방향에서 너를 바라봐야겠다. (p. 112)

저자의 글 속에서 공감한 많은 문장 중 하나.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딱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없다. 시시때때로 나를 대표하는 단어가 바뀐다. 명랑했다가 우울했다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내 감정이 날뛴다. 감정도 이러한데 생각이란 건 얼마나 더 다양할까. 이런 나를 이해해달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타인들은 1도의 방향에서 바라보고 판단하는 건 아닌지...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숨겨진 1도를 찾아볼 테다.

오랜만에 마음에 쏙 드는 에세이를 읽었다. (근래엔 장르 소설만 읽어댔으니 더 그럴지도...) 다음 장을 넘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스토리가 있는 것도, 화려한 문체로 내 눈길을 끄는 글도 아니었다. 어느새 내 몸에 익숙해진 포근한 스웨터를 입는 기분이었다. (언젠가부터 스웨터 입을 때는 평소보다 배에 힘을 더 줘야 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흑) 솔직해서 위로가 되는 글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천천히 아껴 읽고 싶은데 내 맘 같기에, 위로를 받는 기분이기에 책장이 자꾸만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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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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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 오시는 산타인 택배 기사님의 방문 문자를 보면 언제나 설렌다. 기쁜 맘에 받아드는 소포 앞의 손길은 늘 경건하고 분주하다. 그런데 가끔 옆 통로에 사는 아저씨께서 사무실 호수랑 헷갈려서 종종 우리 집을 주소지로 입력하실 때가 있어 낯선 택배를 받곤 한다. 지금은 따로 말씀 안 드려도 잘 찾아가시지만 처음 택배를 받았을 때는 어찌나 놀랐던지...

여기에 부재중인 이웃의 소포를 대신 받아줬다가 인생이 제대로 꼬인 여자가 있다. 정신과 의사인 엠마 슈타인은 학회 발표 후 어느 호텔방에서 이발사라 불리는 사이코패스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다. 이발사는 여자들의 머리카락을 밀어버리고 살해하는데 엠마만이 유일하게 생존한다. 그날 이후 이발사가 범행을 마무리하게 자신을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집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다. 모든 남자들이 이발사일 것만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우편배달부가 이웃의 소포를 잠시 맡아달라고 부탁해서 받았으나 소포 주인의 이름은 낯설기만 하다. 갈색 종이에 싸인 평범한 소포는 그녀를 악몽으로 이끄는데...

성폭행의 기억으로 엠마는 과대망상, 편집증, 허언증에 시달리며 안 그래도 힘든 그녀의 삶을 더 궁지로 몰아넣는다. 친구와 이웃 그리고 가족들조차 그녀를 믿지 않고, 그녀 역시 그들을 믿을 수 없다. 철저하게 외롭게 되는 그녀가 안타까우면서도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엠마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이야기의 마지막이다. 책을 내려놓으며 역시 스릴러 맛집인 제바스티안 피체크씨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서 어서 다음 권을 내놔라. 아니면 구워 먹으리 노래를 부르며 다른 책들을 검색해봤는데 아직 국내에 변역이 안된 책들이 꽤 있다. 이렇게 기쁠 수가~

"사랑해서 그랬어, 엠마. 오직 널 사랑해서 그 모든 일을 했어."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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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걸 - 노벨 평화상 수상자 나디아 무라드의 전쟁, 폭력 그리고 여성 이야기
나디아 무라드 지음, 제나 크라제스키 엮음, 공경희 옮김, 아말 클루니 서문 / 북트리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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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018 노벨 평화상을 받은 수상자인 나디아는 코초라는 이라크 북쪽 지역에 있는 작은 야지디 마을 출생이다. 그녀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이며 그녀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며 평생 살 것이라고 믿었던 곳이다. 가난하지만 소박했던 공동체였지만 2014년 8월 수니파 무장단체 IS가 마을을 포기하면서 그녀의 믿음은 산산조각이 난다. 남자들은 끌려가 집단 학살 당했고 어린 소녀들과 젊은 여자들은 IS의 성 노예(사비야)로 잡혀간다. 사비야들은 IS 대원에서 또다시 다른 IS 대원으로 팔려가며 반복된 폭력을 겪는다. 《더 라스트 걸》은 나디아 무라드가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살다가 IS에 납치당해 성노예가 되고, 기적적으로 탈출하는 일까지 담은 이야기이다.

납치범들이 가축을 - 암탉, 병아리들, 우리 양 두 마리 - 훔쳐 간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채 2주가 흘렀다. 그즈음은 ISIS가 코초와 신자르 대부분을 점령한 상태였다. 뒷날 모든 코초 주민들을 학교로 몰아넣는 일을 도왔던 ISIS 무장 단체원이, 마을 여자들 몇몇에게 납치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어깨에 맨 라이플총을 흔들면서 말했다. "우리가 암탉과 병아리를 가져간 것은, 너희 여자들과 애들을 데려갈 거라는 경고였다. 숫양을 가져간 것은 너희 부족 지도자들을 데려간다는 뜻이고, 숫양을 죽인 것은 그 지도자들을 죽일 계획이라는 뜻이야. 그리고 어린 암양은 너희 소녀들을 뜻한다." ( p.28 )

나디아가 이런 읽을 겪었을 당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난 그곳으로부터 너무나 먼 곳에 떨어져 살았다. 뉴스로 그곳의 참상을 보았지만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IS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지적 호기심을 채웠을 뿐이다.

초가 포위된 뒤 처음에는 무슬림 이웃 몇 명이 음식을 들고 마을에 찾아와서, 우리의 아픔이 그들의 아픔이라고 말했다. 가슴에 손을 얹으며 "당신들을 보리지 않겠소."하고 약속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모두 우리를 버렸다. ( p.94 )

태어날 때부터 엄마 따라 교회를 다녔던지라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비유를 많이 듣고 자랐다. 사마리아인의 선한 행동과 제사장, 레위인의 위선적인 행동에서 대해서 말이다. 코초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단 한 명도 없었을까? 그건 사실이 아닐 거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건 양심이 아니라 어쩌면 양심을 지켜낼 수 있는 용기가 아니었을까? 비난하기는 너무나 쉽다. 내가 만약에 나디아의 이웃이었다면... 나는 과연 야지디를 도울 수 있었을까? 그 물음에는 대답할 수가 없다. 내 목숨보다 더 귀중한 밤톨군의 생명을 담보로 나는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을까.

"제가 유럽에 유학 갔을 때, 아, 이래 봬도 옥스퍼드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가장 신기했던 것 중에 하나는 흰옷을 입고 차를 타고 다니며 벌레를 죽이러 다니는 사람들이었지요. 등에 커다란 통을 메고 그들이 기숙사에 찾아오면 바퀴벌레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무슨 마법 같았다고 할까. 이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박 신부는 그가 갑자기 자신의 유학 시절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박 신부의 표정을 보며 민병대 장교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우린 말이죠. 같은 일을 하는 겁니다. 바퀴벌레를 박멸하죠. 살인자가 아닙니다."

"당신네들이 구덩이네 사람들을 몰아넣고 벌인 짓을 들었어요. 그, 그런데도 살인자가 아니라고?"

말투는 따지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개미 목소리처럼 자꾸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민병대 장교는 자신의 소총을 들어 보였다.

"예, 이게 등에 멘 소독약 통 같은 겁니다. 바퀴벌레를 죽이고, 불태워버릴 뿐이죠. 위생을 위해서. 알다시피 벌레들은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나오니까요. 우리나라 곳곳을 그 벌레들이 좀먹었습니다. 당신은 모르시겠죠. 지난 이백 년간 여기서 벌어진 일들을. 나라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죽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중에서)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장소는 다르지만) 민병대 장교가 하는 말이 자꾸만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사람이 어떻게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고 화를 낸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음은 애초에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는 걸 몰랐다. IS가 사람들을 참수하고 소녀와 여자들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것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서 그런 것임을... 하지만 여전히 이들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생명을 바퀴벌레 정도로 생각하며 학살하는 사람들도 인간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그런 사람들은 바퀴벌레라고 생각해야 할지 답하기가 힘들다. 지금도 IS의 치하 아래 오늘도 눈물 속에 죽을 수 없어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나디아의 말처럼... 나디아가 그런 사람들 중 마지막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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