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유정아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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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지 않으면 시시한 인생인가? 티브이를 봐도 서점에 가봐도 성공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하다못해 인스타만 봐도 반짝거리는 삶을 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근데 그게 뭐? 다들 무슨 비법이라도 알려줄 것처럼 훈수질이다. 그것도 아니면 네가 그렇게 사는 건 다 니 탓이라고 훈계질이다. 나 전혀 안 그렇거든? 그리고 시시한 게 뭐가 어때서?

요즘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자주 만난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삶에 이루기에도 벅찬 행복보다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도 누려보자는 마음일 거다. 취업을 하거나 결혼을 하고 주택을 구입하는 건 엄청난 행복이다. 하지만 매번 취업을 새로 하고 결혼을 하는 건 무리다. 한 채도 갖기 힘든 세상에서 여러 채를 구입하는 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일상의 작고 소소한 행복이 우리를 살아가게 만든다. 사진 정리하기, 양말 가지런히 정리하기, 맛있는 커피 마시기...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니까...

오로지 파도도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발코니 바로 앞에 펼쳐진 바다 위로 해가 구름을 가르며 조용히 떠오르고 있었다. 들리는 거라곤 파도 소리뿐이었고, 난간 아래 바위에는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른하게 몸을 펴고 있었다. 모든 게 그린 듯이 완벽했다. 온전히 나 하나만 이 풍경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전날의 피로와 후회가 씻은 듯이 녹아내내리는 가운데,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잘못 찾아 든 곳에도 완벽한 풍경이 있을 수 있구나.'  (p.43)

작년에 친구 가족과 남해안 여행을 갔다. 맛집이라고 해서 찾아간 곳은 문을 닫고 없었다. 심지어 최근에 올라온 글이었는데도 말이다. 주변에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우린 차를 돌렸다. 그저 길이 뻗은 대로 가다 보니 바닷가에 위치한 칼국숫집이 보였다. 배고픈 아이들 때문에 더 찾아볼 여력도 없어서 그 가게에 들어가 음식을 시켰다.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가게에서 맛있는 칼국수를 먹었고, 아이들은 가게 앞 모래에서 신나게 모래성을 쌓았다. 그리고 우린 추억을 쌓았다. 인생은 그런 걸지도 모른다. 매번 나에게 단짠단짠의 진수를 보여준다.  

20대의 나는 매우 우울했다. 아빠는 아프셨고, 내 미래는 불투명했다. 내가 계획했던 모든 것들이 틀어지는 기분이었다. 지금이라고 해서 상황이 더 좋아진 건 아니다. 여전히 지독한 안개의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이라는데 난 그것마저 바닥이다. 하지만 지금 더 행복하다. 내 평생의 반쪽과(그런 거 맞겠지? 알고 보니 반쪽은 다른 곳에 있는 거 아니겠지?) 우리 둘보다 더 사랑스러운 밤톨군이 있다. 그리고 어렸을 때의 나보다 조금은 더 너그럽고 대범한 내가 있기에 난 오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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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야 하는 밤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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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었던 <차단>을 쓴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신작이 나왔다. <차단>을 흥미진진하게 읽었기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선택했다. 이번에는 제목부터가 후덜덜하다. <내가 죽어야 하는 밤>이라니...

몸담았던 밴드가 유명해지기 일보 직전에 간발의 차로 스타가 되지 못했던 드러머인 벤은 어느 날 위기에 처한 여성을 도와주다가 8N8이라는 사이트를 알게 된다. 8N8은 모든 분야에 돈이 부족한, 특히 치안 분야엔 심각한 상황에서 연방 정부와 살인 복권을 합의하기로 했다고 전한다. 10유로만 내면 죽이고 싶은 사람을 추천할 수 있고 8월 8일 저녁 8시 8분에 추천된 모든 후보자들 중에서 한 명을 뽑아 제비뽑기로 선정된 8N8 사냥감은 12시간 동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것이다. 사냥감을 포획하거나 죽이는데 성공한 사냥꾼은 상금 1,000만 유로를 받는다. 첫 번째 사냥감이 너무 잘 숨어서 게임이 원활하지 못한 것에 대비해 추가된 후보가 바로 벤이다. 첫 번째 사냥감은 24살의 베를린에 사는 심리학과 여대생인 아레추다. "아무래도 아빠가 위험에 빠진 것 같아"라는 메시지를 벤에게 보내고 옥상에서 몸을 던진 율레의 병원에서 아레추를 만난다. 둘은 온 세상이 뒤쫓는 살인 게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처음 책 소개를 읽고 영화 <더 퍼지>가 떠올랐다. 사상 최저 실업률과 최대의 범죄율을 잠재우기 위해 1년의 단 하루 동안 모든 범죄가 허용된다는 내용의 영화였던 걸로 기억한다. 보는 내내 쪼는 듯한 영화는 잘 못 보는 편이라 늘 이런 영화는 '출발! 비디오 여행'으로만 본다는 건 비밀. 그런데 뒤에 나온 작가의 말을 보니 <더 퍼지>는 그의 어린 아들이 신생아과에서 죽음을 맞서 싸웠던 때에 본 영화 중 하나였다고 한다. (아이는 지금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하니 걱정마시길...) 아이의 모니터와 연명장치를 계속 노려보고 있을지, 아니면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질지 선택하라는 의료진의 말에 그들은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다. 스릴러 영화가 주는 현실 세게의 두려움과 근심을 처리할 수 있었다. 작가는 '미래가 모두가 모두의 적이 된다'라는 아이디어를 '현재 모두가 한 사람의 적이 된다'라는 아이디어로 바꾼다. 그리고 스스로 질문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를 추천할까?

10유로는 현재 환율(2018일 5월 21일 기준) 12,760원이다. 천 단위 절사해서 1만 원이면 정말로 죽이고 싶은 사람을 추천할 수 있고 살인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누구를 추천할까? 다행히도 그렇게 미운 사람은 아직까지 없어서 추천인은 공란일 것 같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추천했다면? 그리고 내가 사냥감으로 선출된다면? 아~ 생각만 해도 무서워진다. 내가 했던 말들, 행동 등이 떠올랐다. 네티즌 수사대 앞에서 무죄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싸이월드와 카카오스토리를 탈퇴해야 하는 것인가?)

집을 보러 왔을 때 부동산 중개인이 그의 손에 쥐여주었던 건축 회사 팸플릿의 목가적 사진과 똑같은 장면이었다. 부동산 중개인은 팸플릿을 보여주며 "이곳은 아직 정상이에요."라고 자랑했다. 그때 슈바르츠는 경험상 팸플릿이 행복한 곳이라 선전하는 바로 그곳이야말로 가장 끔찍한 장소인 경우가 많았다고 대꾸하려다 꾹 참았다. 대개 그런 것은 정면이 아니라 조명이 비치지 않은 이면을 봐야 눈에 띈다. 통계로 봤을 때, 이웃 중 한 명은 아내를 때리고, 딸의 나체 사진을 불법 사이트에서 교환하고, 가시와 독은 개 사료를 놀이터에 두고, 떼쓰는 아기를 라이터로 벌준다는 것을 슈바르츠는 알았다. 
(p.p. 251~252)

8N8처럼 무시무시한 게임이 허용이 된다면 어떤 사람들이 참가를 할까? 조폭이나 살인 청부업자들? 그건 아닐 것이다. 100억이라는 어마 무시한 상금이 내걸린다면 남의 목숨을 목숨 걸고 뺏으려 하는 사람들은 넘쳐날 것이다. 절대 악의 기운을 사정없이 내뿜는 사람들이 아니라 누가 봐도 평범한 얼굴을 가면으로 쓴 사람들이 말이다. 인터넷에 어떤 사건이 뜨면 사람들은 자신이 접한 정보가 진실이라고 믿고 정의감에 불타서 행동한다. 상대방의 SNS에 가서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말을 서슴없이 뱉고 오기도 한다. 현대판 마녀사냥이다. 대상이 된 사람이 평생토록 트라우마에 시달리든 말든 상관없다. 오늘도 인터넷 속 세상에선 사냥이 한창이다. 다음 대상은 내가 혹은 당신이 될지도 모른다.

군중은 진실을 갈망한 적이 없다.
입맛에 맞지 않으면 증거도 외면해버리고,
자신들을 부추겨주면 오류라도 신처럼 받드는 것이 군중이다.
그들에게 환상을 주면 누구든 지배자가 될 수 있고,
그들의 환상을 깨려 들면 누구든 희생 제물이 된다.
- 귀스타브 르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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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종 다이어트에 실패한 46세 비만 의사는 어떻게 1년 만에 요요 없이 15kg을 뺄 수 있었을까? - 당질 제한ㆍ디톡스ㆍ식단 조절부터 홈트ㆍ스트레칭ㆍ건강 습관까지
히비노 사와코 지음, 이경민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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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라고 검색만 해봐도 온갖 정보들이 넘쳐흐른다. 길거리만 돌아다녀봐도 전봇대에 비포 애프터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려있는 피트니스센터 광고들을 쉽게 접한다. 점점 날은 더워지고 옷은 얇아지는데 내 몸뚱이는 지난겨울처럼 암담하다. 솔직히 책 제목에 혹했다. 39종 다이어트에도 실패한 46세(나이가 중요하다. 어릴 땐 살도 쉽게 빼잖아.) 비만 의사가 요요 없이 15kg을 뺐다는 건 뭔가 엄청난 비법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저자는 41세에 인생 최대 몸무게인 71kg을 찍고 또다시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저자의 본격적인 다이어트 이야기에 앞서 그동안 시도한 다이어트 목록이 있는데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많은 다이어트 방법이 있었나? 저자는 다양하게 시도해서 또 열심히 실패했다. 돈스파이크가 그랬던가? 최고의 다이어트는 애초에 다이어트를 시작하지 않는 거라고... 그만큼 요요가 무섭다는 이야기인데 요요 없이 15kg를 뺐다는 말에 관심이 생겼다. 난 애초에 다이어트를 잘 시도하지 않아서 요요조차 없이 꾸준하게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 이번 기회에 선을 확 꺾어보리라.

저자는 태어났을 때부터 통통하고, 통통한 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거식증으로도 고생을 했다. 거식증 완치 후엔 다시 통통의 길을 걷는다. 피자 28장과 케이크 24조각을 먹는 정도였으니 말을 다 한 셈이다. 학업 스트레스와 정신없이 바쁜 의사라는 직업 때문에 잘못된 식습관도 가졌었다. 그래, 그녀는 왜 그녀가 통통한 지 알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난 왜 통통한 몸매를 갖게 된 건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난 20대까지 마른 편이었다. 내 생애 통통한 적은 영국에서 넋 놓고 고칼로리 음식을 섭취한 때를 제외하곤 전혀 없었다. 친척들을 둘러봐도 대부분 마른 체형이다. 지금의 내 몸매는 유전자를 탓할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저자만큼 간식을 많이 먹는 것도 아니다. 뭐 그렇다고 물만 먹어도 살찌는 타입은 아닐 테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했다. 난 무엇을 물처럼 먹었는가. 이건 생각할 필요도 없다. 카페라테와 믹스 커피다. 하루에도 두세 잔 마시는 이 녀석들이 주범임이 틀림없다. 근데 이건 20대에도 꾸준히 마셨던 거다. 확실히 밤톨군을 낳고 체질이 바뀌었다. 밤톨군을 낳을 때 나의 날씬한 장내 세균도 함께 이사를 간 게 분명하다. 어떻게 다시 입주하라고 꼬실 수 있을까?

사실 난 얼핏 보면 많이 통통하지는 않다. 다행히 얼굴이 작은 편이고 손발이 앙상하기에 그냥 살짝 통통한 정도로 보인다. 그것도 그나마 가릴 수 있는 겨울에는 크게 문제가 없지만 적나라하게 몸을 드러내야 하는 여름이 오면 스트레스다. 살이 빠져도 '살쪘니?'라는 질문을 듣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 몸은 절대로 살이 쪄서는 안되는 체형이라 더더욱 살을 빼야 한다. 예전에 의사가 뼈대는 큰데 뼈가 가늘어서 살이 붙으면 몸이 망가지는 타입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평균보다도 마른 몸을 유지해야 관절이 버텨줄 거란다. 그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말인데 요즘엔 와닿는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이면 온몸이 뻐근하고 삐걱거린다.

나의 안타까운 이야기들은 뒤로하고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가장 궁금해할 비법은? 우리가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교과서적인 건 아니다. 적게 먹고 빡세게 운동해라고 저자는 권하지 않는다. 대신 몸무게에 집착하지 않고 예뻐지는 걸 목표로 하라고 한다. 체중계 앞에 서기보다는 전신 거울 앞에서 나의 몸을 바로 보고 꾸준한 스트레칭을 하라고 한다. 그걸로 살이 빠질까?라는 의문이 들었으나 생각해보면 그것조차 안 하고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만 쉴 새 없이 두드린다. 안 돌아가는 부분을 기름칠하는 마음으로 슬슬 돌려보는 게 좋겠다. 그리고 내가 확 꽂혔던 부분은 바로~ 집 나간 날씬 장내 세균의 재입주 방법이었다. 바로 핫 요거트!! 내열 용기에 담아 600W 전자레인지에서 40초 정도 가열한 따뜻한 요거트를 먹는 거다. 면역력도 올라가고 배변도 원활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번에 태워먹은 전자레인지는 처리하고 돈 좀 주고 새로 샀다는 거! 이제 핫 요거트는 나의 친구. 늘 차갑게만 먹던 거라 처음엔 뭔가 어색하고 이 맛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제법 익숙해졌다. 아직 1년에 비해서 열흘도 안된 시간이라 어디가 변한 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핫 요거트뿐만 아니라 스트레칭 방법, 식단표나 외식 요령 등 알짜배기 정보도 가득하니 나머지는 책에서 찾아보시길... 난 이만 스트레칭하러 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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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멋스러운 무단횡단 - 아이들과 함께 유럽 자유여행을 꿈꾸는 부모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이은경 지음 / 착한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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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행을 좋아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주 가지 못한다. 아무래도 여행이라는 거창한 단어에는 무엇보다 돈도 많이 들고 꺽정씨가 시간 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돌이인 밤톨군을 설득하는 게 가장 어렵다. 나도 기본적인 집순이라 집에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심심할 겨를도 없는 타입이지만 이상하게 밖에만 나가면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진다. (물론 예외는 있다. 밤톨군과 놀이터에만 가면 그렇게도 집이 그립다.) 그런데 가족과 함께 여행은 살짝 망설여진다. 꺽정씨와 단둘이 여행은 꽤 재미있지만(그랬던 걸로 기억하지만) 밤톨군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먹는 것부터 자는 것까지 몇 배의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그 어려운 걸 해낸 사람이 여기 있다. 밤톨군만큼 어린 건 아니지만 이제 초등학교 2,3학년인 연년생 두 아들과 유럽 자유여행을 떠났다.

과연
여행에 적당한 때가 있는 걸까.
일상을 멈추고 여행지로 떠나기 가장 적당한 때는 언제일까.
그럴 때가 있긴 한 걸까.  (p.27)

진짜 여행에 적당한 때는 있을까? 때가 있다 한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돌아다닐 만큼의 체력이 남아있을지도 의심스럽다. 맨날 말 버릇처럼 밤톨군이 사춘기가 올 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거라고 다짐한다. 내 인생에서 언제나 1순위는 '나'인 이기적인 엄마라 여행도 혼자 가는 것만 계획한다. 우리 셋의 가족 여행, 그러니까 유럽처럼 먼 여행은 언제가 적당한 걸까? 아마 그런 때는 오지 않겠지. 여행은 지르는 거야. 급하게 가까운 동남아라도 검색해본다.

아닐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그래서 놀랐던 아줌마의 증상들 몇 가지. 난 아닌데?라며 발 빼지 마세요. 함께 해주세요. 솔직하게.

1. 여전히 예쁘고 싶다.
2. 완전 날씬하고 싶다.
3.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이 끝없다.
4. 여전히 어려 보이고 싶고 나이가 있으니 이제는 세련돼 보이고도 싶다.
5. 잘 나온 사진 한 장에 기분이 최고다.
    (하지만 이럴 확률이 100분의 1 정도로 줄어들었다.)
6. 예쁜 여자를 보면 부럽다.
7. 예쁘다는 말과 살 빠졌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최고다.
    (얼굴살은 절대 빠지면 안 됨)
8. 예쁜 곳에 다니고 싶다.
9. 여행 다닐 땐 아줌마도 들뜨고, 아줌마도 멋 부리고 싶다.  (p.146)

대박 공감이다. 1에서 9까지 다 내 맘이다. 예전엔 어렸고, 날씬해서 티셔츠에 청바지 하나만 입어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내 기억 속에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근데 이젠 내 나이보다 젊어 보이되 어려 보이고 싶은 마음이 눈에 확 보이는 옷을 입어선 안된다. (왜? 왜 안되냐고? 세일러 카라의 티셔츠 사고 싶다고 했더니 꺽정씨가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프리사이즈는 이제 더 이상 프리하지 않다. 더 이상 어리지도 예쁘지는 않아도, 이젠 아줌마란 호칭이 더 익숙해져도 여전히 예쁘고 싶은 여자의 마음이다. 그런데 사진 속 저자는 이런 말하면 안 되는 거다. 싱그럽고 날씬하고 예쁘더라. 빼애애액!! 경!고!

"자기는 어디가 제일 그리워?"
"그립긴 왜 그리워. 난 아무 곳도 그리운 곳이 없는데?"
"그럼 그립지는 않아도 다시 가보고 싶은 도시는 어디야?"
"한 번 다녀왔으니 다음에 다른데 어디 가면 좋을지 생각 중인데?" 
대화가 잘 통해서 결혼을 결심한 건데, 이렇게 안 통한다. 후회해도 늦었다.  (p.187)

이 대목에서 빵 터졌다. 나는 다행히도 여전히 대화가 잘 통하는 남편과 잘 살고 있지만 그 외에는 갈수록 안 맞는 것 같다. 데이트할 때도 소박하게 김밥천국 같은 곳도 좋아했던 남편이라 소박한 사람이라고 좋아했는데 그냥 입맛이 그런 거였다. 내가 신경 써서 한 요리보다 달걀말이를 더 좋아한다. 회도 안 좋아하고, 내장탕도 싫어한다. 난 없어서 못 먹는데... 게다가 책 취향은 갈수록 더 멀어진다. 하아~

다시 오리라.
꼭 다시 와보리라.
몇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꼭 다시 오겠노라 다짐했다.
또 얼마나 기울어져 있을지 유심히 보리라 다짐했다.
누구와 어떤 모습으로 피사를 다시 찾을지. 정말 다시 찾게 될지 궁금해진다.  (p.192)

영국에 있을 때 독일로 열흘 정도 놀러 갔을 때가 떠올랐다. 혼자 여행한 게 아니라 독일인 친구의 집에 놀러 간 거였다. 같이 무단횡단하고 무임승차하고... 그렇게 아낀 돈으로 매일매일 맥주를 마셨더랬다. 독일어로 할 줄 아는 말이라곤 '배고파','이름이 뭐니?''사랑한다' 밖에 없는 내가 독일어로 더빙된 영화도 봤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 중 한 명인 에드워드 존 번스의 그림을 실제로 봤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잊지를 못한다. 독일 여행의 마지막 날, 난 여기에 또 올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친구는 언제든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십 년도 훨씬 더 지났는데 유럽 근처에도 못 가봤다. 꼭 다시 가보고 싶다. 그리고 가보지 못한 곳에도 가고 싶다. 꺽정씨와 밤톨군과 함께...

책을 읽고 나니 취향이 갈수록 차이가 나는 꺽정씨와 아직도 낮잠이 안 끊겨서 업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 많은 밤톨군과 함께 멀리멀리 떠나고 싶어졌다. 잠시 공항에만 머물렀던 프랑스, 이틀 밖에 머무르지 못했던 스위스, 가보지도 못한 이탈리아 등을 그들은 보고, 느끼고, 음미했다. 고사성어와 일러스트 그리고 보기만 해도 빠져드는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내 안의 역마살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예쁜 여행 사진을 남기기 위해 지르고 싶은 렌즈에 대한 고민이 한층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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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하포드의 경제학 팟캐스트 - 현대 경제를 만든 50가지 생각들
팀 하포드 지음, 박세연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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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이 터졌다고 상상해보자.
갑자기 인류의 문명이 사라졌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세상이 끝났다. 이유는 따지지 말자. 다만 돼지 인플루엔자나 핵 전쟁, 혹은 살인 로봇이나 좀비의 출현쯤으로 해두자. 당신은 몇 안되는 행운의 생존자 중 하나다. 전화는 없다. 전화를 걸 사람도 없다. 인터넷은 물론 전기도 연료도 없다.  (p.7)

일단 나에겐 생존이 행운보다는 불행이 가까울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 하나 없는 삶이 무슨 행복이겠냐. 게다가 난 당장 6,70년대로 넘어가도 바로 멍청이에 등극한다. 전기밥솥이 아니면 밥도 전혀 할 줄 모른다. (고마워요. 쿠쿠!) 그런데 구석기 시대 같은 세상에 홀로 떨어진다니... 종말의 폐허 속에서 현대 문명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문명의 불씨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 과학 역사가인 버크는 쟁기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내가 행운의 생존자였다면 인류는 불행의 시작이다. 손만 대면 모든 식물을 죽이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진 내가 쟁기가 있다 한들 뭘 거둘 수 있을까? 황금 논두렁에 떨어져도 난 굶어죽을지도... 흑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인류가 그동안 발명한 그리고 발견한 것들을 접하며 살아간다. 그 결과들은 또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킨다. <팀 하포드의 경제학 팟캐스트>는 쟁기를 비롯해서 인류의 역사 속에서 혹은 일상 속에서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다양한 것들의 역사와  그것들이 끼친 변화를 이야기해준다. 그것들은 삶의 편리함만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쟁기를 예로 들면 쟁기의 발명으로 식량이 증가했다. 풍부해진 식량으로 모두가 배부르게 사는 건 아니다. 잉여 생산물이 생길 때 권력자들은 그것을 빌미로 더 많은 착취가 가능하다. 그렇게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생기고 수렵 채집 생활에서는 찾을 수 없는 부의 불평등이 발생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우리에게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

경제학 팟캐스트라는 제목 때문에 뭔가 어려울 거라고 오해했었다. (그렇다, 나는 경. 알. 못이다. 경제뿐이겠냐먼은...) 하지만 이 책은 50가지의 사례를 들며 그것들의 역사와 변화를 조곤조곤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내가 사용하는 것들이 단순하게 나의 삶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비효과가 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도 눈으로 보여준다. 읽기만 해도 똑똑해지는 기분이다. 저자의 전작인 <경제학 콘서트>도 구매만 하고 읽지도 않았는데 분명 재미있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어서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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