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유정아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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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지 않으면 시시한 인생인가? 티브이를 봐도 서점에 가봐도 성공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하다못해 인스타만 봐도 반짝거리는 삶을 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근데 그게 뭐? 다들 무슨 비법이라도 알려줄 것처럼 훈수질이다. 그것도 아니면 네가 그렇게 사는 건 다 니 탓이라고 훈계질이다. 나 전혀 안 그렇거든? 그리고 시시한 게 뭐가 어때서?

요즘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자주 만난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삶에 이루기에도 벅찬 행복보다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도 누려보자는 마음일 거다. 취업을 하거나 결혼을 하고 주택을 구입하는 건 엄청난 행복이다. 하지만 매번 취업을 새로 하고 결혼을 하는 건 무리다. 한 채도 갖기 힘든 세상에서 여러 채를 구입하는 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일상의 작고 소소한 행복이 우리를 살아가게 만든다. 사진 정리하기, 양말 가지런히 정리하기, 맛있는 커피 마시기...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니까...

오로지 파도도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발코니 바로 앞에 펼쳐진 바다 위로 해가 구름을 가르며 조용히 떠오르고 있었다. 들리는 거라곤 파도 소리뿐이었고, 난간 아래 바위에는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른하게 몸을 펴고 있었다. 모든 게 그린 듯이 완벽했다. 온전히 나 하나만 이 풍경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전날의 피로와 후회가 씻은 듯이 녹아내내리는 가운데,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잘못 찾아 든 곳에도 완벽한 풍경이 있을 수 있구나.'  (p.43)

작년에 친구 가족과 남해안 여행을 갔다. 맛집이라고 해서 찾아간 곳은 문을 닫고 없었다. 심지어 최근에 올라온 글이었는데도 말이다. 주변에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우린 차를 돌렸다. 그저 길이 뻗은 대로 가다 보니 바닷가에 위치한 칼국숫집이 보였다. 배고픈 아이들 때문에 더 찾아볼 여력도 없어서 그 가게에 들어가 음식을 시켰다.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가게에서 맛있는 칼국수를 먹었고, 아이들은 가게 앞 모래에서 신나게 모래성을 쌓았다. 그리고 우린 추억을 쌓았다. 인생은 그런 걸지도 모른다. 매번 나에게 단짠단짠의 진수를 보여준다.  

20대의 나는 매우 우울했다. 아빠는 아프셨고, 내 미래는 불투명했다. 내가 계획했던 모든 것들이 틀어지는 기분이었다. 지금이라고 해서 상황이 더 좋아진 건 아니다. 여전히 지독한 안개의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이라는데 난 그것마저 바닥이다. 하지만 지금 더 행복하다. 내 평생의 반쪽과(그런 거 맞겠지? 알고 보니 반쪽은 다른 곳에 있는 거 아니겠지?) 우리 둘보다 더 사랑스러운 밤톨군이 있다. 그리고 어렸을 때의 나보다 조금은 더 너그럽고 대범한 내가 있기에 난 오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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