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드라이빙 미스 노마 - 숨이 붙어 있는 한 재밌게 살고 싶어!
팀, 라미 지음, 고상숙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경쾌한 표지의 책을 만나다. 해맑은 표정의 사람보다도 더 커 보이는 개와 긍정 기운 폴폴 풍기시는 할머니께서 새빨간 오픈카에 앉아 계신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할머니의 에세이이려나?
아흔 살의 노마 할머니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자궁암 말기 진단을 받는다. 죽음이 그녀에게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그녀는 남들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병원에서 각종 약을 먹으며 삶을 이어나가는 것 대신 아들 내외와 함께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햇살 좋은 8월 어느 날 아침, 그들은 여행길에 오른다. 이 책은 노마의 아들과 며느리의 기록이다.
노마 할머니는 미시간을 떠나 그동안의 그녀가 겪은 것과는 다른 새로운 일들로 그녀의 남은 삶을 차곡차곡 채웠다. 열기구 타기, 승마, 페디큐어, 새로운 헤어스타일 등 수많은 생애 첫 경험을 한다. 아흔 살의 나이로도 삶을 즐기고, 죽음에 직면하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에 작은 감동이 일었다. 결혼 후 67년 동안 미시간 주를 떠나본 적 없는 그녀에게 32개 주 여행은 큰 용기가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것 같다. 말기 암 환자라 힘든 점도 많았겠지만 할머니는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여행길의 모든 걸 흡수한다. 난 그녀의 나이의 반조차 살지 않았는데도 새로운 것에 시도보다는 반복적인 일상에 익숙해하고, 이 나이에 내가 뭘...?이라는 생각도 꽤 자주 한다. 할머니 입장에선 핏덩이인 내가 할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삶은 부서지기 쉽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 머릿속에만 있을 뿐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우리는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항상 우리 옆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못 본척하며, 말로 표현해야 할 것을 다음으로 미루곤 한다. 팀과 내가 계속해서 다음에 하자고 미룬 것은 바로 팀의 부모님과 나이 듦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는 것, 그중에서도 특히 부모님이 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목구멍에 걸려있던 그 말을 꺼내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왜 우리는 항상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피하기만 했을까? 그 순간이 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삶의 마지막에 직면하는 순간 부모님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p.p.27~28)
나에게 내일이 있다고 당연하게 믿는 것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래오래 내 곁을 지켜줄 것이라고 늘 믿는다. 하지만 이제 결혼식 자리가 줄어드는 만큼 장례식에 가야 할 일이 생긴다. 언젠가는 우리 엄마, 시부모님의 장례식을 가야 할 때도 올 것이다. 하지만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으신지 여쭤보는 건 상상도 못하겠다.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지고, 그저 회피하고 싶다. 대신 엄마와 하고 싶었던 것 하나만이라도 더 하도록 노력해봐야겠다. (그런데 엄마랑 긴 여행은 자신이 없네.)
하지만 내 죽음에는 내가 관여하고 싶다. 그저 병원 침대에서 매일매일 아픈 사람들과 함께 보내고 싶진 않다. 할머니처럼 캠핑카를 타고 자유롭게 여행하는 건 불가능할지라도 말이다. 예쁘게 죽음을 준비하고 싶다. 영화 <파니 핑크>를 보고 내 취향에 맞게 관을 짜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집에 둘 곳이 없다. 창고가 있는 서양 것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대신 내 수의는 내가 만들자라고 다짐했다. 삼베에 무명실로 곱게 한 땀 한 땀 꽃수를 놓을 테다. 저승길만은 패셔니스타가 될 테다. 가는 길이 얼마나 험할지, 멀지 알 수는 없나 기왕이면 예쁜 옷 입고 가고 싶다.
노마 할머니는 여행 중 일기를 썼다. 죽음의 두려움이나 질병의 고통 같은 기록은 전혀 없었다. 대신 삶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들로 채웠다. 삶은 죽음으로 가는 여정이다. 그래서 삶은 여행이라고 하나보다. 시작도 끝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여행. 여행은 어떤 사람과 함께 가느냐가 상당히 중요하다. 불평쟁이와의 여행은 불만이 가득하고, 초긍정꾼과 함께하는 여행은 작은 것 하나마저 소중하다. 난 어떤 사람일까?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픈 여행 친구이길 바라본다.
엄마는 나에게 인생에 대해서 "Yes!"라고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p.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