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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멈추는 법
매트 헤이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평점 :

이 책의 주인공은 톰 해저드는 시간에 휩쓸리지 않는 남자다. 그의 원래 이름은 에스티엔느 토마 앙브루아즈 크리스토프 아자르였다. 그는 439살이라는 시간을 살면서 그 후로 많은 이름을 가진다. 나이를 먹어도 그대로인 그의 외모 때문에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늙지 않는 마술을 걸었다며 마녀로 몰려 익사를 당한다. 어머님의 유일한 유품인 류트를 들고 런던으로 도망친 그는 시장에서 과일을 파는 로즈와 그레이스 자매를 만난다. 로즈와 사랑에 빠져 매리언이라는 딸도 낳았지만 역시나 그대로인 그의 얼굴은 모녀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어느 날 로즈에게서 매리언이 톰과 같은 증상이 있다는 걸 알고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매리언을 찾아야 했다. 수 세기 동안 그는 매리언을 찾는 중이다. 그런 그에게 앨버트로스(앨버트로스를 장수하는 동물로 여겼기 때문) 소사이어티의 수장인 헨드릭을 만나게 되는데...
"8년. 그게 규칙이야. 앨버가 한 곳에 8년 이상 머물면 곤란한 일에 휘말리게 돼 있어. 그게 바로 '8년 규칙'이야. 단 8년 동안만 신나게 사는 거지. 그런 다음엔 내가 보내는 곳으로 떠나야 해, 거기서 새 인생을 시작하는 거야. 과거의 유령이 없는 곳에서." (p.153)
앨버 소사이어티의 규칙은 한 지역에 8년 동안만 머무는 것 외에 절대로 사랑에 빠지면 안 된다는 규칙이 존재한다. 하루살이 같은 인간과 사랑에 빠져서는 안된다. 한순간도 긴장을 풀어선 안된다. 실수로 발을 헛딛는 순간 자신을 포함한 모든 앨버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도 했다. 사랑 없이 평생을 산다는 게 가능할까? 그리고 8년이라는 시간이 보통의 사람들에겐 길지도 모를 시간이지만 앨버들에겐 6개월에 한번씩 옮겨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6개월에 한번씩 이사다녀라고 하면... 으아아아~ 요즘 이사 때문에 신경 쓸 게 많아서 그런지 톰의 어려움이 팍! 느껴지더라.
그녀가 류트를 옆에 내려놓고 내게 입을 맞추었다, 내 눈이 스르르 감겼다. 흐릿해져 가던 세상은 금세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남겨진 건 오로지 그녀뿐이었다. 그녀는 별이었고, 하늘이었으며, 바다였다. 특별히 주어진 시간의 한 조각. 우리는 그 안에 사랑의 꽃봉오리를 심어 놓았다. 마침내 키스가 끝이 났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밖에서 교회의 종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어느새 세상의 모든 것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p. 211)
진짜 키스라는 게 이런 건가? 그렇다면 나는 아직까지 키스란 걸 못 해본 것임이 틀림없다. (내 입술아! 미안하다. 밥만 먹여서...) 수 세기가 지나도록 또렷하게 기억하는 키스라니... 그녀를 별, 하늘, 바다라고 기억하는 톰을 보며 로즈가 내심 부러워졌다. 얼마 전 다른 책에서 서로를 애칭으로 부르는 걸 봤다. 애칭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나는 꺽정씨에게 애칭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조용히 "산또..."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귀여운 어감이라 눈을 반짝이며 무슨 뜻이냐며 물어봤더랬다. 순간 동공의 지진을 느꼈다. 그것은 상또라이...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외쳐보아도 부럽기 그지없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으로 영화 제작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먼저 듣고 책을 읽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가 아닌 다른 톰 해저드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의 행동, 말투, 눈빛 모든 것이 베네딕트 컴버배치였다. 영화로는 어떻게 표현이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다양한 시간과 장소 속에서 르네상스 그림처럼 한결같은 그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이제 분명해졌다. 현재는 매 순간 속에서 영원히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직 살아야 할 현재가 많이 남아있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얼마든지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시간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면 비로소 시간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을. 더 이상 나는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을 거고. 왜?
내가 바로 미래니까. (p.p. 498~4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