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동물원
진 필립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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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 네 살 생일이 지난 링컨과 함께 동물원에 온 조앤은 폐장 시간에 맞춰 출구로 향하려고 할 때 무언가 터지는 소리를 듣는다. 허수아비들이 길게 줄지어 서있는 연못에선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이리저리 허수아비들이 쓰러져있다. 허수아비가 아니었다. 허수아비라고 하기엔 너무나 작은 팔이 움직인다. 그리고 총을 든 사람을 발견한다. 그녀는 링컨을 꽉 붙들고 안아올린다. 그리고 달린다. 지금 아이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그녀 밖에 없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아주 많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p.73)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밤톨군을 낳기 전에 나는 애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아이는 시끄러웠고, 얼굴에 이유식 범벅을 한 아이는 너무 지저분했다. 끝도 없는 "왜?"라는 질문에 짜증이 절로 났고,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애들은 좀 묶어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때도 많았다. 지금은 우는소리를 들으면 안쓰럽고, 눈물 한 방울 나지 않는 가짜 울음을 보면 귀엽다는 생각까지도 든다. 아기 새처럼 이유식을 받아먹는 모습을 보면 기특하다.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늘어놓고, 통통 튀는 발걸음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이젠 내 아이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가 없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발을 헛딛거나 밤톨군보다 더 큰 아이가 장난으로라도 위협을 가하면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서게 된다. 만약에 소설 같은 일이 생긴다면? 아~ 이건 정말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상상만으로도 눈물이 차오르려고 한다.

나와 다르게 조앤은 침착하고 좋은 엄마였다. 내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공포 속에서도 아이의 질문에 눈높이에 맞춰 답해주며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한다. 아이의 딸꾹질에도, 배고픔에 칭얼거려도 침착하게 대처한다. 나라면 밤톨군의 입을 막거나 불안함에 화를 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나도 엄마이기에 밤톨군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 하겠지. 밤톨군에 비하면 내 목숨 따위...

엄마는 총알도 막을 수 있어. 그녀는 그렇게 덧붙이고 싶다. 엄마는 절대로 널 다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뭔지는 모르지만 엄마는 저 밖에 있는 것보다 강하고 빠르고 똑똑해. 사실은 할 필요조차 없는 말이다. 링컨은 이미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 그녀 자신도 그 말을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p.114)

보통 책을 읽는 도중에는 다른 사람의 리뷰를 읽거나 맨 뒷장을 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예외로 두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있는 스포 없는 스포를 다 읽고 난 뒤에 읽어도 조마조마해서 책장을 넘기지 못할 때가 많았다.   (내가 이렇게도 간이 조막만 했던가?) 링컨과 조앤의 이야기가 먼 나라의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엄마와 아이의 이야기이다 보니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다. 수시로 긴장감에 책장을 덮어버렸다. 사랑스러운 링컨의 묘사가 나올 때마다 더 진정이 안된다. 어두운 곱슬머리와 깜빡이면 기다란 속눈썹을 가진 포동 포동하고 부드러운 아이가 잘못되는 건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손이 떨려서 그다음 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그럴 땐 행복한 삶의 방식을 논하는 책을 도중에 읽었다. 내 마음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아마 밤톨군을 낳기 전에 읽었더라면 콜럼바인 사건이나 미국의 각종 총기 사건을 비판하며 읽었을 테지만 소중한 아이가 있는 지금은 그렇지를 못하다. 그저 무섭고 떨리기만 한다.

<밤의 동물원>은 나처럼 간이 조막만한 사람은 함부로 시작하면 안 되는 책이다. 너무 재미있어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는 책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덮었다가 폈다가를 계속 반복하게 된다. 아이가 있는 엄마에겐 그 어떤 소설보다 공포스럽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난 안 볼 거다. 소설로도 미칠 것만 같은데 영화로 보면 심장 터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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