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좀 늦된 아기였다. 늦게 뒤집었고, 늦게 기어 다니다가 내 돌잔치 때 처음으로 바나나를 먹겠다는 일념 하에 일어섰다. (그땐 바나나가 귀했다고 한다.)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일어섰으나 다리가 아파도 앉을 수가 없었다. 달라진 눈높이에 두려움을 느꼈을 거다. 한참을 서있다가 울어버렸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을거다. 그 후로 난 뛰어다니다가도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그 다음날 다시 넘어지는 걸 반복했다. 너무나 자주 넘어져서 (심지어 매번 같은 자리에서) 엄마는 내가 모자란 아이가 아닐까 의심도 했다고 할 정도니... 어쩜 두려움이란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두렵지만 그 감정을 받아들이면 생각보다 두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낯설고 두려운 상황을 자주 직면하게 된다. 그때마다 그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저 바나나를 꼭 잡고 울기만 했던 아기 때로 돌아가곤 한다. 그땐 주위 어른들이 안아주고 조심스레 자리에 앉혀줬지만 지금은 모든 상황에서 주위의 도움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두려움이란 감정이 싫어서 앉아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저자인 크리스틴 울머는 미국 모굴 스키 국가대표였다. 그랜드티턴(가장 아찔한 산악 중 하나)을 스키로 강화한 최초의 여성이라고 한다. 아기 때 몸치인 걸 몸소 증명한 나에겐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하얀 절벽을 스키를 타고 거침없이 내려오는 걸 바라보는 이는 그저 감탄만 하면 되는 일이지만 절벽 꼭대기에 서서 아래를 바라보는 건 역시나 두려운 일일 것 같다. 지금은 심리 상담사로 활동하면서 두려움이라는 주제 하나에만 몰입해 연구를 하며 독창적인 두려움 전문 심리 상담 프로그램까지 개발했단다. 두려움은 피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두려움을 회피하는 동안 당신은 계속해서 위기에 처하게 된다.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없다. 오히려 그 회피가 두려움을 붙드는 역설적인 상황을 가중시킨다. 두려움은 당신의 것이다. 남이 주입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두려움은 당신의 일부다. 당신이 당신 자신과 끊임없는 전쟁,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전쟁을 벌이면 벌일수록 당신의 내면은 아수라장이 된다. (p.p. 9~10)평생 동안 두려움에서 도망 다닐 때조차 두려움은 나에게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으로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은 더더욱 높아진다. 도망가기만 한다면 불면증과 스트레스, 불안, 정신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번아웃 등 요즘 문제 되고 있는 것들이 따라올 가능성 또한 높다.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떠올랐다. 주인공 라일리의 주요 컨트롤 감정은 '기쁨'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이사로 인해 라일리는 더 이상 기쁘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정들은 노력을 하고 '슬픔'을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매번 극복해야 한다고, 이겨내야 한다고 배우는 '두려움' 또한 나의 한 모습이다. 저자는 두려움을 인정하면 강해지며, 현명해지며, 안전함을 느끼며, 선명해지고,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이렇게까지 두꺼울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원서 편집자가 저자를 좀 막아주었다면 조금 더 완성도 있는 책이 나오지 않았을까? 개인이 이야기가 논지를 벗어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 (물론 저자의 아드레날린 넘치는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기는 하다.) 현실의 답답함과 미래의 불안함에 오늘도 지치고 두려운 현대인들에게 두려움을 인정하라는 메시지는 신선하다. 아마존 자기계발 1위의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두렵기 때문일 거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원서는 어떤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