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만으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작가(감독)의 스타일만으로도 얼마든지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달콤한 인생>이 그렇다. 왜 강 사장이 선우를 죽이려 했는지, 그런 강 사장에게 선우는 왜 복수하려 하는지, 희수는 선우를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강 사장은 선우를 죽이려 했고, 선우는 복수를 하려 했으며, 희수가 선우를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둘은 그저 더이상 만날 수 없을 뿐이다.

   "왜 그렇지 되는지 관객들은 그 이유를 알 필요가 없다" 라는 식으로 타란티노가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하는데, 하드보일드, 느와르 장르에서 종종 나타나는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의 비논리성, 감독의 불친절함 등은 (밑도 끝도 없이) 잔인한 화면과 (무뚝뚝한 해결사와 같은) 남성성을 조성하는 일종의 장치로 기능한다.

   <수>는 기존 하드보일드의 불친절함을 충실히 계승한 영화다. 동생을 왜 19년 간 만나지 못했는지, 동생이 왜 살해되었는지, 어떻게 수는 해결사가 되었는지 등 영화 속에는 그들의 역사가 깡그리 블랙박스 안에 담겨 있다. 그리고 개연성 없는 스토리, 극단적인 인물 설정 등으로 도무지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캐릭터들이 스크린을 뛰어다닌다. 이러한 것들이 한데 얽혀 스토리는 죽고 분위기만 남았다. 헌데, 이 분위기가 '스타일'이라기 보다 감독의 고집으로 읽혀지는 건 왜일까.

 p.s. 아무리 하드보일드라지만, 주인공을 좀비로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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