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송어낚시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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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집어 들고는 단숨에 다 읽었다. 재미가 있다거나 스토리 전개가 흥미진진해서였던 건 아니다. 단지 '미국의 송어낚시'가 의미하는 바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는 부분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책에는 그런 부분이 없었다. '미국의 송어낚시'는 그저 미국의 송어낚시일 뿐이었다.

  <미국의 송어낚시>는 수많은 메타포로 직조된, '작품해설'이나 '작가 인터뷰'를 읽지 않고는 무슨 내용인지 좀처럼 파악되지 않는 소설이다. '사라진 꿈과 희망을 찾기 위해 떠나는 송어낚시 여행'이라는 활자가 버젓이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지만, 읽으면서 한쪽 손가락을 '보충설명'에 끼워놓았을 정도로 내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흐릿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는 건, 작가-주인공이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게 유년의 아련한 기억이든지 혹은 현대사회에 가려진 자연의 생명력이든지, 어쨌든 우리는 무언가를 잃어버렸고 그로 인해 황폐, 상실, 파괴라는 단어와 맞닥뜨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꼽추 송어'의 이야기에서 잘 나타나 있는데, 주인공은 어느 날 송어낚시를 하다가 '혹이 달린 12인치나 되는 무지개 송어' 한 마리를 낚게 된다. 그 송어는 엄청난 힘으로 저항하다가 곧 주인공에게 포획되고, 결국 그날 저녁 반찬으로 요리된다. "옥수수 가루로 싸고 버터를 발라 프라이한 그 혹은 마치 에스메랄다의 키스처럼 달콤했다." (p. 122)

  황폐화된 현실에서 기형적으로 탄생한 송어는 엄청난 생명력을 갖고 있다. 현대 기계문명이나 자본주의로 인해 파괴된 자연은 망가지고 더러워졌지만, 그 본연의 생명력 또는 복원력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꼽추 송어'의 혹을 정성스레 요리한 주인공에게 그 맛은 달콤할 수밖에 없으리라.

  수많은 메타포, 난해한 전개, 실험적 형식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송어낚시>는 이처럼 분명한 메시지를 남긴다. 또한 작품 전체에 녹아있는 쓸쓸함, 상실감은 이러한 작가의 주장에 서정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한데 모여 '미국의 송어낚시'를 정의하는 듯 보인다. 작가 자신이 '미국의 송어낚시'가 무언지 모르겠다고 밝힌 것처럼 , 독자 역시 그것이 무언지 알 수 없다. 다만 '미국의 송어낚시'는 미국의 송어낚시일 뿐이라는 것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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